날 울게 한 인도 여인들, 인도에서 울던 밤
난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
두르가에게 아무리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걱정이 되던 터였다.
"맴~~ 메라 폰 카랍호게야.."
"뀽? 꺄 호게야?"
"깔 바리시 버훝 자다 후아. 거르 메 뿌라 빠니 해. 메라 거르 티크 너히 해. 이슬리 해. 메리 베티까 폰쎄 볼레히훙."
"마담~~ 내 전화기가 고장 났어요."
"왜? 무슨 일이야?"
"어제 비가 많이 왔어요. 집에 물이 가득해요. 우리 집이 안 좋아요. 그래서..우리 딸 전화로 통화하고 있어요."
듣고 보니 집에 비가 엄청 새서 옷이며 전화기가 다 물에 젖어 입을 옷도 젖고 전화기도 고장나버렸던 것이다.
그날 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두르가는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기르며 청소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인도 젊은 여인이다.
원래 두르가의 동생 라키가 우리 집 청소 일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몸이 약한 라키가 자기 대신 언니를 보내서 날 돕고 있었다. 훗날 한인교회 청소하는 일을 소개해줘서 교회 청소를 깔끔하게 잘했는데, 이 두 자매는 나와 딸랑구를 잘 따르고 좋아했다.
라키는 참 미인이었다. 깔끔하고 인도 요리도 잘해서 가끔 인도 요리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어느 날, 라키가 나를 부른다.
"맴~ 무채 알마리 짜히해."
"압께 빠스 알마리 나히해?"
"하, 메레 빠스 나히해. 하메사 메레 꺼프레 쭈아 카떼해."
"마담~ 난 서랍장이 필요해요."
"서랍장이 없어?"
"네, 나는 서랍장이 없어요. 줄곧 내 옷을 쥐가 먹어요. "
옷장이 없어서 보자기에 옷을 싸서 두는데 줄곧 쥐가 뜯어먹어서 너무 힘들다고 하는 라키.
그날 밤도 가슴이 아파서 엉엉 울었다.
난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저 친구들은 가진 게 너무 없다...
이럴 때마다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딸랑구랑 라키 딸은 나이가 같지만 체구가 훨씬 작아서 딸랑구 입던 옷이며 신발을 라키에게 주곤 했었다.
라키가 일을 하다가 아파서 못하게 되었을 때도 남편이 와서 돈을 받아 갔는데, 그 자리로 나가서 술을 사 마셔버렸다고 한다. 가정을 돌보지 않는 질이 안 좋은 남편이었다.
훗날, 라키도 이혼을 하고 남매를 혼자 키우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어서 다른 한국분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줬는데 지금도 가끔 연락이 온다.
오랜 역사와 전통,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인도.
결코 무시하거나 얕볼 수 없는 거대한 문화와 유산이 풍부한 인도에서 가끔 눈물을 흘린다.
어느 날,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옹기종기 앉아있는 인도 아낙들을 만났다. 그중에 핑키가 있었고, 일거리를 찾고 있었다.
인도의 문화 중에 하나는 옛날 우리 조선시대처럼 집집마다 다니며 청소를 해주는 직업이 있다. 바로 '아야'다.
자루 뽀차(쓸고 닦기)는 500루피, 화장실 청소 400루피, 더스팅(먼지 털기) 700루피, 버튼(설거지) 1000루피, 카나(요리) 1500루피, 도비(빨래) 등... 한 달 월급이다. 이 집 저 집 다니며 해주는 사람도 있고, 풀타임으로 하루 종일 하는 사람, 아예 집에 쿼터(일하는 사람 숙소)가 있어서 집에 살면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나니(유모)도 있어서 아이만 돌봐 주는 사람도 있다. 쇼핑몰에 가면 나니(유모)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인도 마담들은 참 편하게 산다.
암튼 그래서 인도에서 판매되고 있는 모든 냉장고에는 열쇠가 있다. 사실 이런 이유로 냉장고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세탁기도 마찬가지다.
주인이 냉장고 열쇠를 갖고 관리한다.
처음 인도에 가서 신기했던 부분이다.
잠그지 않고 집의 창문을 열어 두면
원숭이가 와서 먹을 것을 꺼내 먹기도 한다.
핑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시간 있을 때 우리 집에 와서 청소를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며칠 동안 와서 청소를 하더니, 어느 날 얼굴이 새하얗게 창백해진 채로 일을 하러 온 게 아닌가.
여비를 손에 쥐어주며 어서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다음날 와서는 '빈혈'이라고 한다. 잘 안 먹어서 그렇단다.
"언데이 카나 저루리해."
"맴~ 메레 빠스 빼세 너히해. 께세 언데이 카 썩디훙."
"달걀을 먹어야 해."
"마담~ 난 돈이 없어요. 어떻게 달걀을 먹어요. "
그렇다. 사실 채식주의자들은 달걀을 먹지 않지만, 어떤 이들은 달걀이 너무 비싸서 못 먹는 경우도 많다.
달걀 사 먹으라고 손에 넣어 주고는 잘 먹고 푹 쉬고 건강해지면 일을 하라고 돌려보냈다.
인도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주변에 똑똑하고 스마트하고 멋진 젊은 친구들 이야기를 먼저 쓰려고 했는데, 내 머릿속에 이 친구들이 계속 맴돌았다.
내 가슴에 큰 울림을 준 귀한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힌디어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나의 힌디어 선생님이 되어주었던 소중한 사람들이다.
사실 라키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가난해서 5학년까지만 다니고, 엄마가 시집을 보내서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힌디어로 쓰기는 잘 못하지만 굉장히 똑똑하고 영리했다.
내 생활 속에서 함께하며,
인도를 좀 더 알게 해 준 은인들이다.
또한 자신을 더 겸비케 만들어 준 선생님이다.
가끔 하나님은 과연 공평하신 분일까? 하고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인도 거리를 지나다 보면 문득문득 그런 질문이 올라올 때가 있었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인생을 선택해서
이 땅에 오지 않았다.
선민이라는 말,
선택받았다는 말은 내게 불편하다.
그 어느 한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소외될 수 없기 때문이다.
늘 딸랑구가 묻는다.
"엄마, 하나님은 왜 그렇게 만드셨어?"
난 늘 대답한다.
"글쎄, 가끔 우리의 지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게 많은 거 같아. 하지만 하나님은 가장 선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야."
가끔 이해되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인생,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고 싶다.
그 깊은 사랑의 마음을...
너무 많이 가지려 애쓰지 말자.
있는 것으로 족한 줄 알고 감사하며 살자.
나도 사랑의 빚을 너무 많이 졌으니, 그 누군가에게 그 빚을 되갚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