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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Aug 17. 2021

지금도 '아빠'라 부른다.

나의 아버지

나이가 들어가도 '아버지'가 입에서 안 나온다. 결혼해서 시아버지께는 '아버님'이 자연스럽게 잘 나오더니만, 이제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었는데도 친정아버지께는 '아버지'라 부르는 게 어색하다. 그래서 아직도 아이처럼 '아빠'라고 부르고 있다. 작년에 팔순을 지내셨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30대 청년 아빠 같은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주 어린 시절, 아버지는 우리 꼬맹이 삼 남매를 아버지의 오토바이 앞 뒤로 태워주곤 하셨는데, 난 아직도 아버지의 오토바이 뒤에 앉아 아빠의 허리를 꽉 부여잡고 있는 꼬맹이 큰 딸 같다.


아버지의 넓은 어깨와 등은 달리는 오토바이 위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을 든든하게 막아 주시기에 완벽해서 나의 안전한 안식처가 되곤 했다.  지금도 그 시절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생각하면 양 입꼬리가 올라가며 기분이 좋아진다.


아빠의 오토바이를 타던 꼬맹이가 훗날 처음으로 자동차 운전을 배울 때도 아버지께 운전 연수를 받았다. 남동생은 똑바로 하라며 화를 내곤 해서 중간에 포기하고 결국 인내심을 갖고 가르쳐주신 아버지 덕분에 지금까지 자동차 운전을 잘하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해외 생활하면서 잠시 한국에 올 때마다 아버지는 내 이름까지 자동차 보험을 들어주시며, 아버지 차를 맘껏 타도록 내어주시곤 하셔서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엄마가 설거지를 하시던 시간이면 아버지는 우리 꼬맹이 삼 남매를 앉혀놓고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하셨다. 구약 성경을 창세기에 적힌 순서대로 구연동화처럼 들려주셨는데, 그때 들었던 성경 이야기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을 정도로 실감 나고 재미있었다. 어쩌면 내 어린 시절의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내 인생의 선물 같았던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성경 이야기 덕분에 나는 아직도 성경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아버지의 무릎 밑에 앉고 드러누워서 아버지께서 들려주시던 성경 이야기를 다시 한번 꼭 들어보고 싶다. 이미 다 큰 어른이 된 삼 남매가 이제 노인이 된 아버지와 함께 도란도란 성경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가장 큰 축복의 시간이 될 것이다. 다음 명절에는 아버지께 부탁을 드려보고 싶다.


"나는 멀리 가서 살 거야."


나와 남동생은 이렇게 말한 반면에 여동생은 항상 "나는 엄마 옆에 살 거야." 라며 한결같이 말했었다.


우리 삼 남매는 그렇게 어린 시절 말하던 그대로 남동생과 나는 해외생활을 줄곧 했다. 나는 작년에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남동생은 아직도 두바이에 있다. 여동생은 결혼해서 줄곧 부모님 댁과 멀지 않은 가까운 지역에서 제부와 함께 장남 장녀 역할을 도맡아 해왔으니 말대로 된 게 틀림없다.


내가 영국에서 지낼 때, 국제 전화를 할 때면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으신 것처럼 말씀하시면서도 계단에 발자국 소리가 나면 꼭 우리 큰 딸이 오는 것 같아서 잠이 안 온다고 하시며 큰 딸을 향한 그리움을 토로하셨다.


어른들은 꼬맹이 우리 삼 남매에게 이상한 질문을 하시곤 하셨다.


"엄마하고 살래? 아빠하고 살래?"


그러면 남동생과 여동생은 당연히 엄마랑 같이 살겠다고 대답을 했고, 나는 아빠와 살겠다고 대답하곤 했다. 어쩐지 어린 마음에 아빠를 돌봐 드려야 된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내게 너는 아빠를 편들고 챙긴다며 은근 서운해하시곤 했다.


엊그제 아버지는 지나가시던 길이라시며 갑자기 들러서 복숭아를 건네주시고 가셨다. 일부러 달달하니 맛있다며 맛보라고 가져다 주신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반갑게 받아 큼직한 복숭아를 맛있게 잘 먹었다.


지금도 자식들 챙겨주시는 재미에 텃밭 농사를 이것저것 다양하게 지으시며 철마다 먹거리를 만들어내시는 아버지의 마법 손이 존경스럽다.


어려서부터 양계장 집 딸로 달걀과 닭고기를 맘껏 먹게 해 주셨고, 동네에서 처음으로 양옥집을 손수 지어주셔서 예쁜 집에 살게 해 주신 우리 아버지,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에게 갚을 길 없는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사랑합니다."

친정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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