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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샨띠정 Aug 14. 2021

추억의 일기장에서 잊고 있던 나를 만나다.

여고 시절 일기장

친정 부모님 댁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배부르고 맛있게 먹고는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엄마가 슬쩍 말씀하셨다.


"나 오늘 은*이 고등학교 때 일기장을 한 시간 동안이나 읽었다.""아니... 어떻게? 난 싫은데..."


엄마가 여동생 일기장을 읽으셨단다. 그리고 동생이 고등학교 때 얼마나 신앙이 좋고, 착했는지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한참 동안 칭찬을 하고 계셨다.


문득 나도 내 일기장을 찾아보고 싶어 책장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분명히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쓴 일기장을 다 모아두었었다. 마침내 나는  책장에 꽂힌 채 고이 간직된 여고시절에 쓴 일기장 3권이 눈에 들어와 얼른 꺼냈다.

오래 묵은 여고 시절 추억의 일기장

옆에 꽂힌 시집도 두 권 꺼내어 보았다. 한 권은 교내 백일장 대회에서 우수상으로 받은 시집 '민들레의 영토'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친한 언니에게 선물 받은 시집 '김춘추의 시선 처용'이다.

'민들레의 영토'와 '처용'

여고시절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정말 좋아했는데, 상품으로 받아 얼마나 기뻤던지 그때의 느낌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좋아하는 시 때문에 수녀가 되고 싶었던 여고생이었다.


시를 좋아했던 나는 그동안 시를 잊고 살았다. 너무 전투적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왔다. 굳이 이렇게 열심히 안 살아도 되었는데, 앞을 향해 전진하며 군사처럼 살지 않았을까?


여고시절 내 일기장에는 긴 세월을 품고 고이 자리를 지키며 생명을 포기하지 않은 단풍잎과 은행잎, 장미꽃잎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동안 잊고 있던 오래된 나를 마주하며 만나는 시간이다. 그때의 나를 만나기가 조금 어색하기도 하다.


그 시절 매일매일 일기를 썼고, 중간중간에 좋아하는 시도 많이 적어 두었다. 그리고 가끔은 습작을 하며 자작시도 지어서 일기장에 써 두었던 것을 찾아보며 이제야 기억해낸다.

내가 박두진 시인의 '하늘'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시를 외우고 또 외웠었다.


여고생인 내가 썼던 자작시 하나를 꺼내어 본다. 지금 보면 유치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마주한 오래전 나 자신이 반가우면서도 너무나 낯설게 느껴진다.

고 1 때 쓴 자작시

'나도 그때, 시를 쓰고 글을 썼는데...'

나는 아주 오래전 나의 글과 시를 마주했다.

30여 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 현재의 나와 앳된 여고생의 글을 보며 잊힌 나를 만난다.



나의 역사, 비록 읽는 내내 조금 오글거리고 민망하기도 하겠지만, 그 시절의 나의 이야기를 천천히 읽으며 찾아가 만나고 싶다.

 

그때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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