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 타인의 눈은 나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아니 현실에서 진실과 만나는 시간이다. 선글라스를 끼고 조금은 더 시원해 보이는 세상을 선호했고, 어쩌면 나는 눈을 자극하는 햇볕의 따가움를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내에서조차도 쓰고 있을 수 없으니 결국 선글라스를 벗어내야 하는 것처럼 현실과 마주해야만 하는 순간은 분명히 오게 되어 있다.
어느새 신세대는 기성세대가 되었다. 문득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 스스로 화들짝 놀라서 눈을 감았다. 내가 나를 바라보던 시각은 어쩌면 내 주관적인 해석이 곁들인 것이리라. 그것도 무한 긍정의 마음으로 마냥 젊다는 착각을 사실로 믿고 받아들이는 또 하나의 신념를 붙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랜 해외 생활로 한국 텔레비전을 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내겐 껑충 뛰어넘는 세월의 간격이 있다. 그러다 보니 오래전 내 기억 속의 드라마에 나오던 연기자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 있는 모습은 사뭇 어색하기도 하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마치 그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을까? 어떻게 격려하며 일으켜 세워줄 수 있을까?
젊음이 파워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나이 듦과 어른이 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그리 큰 덕목이나 우대가 되지 않는 세상이 되어 간다고 말해도 크게 반기를 들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때는, 그 시절에는, 나 때는, 내가 다닐 때는,...
우리는 얼마나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은가? 특히 젊은 친구들과 세대를 아우르며 경험담과 무용담을 함께 나누고픈 마음 간절하지만, 어느새 '꼰대'나 '라떼'라는 용어가 우리 자신을 옭아매고 말았다.
더 이상 기성세대들이 지난 과거와 경험을 마음껏 떠들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이제는 그냥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미덕이 되는 사회가 우리 눈 앞에와 버린 듯하다.
우리도 나름 그때 그 시절, 멋진 시대를 살아온 게 분명하다. 우리도 예뻤고, 아름다웠으며, 용감했고, 젊었다.
돌사진과 6학년 시절의 사진들
앞으로를 어떻게 살아갈까? 최근 고민을 많이 했다.
해외에서 긴 세월을 지내다 한국에 와서 보니 나는 중년 여인이 되어버렸다. 뭐가 중년이냐며 결코 아직 중년이 아니라고 노려보기라도 하듯 따지며 세상을 향해 묻고 싶기도 하다.
해외에 있다 보면 오히려 내 이름이 불려지는 게 더 자연스러웠고, 인도에서조차도 하다못해 '맴'이나 '마담'으로 불려지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40을 넘어 50대에 접어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아줌마'라는 호칭이 어색하듯, 중년을 지나고 있는 나 자신이 어설프기도 하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 나는 아직 마음은 20대인 늙은 청춘이다.
엊그제 건축 설계 일을 하고 있는 사촌 여동생과 통화를 했다. 셋째 이모가 시집을 안 간다고, 갈 생각도 안 한다며 걱정이 태산인 윤*주와 통화하며 나는 희망을 보았다.
그동안 나이도 잊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윤*야, 몇 살이지?"
"응, 언니. 마흔한 살이야."
"와... 그렇구나."
"너무 많이 먹었지?"
"세월이 진짜 빠르다. 그런데 난 그 나이가 젤 부러워."
"진짜요? 아닌 거 같은데..."
"응, 난 그때가 젤 예쁘고 아름다운 거 같아. 정말이야."
나의 진심이다. 풋풋한 20대도 조금은 성숙한 느낌이 드는 30대도 예쁘지만, 40대 초반의 그 시간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에 갈 때의 내 나이가 그즈음이었으니까...(인도에서 40대를 보냈다.)
왜 항상 지나고 나서 그걸 깨닫게 될까? 그 시절은 너무 젊고 예뻤다.
인도에 들어갈때 찍은 가족사진
전화 통화를 하며, 윤*도 결혼할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아직 얼마나 젊고 아름다운 시기인지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좋은 사람을 열심히 찾아봐야 할 거 같다.)
나도 용기를 다시 내어본다. 비록 젊음이 파워(힘)가 되는 세상이지만, 나이 듦도 파워(힘)가 될 수 있다는 걸 나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어졌다.
천국 가는 그날까지 내게 주어진 나의 길을 늙었다고 한탄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젊은 마음과 현명한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을 유지하며 남은 날을 살아내고 싶은 소망 한 스푼 내 몸에 넣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