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하는 거짓말에 관하여
“넌 그새를 못 참고 또 남자 만났냐?”
은희(한예리 분)는 억울하다. 스타병에 걸린 남자 친구 현오(권율 분)는 약속 시간에 늦어놓고 사과는커녕 적반하장이다. 은희는 약속 장소인 남산에 오기 전 길 잃은 일본인을 안내해준 게 다라고 강변하지만 현오는 집요하다. 바람이라는 게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습관이라는 식이다. 현오 모르게 유부남 운철(이희준 분)과 만난 전적이 있는 은희는 입을 다문다. “사실 한 달이 아니라 작년부터 만났었어 “. 굳이 고백할 필요는 없다고 은희는 말없이 자위했는지도 모르겠다. 한 미국 드라마의 주인공도 말하지 않았던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everybody lies)’고.
싸움 끝에 토라져 홀로 벤치에 앉은 은희 앞에 운철이 나타난다. 운철은 은희가 떠난 후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늘어놓는다. 은희가 증발한 운철의 아파트가 얼마나 공허했는지, 우연히 발견한 은희의 트윗 – 자신이 지금 남산에 있다는 – 을 보고 무작정 남산을 오를 때의 적막함을 운철은 여과 없이 쏟아낸다. 은희는 기가 막히다. 은희가 운철을 떠난 건 운철이 사이가 틀어졌던 아내에게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남자 친구가 있음을 숨긴 은희도 떳떳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소설은 윤리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다”
- 밀란 쿤데라
은희가 바람을 피웠고, 애인들에게 거짓말을 한 건 나쁘다는 식의 도덕적 심판은 잠시 유보해 두자. 뻔하기도 하거니와, 종종 예술가들은 부도덕한 행태를 작품에 의도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새로운 사유의 단초를 숨겨놓으니까. 따지고 보면 전 애인에서 은희로 환승하듯 연애를 시작한 현오나 아내 몰래 은희를 만난 운철이나 뒤가 구리긴 마찬가지다. 우리가 은희에게 가져야 할 의문은 “은희는 왜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는가?”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연극을 즐겼다. 그들에게 연극은 유희이자 공동체의 교훈을 공유하는 의례였다. 이때 배우들은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는데 이를 ‘페르소나(persona)’라고 불렀다. 슬픈 연기를 할 땐 울상인 가면을, 환희에 찬 장면에서 놀라움으로 가득 찬 가면을 뒤집어쓴 채 배우들은 각자의 배역을 수행했다.
셰익스피어는 인생을 연극에 비유했다. 누구나 주체적인 체하며 살아가지만, 실은 세계라는 거대한 무대에 얽매인 단역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들 앞에선 아버지가 되어야 하고 여자 친구에게는 듬직한 남자 친구여야 한다. 분노나 짜증, 미움 등의 감정을 억누른 채 사람들은 배역에 맞는 가면(페르소나)을 뒤집어쓴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가면은 진짜 얼굴이 아니니 그 표정 역시 진짜가 아니라고. 맞다. 그러나 격앙된 감정을 숨긴 채 기꺼이 가면을 뒤집어쓰는 마음까지도 거짓일까. 기꺼이 가면(거짓)을 쓰는 진심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거짓말로 사랑을 대하는 은희의 진심도 새로이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때로 내 논리를 내 삶이 따라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내가 쓴 글들을 들여다본다. 논리와 삶의 간극 사이에 내가 있다. 나는 '지향(指向)'이다. “
- 이성복,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할 수 없다』p271
돌이켜보면 정말 그랬다. 나는 종종 내가 아닌 내가 되고 싶은 무언가, 나의 지향을 현재형으로 말했다.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이었다. 당신이 봐주었으면 하는 모습의 나를, 나는 최선을 다해 연기한 적이 있었다. 당신은 나의 설익은 거짓말을 금세 간파했을지도 모른다. 무릅쓰며 거짓말하는 나의 ‘진심’을 당신이 헤아려주기를, 알면서도 기꺼이 속아주는 것이기를, 철없는 나는 몇 번인가 바란 적이 있었다. 현오와 운철에게 거짓말하는 은희의 마음도 그랬겠지.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지향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간신히 가늠해 보았다.
영화 후반부에서 현오와 운철, 그리고 은희가 마주하면서 은희의 ‘최악의 하루’가 완성된다. 그녀의 거짓말은 남김없이 까발려졌고 현오와 운철은 경멸의 눈초리를 남긴 채 사라졌다. 다시 홀로 남은 은희 옆에 낮에 길을 물었던 일본인 소설가가 다가와 선다. 은희는 ‘한 번도 끝까지 간 적 없는’ 남산을 함께 오르자고 제안한다. 은희는 이번에는 정직할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거짓말을 이어갈까.
어느 쪽이든 은희가 행복한 길을 찾았으면 하고 나는 바랐다. 은희와 나 그리고 모두가, 결국 행복하려고 이 법석인 거니까.
“걱정 마세요. 이번 소설은 해피엔딩입니다”
- 영화 <최악의 하루>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