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히 불행한 당신을 위해
몇년 전, 모 인터넷 서점의 대학생 서포터즈에 합격했다. 도서 문화 관련 대외활동이 많지 않았기에 지원자가 몰렸다. 나는 도서 관련 취재 기사를 작성하는 리포터로 합격했다. 격주에 하루씩 시간을 쪼개 신작 발표회장으로 달려갔다. 갖고 있는 녹음 기기를 총동원해 녹취하고, 집에 돌아와 녹취록을 타이핑하면 새벽 3시였다. 피곤했지만 경쟁자를 이기고 얻은 자리라고 생각하면 뿌듯했다.
내가 '리포터'이기 이전에 '서포터즈'였음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포터즈 학생들은 서점 홈페이지 컨텐츠에 월 수십개의 댓글을 의무적으로 달아야 했다. 합법적인 댓글 부대였달까. 팀장이던 나는 '잘 읽었습니다^^', '정말 좋은 글이네요^^' 따위의 댓글 캡처를 수합해 PPT 파일로 만들었다. 월말마다 있던 월말 보고 회의를 위해서였다. 한달간의 '서포트'가 끝나면 얼마간의 도서 포인트가 고료로 지급됐다. 도서 포인트로는 신작 발표회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탈 수 없었다. 교통대금 결제일만 되면 근심이 늘었다. 그만두고 싶었지만자기소개서 활동란이 한줄 줄어들 미래가 두려워 망설였다.
댓글 할당량을 채우려면 한달간 발행되는 콘텐츠 거의 전부를 봐야했다. 너무 기계적인 댓글은 지양하라는 지시가 있었으므로 지금 읽고 있는 게 기사인지 인터뷰인지 평론인지 정도는 알아야 했다. 그때 접한 게 만화가 김보통의 연재작, '영화는 보통'이었다. "어릴 땐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아 그렇다고 지금 우울하지 않단 말은 아니고요" 같은 대사로 끝맺는 영화 리뷰였다. 담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 그 무렵 나에겐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당시 아파트 13층에 살고 있었는데,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 난간 너머를 내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쯤에서 떨어지면 한 방에 죽겠는데?'"
- 김보통,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43p
그의 아버지는 칼국수집을 했다. 그전에는 방앗간을 했고 그전에는 정수기 외판원이었다. 어깨에 매달린 식구들의 입을 떠올리며 아버지는 밥을 벌었다. 평생을 노력했으나 끝내 정착하지 못했다. 대기업이 뭔지도 모르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대기업을 가라"고 당부했다. 그날부터 아들의 꿈은 대기업 사원이 되었다.
수년 후 아들은 대기업 면접장에 섰다. 지원동기를 묻는 인사 담당자에게 "아버지의 꿈입니다"라고 답했다. 아버지와 아들의 꿈은 이루어졌다. 4년 후 아들은 회사를 나와 만화가 '김보통'이 되었다. 꿈에 그리던 꿈 속 세계가 명백히 불행했기 때문이었다. 수난을 통과해 도착한 약속의 땅에 젖과 꿀은 없었다.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러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배웠다. 사회는 냉정하고 경쟁자는 차고 넘치니 늘 날을 세우며 살아야 한다고. 서점가에는 노력만이 유일한 무기라던 고시 합격자들의 책들이 도열해 있었다. 지금 견디는 희생이 깊을수록 미래의 행복이 커진다는 논리는 등가교환의 법칙과도 부합해 보였다. 나도 행복해 지고 싶었으므로, 애쓰며 살았다.
시험 날 아침, 머리를 못 감을만큼 피곤하지 않으면 죄책감이 밀려왔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과가 나쁘면 최선을 자부할 수 없었다. 잠을 3시간으로 줄여볼 수도, 밥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먹을수도 있었으니까. 운이 좋았음에도 결과가 좋으면 최선이 되었다. 연달아 나쁜 결과를 확인하던 날의 자존감은 흙바닥을 기었다. 가끔은 내가 행복하고 싶은건지 성공하고 싶은건지 모호했다.
'행복해 지는 것을 목표로 살았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행복해 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행복해지는 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포기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 말하는 곳에서는 정작 내가 행복하지 않았다. 명백히 불행했다.'
- 김보통,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일군의 심리학자들은 미국의 우울증 환자 비율이 높은 이유로 '긍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꼽은 바 있다. 미국은 곧 기회의 땅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상태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도태되었다 믿기 쉽다는 것이다. 설탕을 두 스푼씩 먹던 이가 설탕 반 스푼으로는 단맛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성공과 행복을 동일시하는 사회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요원하다. 모두가, 항상 성공할 수는 없으니까.
김보통은 '불행하지만 말라'고 말한다. 지금의 불행을 미래의 행복에 바치는 거름으로 바치라는 설교도, 말초적 쾌락에 투신하라는 부추김도 아니다. 조금만 더 자신을 보듬어 주라는 당부다. 큰 고통이 따르는 행복이라면, 그 고통이 대들보에 매달린 올가미처럼 조여온다면, 버려도 좋다는 것이다. 나와 당신의 꿈은 대학도 취업도 결혼도 아니었다. 우리는 다만 조금 더 행복해 지고 싶었을 뿐이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대부분 실패하고 실망할 것이다. 우리 중 누군가는 흰수염고래가 되어 대양을 헤엄치겠지만 대부분은 새우로 태어나 새우로 죽을 것이다. 아둥바둥, 꾸역꾸역. 그렇게 살 것이다. 지금 걷는 길이 "명백히 불행"하다면, 길을 이탈해도 된다. 성공한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불행해 지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서포터즈 수료를 한 달 남기고 그만두겠다고 통보했다. 팀원들은 다 왔는데 좀 참아보라고 부추겼다. 활동란 한 줄이 삭제되는 것보단 내 가슴속 뭔가를 영영 잃어버리는 게 더 두렵다고 말했다. 몇 년이 지났다. 다행히, 아직 불행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