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사막 같은 당신에게
잘못 살고 있다는 불안이 엄습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캠퍼스에 휘날리는 플랜카드에서 ‘사짜’가 되는데 성공한 동기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같은 것들. 단단히 잘못 돼먹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불안이 예감을 가장한 채 노크해 온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내가 걷는 길이 옳은지 그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모든 인생은 전인미답(前人未踏), 누구도 밟은 적 없는 땅인 까닭이다. 어떤 멘토도 밟은 적 없는 길의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는 없다. 숱한 미망과 절망 사이에서, 해풍을 맞고 선 동상처럼 마음이 녹슬어 간다.
누군가에게 불안은 미래에 관한 것일 수도, 관계에 관한 것일 수도, 밥벌이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각자가 처한 고통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분투해보지만 녹록지 않다. 고통을 극복하고 새 삶을 살고 있다는 사람들을 보면 픽하고 웃음이 난다던 어느 시인의 고백이 뇌리를 스친다. 당신이 극복한 건 절망도 고통도 뭣도 아니라는 시인의 냉소가 서늘하다. 닥쳐올 미래를 가늠할 수 없는 인간에게 불안과 고통은 삶의 조건이다. 극복 대상으로 알던 것들이 삶의 조건으로서 엄존(儼存)함을 확인할 때, 우리는 울고 싶어 진다.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56p
그리 달갑지 않은 책 분야들이 있다. 자연 과학이나 경제 분야는 의무로 읽고 자기계발서는 선물을 받지 않는 한 들춰보지 않는다. 감성 에세이 역시 그중 하나다(사실 지금도 그렇다). 감성 에세이 분야는 완독하고 나면 책값을 재확인하게 만드는 책이 잦았다.
박준 시인의 첫 산문집이 정갈하다는 평이 세간에 자자해도 꺼려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견고하게 다듬어도 금이 가고 깨져 나가는 일상에서 감성 에세이는 물 먹인 비누처럼 마음을 무르게 만들기 일쑤였다. 요즘 날씨처럼 삼엄한 세상에서 물러지는 건 뒤처지는 것과 동의어라고 나는 믿어왔는지도 모르겠다.
“푸석푸석하게 말라 가는 마음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 마라. 자기가 물을 주는 걸 깜빡한 주제에. (중략)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자신이 지켜라”
- 이바라기 노리코, 시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중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눕기까지 단 한 번도 ‘표정’을 짓지 않았음을 깨달았던 날이 있었다. 울상을 지을 일도, 미간을 찌푸린 일도 없었다. 기상해서는 해야 할 일 목록을 점검했고 돌아오면서는 내일의 할 일 리스트를 짜내는데 골몰했다. 사는 게 아닌 살아졌던 며칠을 자각했던 그날 나는 젊은 시인의 산문집을 구매했다.
“어떤 일을 바라거나 무엇을 빌지 않아도 더없이 좋았던 시절을 함께 보냈습니다”
- 본문 47p
“스스로를 마음에 들이지 않은 채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는 왜 나밖에 되지 못할까 하는 자조 섞인 물음도 자주 갖게 된다.”
- 본문 56p
커서 뭐가 되고 싶냐던 어른들의 숱한 물음들을 생각한다. 해병대원부터 기자까지 답은 다양했다. “무엇을 빌지 않아도 좋았던”시절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나의 대답은 늘 달랐다. 무엇이든 좋은 시절이었으므로 무엇이 되든 좋을 거라고 믿었을 게다. 그러나, 컸지만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한 아이는 “나는 왜 나밖에 되지 못할까” 같은 문장에 밑줄을 긋는 어른이 되었다. 박준 산문의 힘은 포착되지 않는 일상의 멜랑콜리(우울)를 포착해, 내밀하고 압축된 언어로 보여주는데 있다. 책을 덮은 후 나는 한바탕 울고 난 후의 헛헛함과 일말의 후련함에 잠겼다.
감성 산문을 읽는 건 선인장에 물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건조한 사막을 건너기 위해 뾰족한 선인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 가슴을 적시는 얼마간의 수분. 적절한 시점에 수분을 공급하지 않으면 선인장은 노랗게 타 죽는다. 생존 기계가 아닌, 각자가 존엄을 지닌 생명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데 감성의 수분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너무 빈번한 물 주기는 선인장의 뿌리를 썩게 한다. 넘치는 수분에 익사하는 셈이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다시 펴볼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대기에 충만한 수분감을 먹고 자란다는 틸란드시아 같은 날들이 쌓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고통은 인간 삶의 조건이고 건너야 할 사막의 태양은 엄혹하니 나는 때때로 이 젊은 시인의 책을 뒤적여야 할 것이다. 내가 희로애락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만큼 자주, 그러나 수분에 익사하지 않을 만큼 띄엄띄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