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목소리의 형태>:죽지 않겠습니다, 살겠습니다

사랑하면서 나아가기

by 시언



이시다의 이야기
출처= 영화<목소리의 형태> 캡처


“나는 관계를 끊는 사람이다. 고리는 끊는 사람이다“
- 김중혁 단편, 「요요」


고등학생인 이시다는 자신이 버겁다. 하루 종일 나 자신을 견딘다던 에밀 시오랑의 글을 그가 알았다면 꽤나 반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초했다 믿어 의심치 않는 고통이 하루하루 그를 갉아먹었다. 그는 납덩이를 삼킨 듯한 자신의 답답함을 누구 와든 나누고 싶었을 것이나 그럴 수 없었다. 모든 걸 자초했다 믿는 그에게 그것은 자격의 문제였다. 나 같은 건 벌을 받아야 해. 그는 그렇게 믿었다.


출처= 영화<목소리의 형태> 캡처


이시다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커다란 X 표가 쳐져있다. 그것은 소통의 자격 없음을 상징하는 이시다만의 표식이었다. 이시다를 비웃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우퍼 스피커처럼 그의 가슴속에서 시끄럽게 울렸다. 그는 늘 혼자였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초등학생 시절, 쇼코라는 이름의 여자애가 전학 오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그 애는 귀가 어둡다고 했고, 입만 열면 듣기 싫은 옹알이 같은 말을 해댔다. 어린아이 특유의 짓궂음으로 이시다는 쇼코에게 장난을 쳤다. 보청기를 낀 귀에 대고 왁 소리를 지르기도, 자신에게 건넨 쇼코의 필담 노트를 물속에 던지기도 했다. 노트에 적혀있던 말은 “미안해”였다. 얼마 후, 쇼코는 전학을 갔고 이 일로 이시다는 따돌림을 당한다. 함께 쇼코를 괴롭혔던 친구들이 그를 왕따 가해자의 주범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몇 년 후, 자살을 결심한 이시다는 쇼코에게 사과하고자 수화를 배운다.


쇼코의 이야기


출처= 영화<목소리의 형태> 캡처


“매는 혼자서 맞을 수밖에 없었다. 매는 공유되지 않았고 소통되지 않았다 “
- 김훈 장편, 『흑산』 중


쇼코는 걸핏하면 미안하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매일 어떻게 자신을 괴롭힐까 고민하는 반 친구들에게도 쇼코는 미안하다고 했다. 장애는 쇼코의 잘못이 아니었으므로 쇼코에게는 사과할 이유가 없었다. 피해자가 먼저 건네는 사과는 ‘나를 미워하지 말아달라 ‘는 간청과 동의어다. 늘 웃는 낯으로 필담 노트를 내밀었지만 돌아오는 건 차가운 냉소와 조롱이었다. 절망은 자기혐오로 이어졌고, 쇼코는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사과를 위해 찾아온 이시다를 계기로 옛 초등학교 반 친구들이 모인다. 이시다의 친구들은 쇼코만 없었다면 이시다가 왕따가 되지 않았을 거라 단언한다. 이시다는 쇼코를 변호하고 나서지만 친구들의 비난은 멈추지 않았다. 수년의 시간이 지나도 쇼코가 맞는 매는 그 누구와도 공유되지 않았고 소통되지 않았다. 적어도 쇼코는 그렇게 믿었다.


쇼코는 죽고 싶다던 말버릇을 행동으로 옮긴다. 난간에서 허공을 향해 도약하는 순간, 쇼코의 손을 붙든 건 이시다였다. 쇼코를 난간 위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이시다는 맥없이 추락한다.


출처= 영화<목소리의 형태> 캡처
“신이시여, 제발 딱 한 번만 힘을 주세요. “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에게 죄를 지으며 산다.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아둔함 때문이고, 구태여 헤아리려 하지 않는 나태함 때문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어떤 말과 행동은 화살처럼 날아가 상대의 가슴에 박힐 것을다. 화살대를 뽑아내도 몇몇 화살은 남아 두고두고 그를 아프게 할 것이다.


이시다가 자신의 잘못을 자각했을 때, 그의 가슴속에서는 옛 인디언들의 속담대로 가책의 삼각형이 구르며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다. 인디언들은 이 삼각 도형이 닳아 모서리가 뭉툭해지면 더 이상 가책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믿었다. 쇼코를 다시 만나 사죄할 때까지 이시다는 삼각 도형의 모서리를 예리하게 유지했다. 어린 날 자신이 저지른 죄와, 그로 말미암은 쇼코의 고통을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이시다의 자살 시도를 비롯한 모든 행위는 느리지만 진솔한 속죄의 과정이다.


“ 그래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까지 사랑하면서 나아가는 수밖에 없어 ”
- 영화 <목소리의 형태> 중


이시다는 죄 많은 자신을 포기하려 했고, 쇼코는 자신의 결핍을 죽음으로 매듭짓고자 했다. 삶의 문제를 죽음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시다와 쇼코의 결은 유사하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우리에게 ‘그래도 살아갈 것’을 주문한다. 줄곧 노력하며 살아가면 결국, 죄 많고 결핍 많은 우리에게도 희망이 온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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