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책은 어때요? 어떤 책인가요? ”
그는 내가 읽다 덮어둔 책의 표지를 가리켰고, 나는 당황했다. 『쇼코의 미소』는 단편 소설집이었기에 내 당혹감은 더욱 커졌다. 단편 소설집은 한두 편을 빼곤 다소 밋밋한 작품들로 채워지는 경우가 잦음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거기다 아직 다 완독조차 하지 못한 작품집에 대해 무어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평소 같아서는 “아직 반도 못 읽어서 잘 모르겠네요”라고 답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와 나의 관계는 철저히 공적인 절차에 따라 의례적으로 마주친 사이에 불과했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지금 떠오르는 대로 말했다가 완독 후에 일전의 발언을 철회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건 그에게나, 작품을 쓴 작가에게나 실례가 될 터였다. 허나 무슨 자신감에서 였을까. 나는 이렇게 말해 버렸다.
“세상을 보는 눈이 순한 작가예요”
7편의 수록 작품 중 완독한 3편의 작품에 근거했을 때, 나의 평가는 유효했다. 그는 예의바른 미소를 지으며 반드시 사서 읽어보겠다 말했다.
절차상 만난 사람들이 그렇듯, 다시 마주 앉았을 때 그는 눈이 순한 작가의 책에 대해 완전히 잊은 듯 보였다. 어색한 시간을 채우고자 던진 질문이었음을 알았기에 나 역시 괘념치 않았다. ‘눈이 순한 작가’라는 한 마디는 되려 책의 나머지를 읽는 나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다. 한 단편을 완독하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찰나의 시간동안 나는 ‘눈이 순한 작가’라는 나의 예언이 틀리지 않기를 바랐다. 훗날 책을 사볼지 모를 그가 아니라, 읽는 내내 행복했던 나를 위해서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슴에 맴돌았던 한 가닥 온기를 최대한 지속시키고 싶었다.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한 문장까지 최은영은 나의 서툰 예언을 어기지 않았다.
“그건 그저 구역질 나는 학살일 뿐이었어요” (중략) 그 말은 아빠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간, 그 일을 겪은 이후로 애써 살아온 응웬 아줌마 자신에 대한 쓴웃음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아빠의 태도에 실망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당신들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라는 마음이 그날 밤, 아줌마와 우리 사이를 안전하게 갈라놓았다. 그건 서로를 미워하고 싶지도, 서로로 인해 더는 다치고 싶지도 않은 어른들의 평범한 선택이었다.
- 82p, 「신짜오, 신짜오」 中
『쇼코의 미소』 속 사람들은 상처를 지닌 이들이다. 이를테면 전사한 한국 월남 용병의 가족과 그 월남군에 의해 식구가 몰살당한 베트남 가족의 상흔 같은 것들. 하나같이 잊을 수 없었거나, 잊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한 상처들을 안고 그들은 살아간다. 대체할 수 없는 누군가를 상실했을 때 남겨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파하고 그리워하는 것뿐이라고 최은영은 덤덤하게 말한다.
최은영의 이야기가 갖는 힘은 인생의 비극을 순하고 맑은 시선으로 재해석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주인공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건이 과거 시제로 서술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래서다. 시간의 마법을 통과하며 상처가 주는 고통은 차츰 견딜만해 진다. 평범한 일상의 언어로 이루어진 작가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들은 치밀하게 건축된 진실 앞에 서게 된다.
언론이 “세월호 사고로 304명이 사망했다”고 전할 때, 최은영은 ‘내 딸도 그날 배에 있었어요’(「미카엘라」)라고 쓴다. 전자의 문장이 사태의 ‘사실’을 적시한다면, 최은영의 문장은 하나의 사건이 주변인들을 어떻게 바꿔놓는가 하는 ‘진실’을 함축적으로 그려낸다. 소설가 김연수가 『쇼코의 미소에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된다. “주인공은 어떤 사건을 경험하는데, 그러고 나면 다시는 예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소설가의 일』)고 김연수는 쓴 바 있다. 누구나 그렇듯, 최은영의 주인공들은 다시는 “예전”과 같아지지 못할 오늘과 내일을 견딘다. 그렇게 살아간다.
최은영을 읽을 때 나는 인생은 강물, 나는 그 위에 얹혀진 들꽃잎 같다고 생각했다. 유속과 방향을 조정하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틀지만 굽이치는 강물은 종종 내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곳으로 나를 몰아넣는다. 여기가 끝이었으면 하고 바랄 때조차도 강물은 여지없이 흐르고 마는 것이어서, 눈을 뜨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곤 했다. 당신을 잃고도, 사건 이전의 나를 잃고도 염치없이 살아남은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잃어버린 것을 추모한다. 기억하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전하며 추모해 온 나날들이 순하게 쌓여 저마다의 고유한 나이테를 이룰 것이다. 살아가면 살아지겠구나. 최은영을 완독한 독자는 속는 셈치고라도 그리 믿고 싶어질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브런치에서 긴 침묵을 깨게 해준 최은영 작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너무 좋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으나, 좋다는 말만 반복하느라 글 전체를 갈아엎길 여러번이었다. 이 책을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으로 구입했다는 점도 다행스럽다. 내가 뭘 어쨌길래 나한테 이래. 삶에게 따져 묻고 싶어지는 날이면 나는 밑줄과 메모로 지저분해진 이 책을 쓸어내리며 이렇게 되뇌일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