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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Nov 17. 2017

영화 <러빙 빈센트>:실패를 멈추지 않은 불굴의 영혼

The Starry Night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는 누구일까. 누군가는 피카소를, 또 다른 누군가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주장할 것이다. 나 역시 같은 질문을 몇 차례 받은 바 있었는데 수년간 내 대답은 일관됐다. 빈센트 반 고흐(Vicent van Gogh). 빈센트(이하 고흐)야말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예술가임과 동시에 가장 혹독하게 오해받은 한 인간이라고 나는 믿었다.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자화상 60cm x 49cm/1889년 1월/캔버스 유채 / 출처 http://artntip.com/407


 자신의 귀를 잘라 동네 창녀의 손에 쥐어준 화가. 여자의 부모가 딸을 보지 못하게 막자 램프에 손을 넣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그녀를 보겠다고 악을 쓰다 화상을 입은 남자, 제 발로 입원한 정신 병동에서 물감을 마셔 자살을 시도한 환자. 다소 극적인 몇 가지 일화는 고흐를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 화가로 각인시켰다. 실제로 고흐는 친구를 사귀는데 미숙했으며 그가 머문 마을 사람 중 대다수는 이 괴짜 외국인을 미치광이 취급했다. 살아서는 미친 화가였고 죽어서는 신화가 된 인간, 빈센트 반 고흐.


그러나 정말 그게 전부였을까.





 흔히 압도적으로 미적인 경관이나 장면을 볼 때 우리는 “그림 같다”는 은유로 찬사를 보낸다. <러빙 빈센트> 앞에서 우리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은유를 생각해내야 하는 난관에 놓인다. 이 영화는 100여 명의 화가들이 6년간 그린 62,450장의 유화를 이어 붙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가셰 박사의 초상>, <까마귀가 나는 밀밭>, <탕기 영감의 초상> 등 고흐의 걸작들이 생명을 불어넣은 듯 살아 움직이며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살아 움직이는 그림 앞에서 “그림 같다”는 찬사는 더 이상 은유일 수 없고, 우리는 새로운 찬사를 궁리해야 할 것이다.


 <러빙 빈센트>는 고흐가 죽은 다음 해인 1891년, 고흐의 편지를 그의 동생 테오에게 전하기 위해 길을 떠난 청년 아르망의 이야기다. 아르망은 고흐의 몇 안 되는 친구이자 우편배달부인 조셉 룰랭의 아들이었다. 고흐는 성실히 테오와 자신의 편지를 전하는 조셉을 신뢰했고, 아르망은 이 점이 늘 불만이었다. 하루 종일 텅 빈 캔버스만 노려보거나 술을 마시기에만 급급한 미치광이를, 아르망은 최선을 다해 무시해 왔다. 


 테오를 찾기 위해서는 고흐를 잘 아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불가피했다. 화구상인 탕기 영감의 말대로 고흐와 테오는 “두 개의 몸, 하나의 심장”을 공유했던 까닭이다. 형의 자살 이후, 심장의 반쪽을 잃은 테오는 6개월 후 숨을 거두고 형의 옆에 묻혔다. 아르망으로서는 우편 전달 임무를 그만둘 적절한 구실을 얻은 셈이다. 죽은 사람에게 편지를 전할 수는 없으니까. 아르망은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인간 빈센트 반 고흐를 알기 위한 여정에 착수한다. 




“다른 누구나 마찬가지로, 나도 정다운 친구라던가 친밀한 동무가 필요해”

                                                                                                  -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 1』


“내 작품을 선보이고 싶어. 이 보잘것없고, 별 볼일 없는 내가 가슴속에 품은 것들을.”

                                                                                                                                    - 영화 <러빙 빈센트> 중


 고흐를 위대한 예술가로 만드는 건 그가 보인 광기나 기행 같은 종류의 것들이 아니다. 고흐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혐오의 시선을 알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줄 누군가를 간절히 바랐다. 불현듯 가슴에 내리 꽂힌 사랑을 얻기 위해 분투하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과 건달들이 돌을 던지며 괴롭히는 건 일상이었다. 그러나 고흐는 꿋꿋이 무거운 이젤을 등에 지고 매일 들판으로 향했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 800여 점 중 생전에 판매된 건 오직 한 점뿐이었다. 고흐가 위대함은 그가 죽을 때까지 실패를 멈추지 않은 인간이었다는 점에 근거한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 빈센트 반 고흐 / 1890년 / 캔버스에 유채 / 50x103cm / 반 고흐 미술관 


“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 김훈, 『내 젊은 날의 숲』 서문 중


 평범한 사람들이 석회 암석을 무심하게 스쳐갈 때 조각가는 그 안에서 조각상을 본다고 했다. <러빙 빈센트>는 고흐의 실제 작품들과 고흐풍의 유화 수만 점을 통해 고흐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1인칭 시점으로 보여준다. 찬란한 아를 지방의 태양과 황금빛 파도처럼 일렁이는 보리밭, 강인한 생명력을 초록으로 뽐내는 산천과 초목들. 고흐가 바라본 세상은 이토록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그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고, 우리가 석회 암석 속에서 보지 못한 것들을 보았다. 


밀짚 모자를 쓴 자화상/ 1887/ 캔버스에 유채 / 40.6 × 31.8 cm


 영화가 끝났을 때, 관객들은 고흐를 두고 “자기 귀 자른 미친 화가”라 단언하기를 주저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술과 알코올에 미친 광인으로 불린 이 남자는 찬란한 세상과 인간을 너무나 사랑했다. 이 사랑은 그의 붓끝에서 빈 화폭으로 오롯이 옮겨졌다. 영화는 지독하게 오해받아온 한 인간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변론해 내고 있다. <러빙 빈센트>는 실패하기를 멈추지 않은 불굴의 영혼에 바치는 찬사다. 이제 우리가 새로운 찬사를 궁리해 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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