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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Dec 21. 2017

<로스트 인 더스트>:연루되는 가난에 대하여


“ 한없이 우울해졌다. 가난 자체보다 가난에서 멀어지려는 욕망이 삶을 언제나 낯설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

                                                                            -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136p   


 고등학생이 된 내게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등록금까지가 경제적 지원의 마지막이며, 그다음부터는 네가 알아서 헤쳐가야 한다고.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건 곧 자퇴를 의미했다던 아버지의 대학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자금 대출 제도가 있어 다행이라 안도하면서.    

 

 대학교 1학년 2학기가 개강해도, 군대를 전역한 이후에도 지원은 끊이지 않았다. 새 학기 등록금을 납부할 때마다 당신은 내 졸업까지 남은 학기를 손가락으로 세보시더라고 어머니가 전해주셨다. 옛 다짐을 버린 이유를 묻자 당신은 자식 놈이 채무자로 사회에 나가게 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다. 파스로 도배한 당신의 왼쪽 어깻죽지가 보였다. 2017년 현재, 경력 3년 이하의 사회 초년생 중 47%가 학자금 대출이 있으며 평균 액수는 2,959만 원이다. (조선비즈 2017년 12월 07일 기사)     


  부모라는 이름을 떠안은 이들은 어떤 유산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발악했다. 유산의 이름은 가난이었다.                           


  

출처 =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스틸컷
“ 저 침대에 얼마나 누워 계셨어? ”
“ 세달... 직전에는 꽤 힘들어 하셨지 ”     


 초원에 선 형제는 말을 아꼈다. 형인 태너는 1년전 출소했다. 그는 친아버지를 죽였다. 그 후 어머니는 병환에 말라 죽는 순간까지 큰아들을 찾지 않았다. 동생 토비는 아버지를 쏜 형을 원망하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우린 다 벌 받는 것처럼 ” 산 까닭이다. 아버지에 의한 학대가 연상되는 말이었으나 형제는 약속한 듯 침묵한다. 지나간 흉작에 대해 말하는 일의 무용함을 그들은 황량한 텍사스 초원으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텍사스 카우보이들은 앞을 보며 산다. 아버지는 죽었고, 그들 앞에 놓인 건 은행에 저당 잡힌 가문의 농장이었다.    

  

 잡초가 노랗게 타들어가는 농장을 은행이 담보로 인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농장에서 유전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죽어가고 시추 기계는 비쌌으므로 남은 선택은 대출뿐이었다. 은행은 하워드 여사에게 “근근히 먹고 살만큼”의 돈만 대출해 주었는데, 이는 여사가 시추 기계를 사들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대출 상환 기일까지 빚쟁이로 남아 있기를 은행은 바랐다. 주민들의 예금이 모여 자본이 되었고, 이제 자본은 주민들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자신들의 삶이 이지경인 것까진 용납할 수 있었다. 휴대폰으로 예금을 이체하는 21세기에 카우보이 생활이 안락할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아버지를 사냥총으로 쏘아죽인 범법자의 삶도 평탄하진 않았다. 소를 팔든 농장을 팔든,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미래의 희망에 베팅할 수밖에 없었다. 자식들만이라도 대물림되는 가난에서 자유롭기를 토비는 희망고, 태너는 그런 동생을 사랑했다. 그러나 자본이라는 괴물은 안개 속 등대처럼 불확실한 희망까지 저당 잡았다. 서부 텍사스인들에게 농장을 뺏긴다는 건 곧 벼랑 끝을 의미했다. 벼랑 끝에 선 자의 윤리는 복수와 수단을 가리지 않는 투쟁, 혹은 포기뿐이다. 은행을 턴다는 건 그들이 복수와 투쟁, 두 가지를 동시에 택했음을 보여준다.     


출처 =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스틸컷


 <로스트 인 더스트>의 원제는 ‘Hell or High Water’다. 전자는 영화의 OST로 삽입된 노래의 가사고, 후자는 금요일 대출 상환 만료일전까지 “무슨 역경이 있어도(hell or high water)” 돈을 가져오라는 상담관의 대사다. 바싹 마른 텍사스 황야에 자본은 모래 폭풍을 일으켰고, 카우보이 형제는 길을 잃었다.


 두 사람은 은행에 저당 잡힌 빚을 갚고 시추 기계를 구입할 만큼의 돈만을 강탈한다. 이는 매캐한 흙먼지를 마시며 사는 게 자신들의 팔자임을 두 사람이 용납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석유 시추 기계는 죄 없는 토비의 자식들을 위한 것이다. 자식들이 가난의 흙먼지에 시달리는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토비는 참을 수 없었고, 형인 태너는 동생을 동정했다. Hell or High Water. '어떤 역경을 겪는다 해도' 그것만은 안 된다고 두 사람은 생각했고, 생각한 바를 시행했다.     



출처 = 전북일보

 전주대 김광혁 교수는 '빈곤아동의 발달과 사례관리 효과'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빈곤 아동이 비빈곤 아동에 비해 주요 5과목에서 평균 5.3점 낮은 점은 점수를 받았다. 참고서나 학원 교육을 접할 수 없는 빈곤층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점수가 낮은 건 예정된 결과였다. 한국에서 교육(학력)은 신분상승의 가장 주효한 돌파구가 된다. 가난은 광범위한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작용하고, 자식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연루되는 중이다.


 영화가 끝난 후, 나와 동생의 졸업까지 남은 학기 수를 세었을 아버지의 투박한 손가락을 생각했다. 아버지는 농부였고, 농부의 자산은 당신의 몸 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삐걱거리는 관절마다 파스를 붙이며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수천만원의 학자금 채무자로서 취업 시장에 설 자식들의 얼굴을 떠올렸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와 우리 가족은 내일의 쌀값을 고민했던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내일의 쌀값을 걱정하고 참고서 살 돈을 염려해야 하는 가정에게, 가난의 연루란 얼마나 확실한 숙명일 것인가.


 '다이나믹 코리아'라는 광고 카피를 기억한다. Dynamic, 역동성은 변화 가능성에 근거한다. 몸부림쳐도 연루되는 사람들이 만연한 한, 우리 사회는 다이나믹이란 단어를 쓸 자격이 없는 게 아닐까.


<로스트 인 더스트> 의 주 OST 중 하나는 'Knocking on heaven's door'다. 가난의 '흙먼지 속에서 길을 잃은 자들(lost in dust)'이 '어떤 역경에도 불구(hell or high water)'하고 '천국의 문을 두드(knocking on heaven's door)'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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