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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Dec 10. 2017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고치는 의사,살리는 의사

환자이기 이전에 인간


"아 지금 고치니까 조용히 하세요! "


 성마른 인상의 의사가 쏘아 붙였다. 나이는 삼십대 중반은 됐을까. 그는 내 귀 속에 내시경을 밀어 넣던 참이었고 모니터에는 흉측하게 부어오른 살덩이가 적나라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잘못이 있다면 귀가 조금 멍멍하다던 어린 손자의 귓속 상태에 놀란 것뿐이었다. 어디가 잘못된 건 아니죠? 금방 나을 수 있나요? 시술 연장을 챙기던 의사는 한 마디만 더 해보라는 기세로 할머니에게 뇌까렸다. 나는 고객이기 이전에 환자였고, 금쪽같은 손주의 쾌차 여부는 오롯이 의사 손에 달려 있음을 할머니는 잘 알고 있었으리라. 부어오른 자리를 찢고 소독하는 시술이 끝날 때까지 할머니는 죄인처럼 숨소리를 죽였다. 손자의 가방을 쥔 할머니의 거친 손등이 하얗게 질려있던 걸 나는 기억한다. 의사는 2주치 약을 처방하겠다는 말과 함께 우리를 물렸다.


 얼마 후 나는 완쾌했지만 그날 의사가 찢어 놓은 건 수술 자리뿐만이 아니었다. 몇년이 지나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나는 지금까지도 그 의사의 가운 자락을 틀어쥐고 흔드는 상상을 한다. 당신한텐 뻔한 병이어도 그러는 거 아니라고. 아픈 손자를 이끌고 온 할머니한테 걱정하시지 않아도 된다 한마디 말해주기가 그렇게 어려웠느냐고. 


 의사 앞에서 이유없이 작아졌던 기억, 누구에게나 있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피곤에 절은 응급실 당직 의사의 무례와 짜증도 감내한다. 어떤 병이 내 몸에 들어앉은 건지, 나으려면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 환자 본인은 철저히 무지한 까닭이다. 내 돈 내고 온 병원이지만 나으려면 어쩔 수 없다.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은 이와 같은 상황을 두고 “의료 시장은 소비자 주권이 없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몇몇 의사들은 진료실에서 떨고 있는 이를 질병을 지닌 환자로만 본다. 그것만으로는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환자들도 이름과 가족이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대한 망각은 환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음을 나는 십여년 전 그날 진료실에서 배웠다.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병에 걸린 생명체, 다시 말해서 개인은 항상 반발하고 다시 일어서고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하고 주체성을 지키려고 한다. 이러한 수단을 조절하거나 유도하는 것은 의사인 우리들의 기본적인 의무이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24p


의사는 자연학자와는 달리 (...) 단 하나의 생명체, 역경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려고 애쓰는 하나의 개체, 즉 주체성을 지닌 한 인간에 마음을 둔다.

                                                                                                                                           - by. 아이비 맥킨지 


 현대의 고전이 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제목 그대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는 환자’와 그에 버금가는 신경계 중증 환자들의 이야기다. 올리버 색스의 표현에 따르면 환자들은 자신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출판하도록 허락했다. 여기서 “절망적인 상황”은 그들이 앓는 질병의 심각성은 물론 불치병이라는 조건까지 포괄하는 표현이다. 이 책에서 색스가 말하는 건 환자들이 앓는 ‘질병‘이 아니다. 때로는 질병과 분투하고 때로는 타협하며 생을 이어가는 ‘사람’을 그는 말하고자 한다. 


“가련한 크리스티너는 1985년인 지금도 8년전과 다름없이 ‘척수를 빼내버린‘ 상태로 지내고 있다. 평생 그럴 것이다. 이런 삶을 산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내가 아는 한 그녀는 ‘몸이 없는‘채로 살아가는 최초의 인간이다.”

                                                                                                                                                       - 본문 98p


 크리스티너는 몸을 잃어 버렸다. 작은 수술을 앞두고 그녀는 몸이 사라지는 꿈을 꿨고 이를 의사에게 말했지만 무시당했다. 다음 날, 그녀의 몸은 정말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상실한 건 제육감(第六感), 즉 '고유 감각'이다. 고유 감각이란 신체의 현 위치와 상태를 감각하고 제어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일반인은 테이블에 놓인 컵을 잡을 때 계산할 필요가 없다. 컵의 위치를 확인하고 손을 뻗어 잡으면 된다. 그러나 크리스티너가 컵을 잡는데는 좀 더 복잡한 노력이 요구된다. 손이 얼마나 컵과 가까워졌는지, 지금쯤 손을 펴고 컵을 감싸면 되는지, 너무 세게 컵을 쥐진 않을지 눈으로 일일이 ‘의식’해야 한다. 고유 감각을 상실한 환자는 몸으로 하는 모든 일을 의식하며 수행한다. 웃을 때도 마찬가지.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올리고 있지 않으면 그녀의 입은 흉하게 벌어질 것이고 사람들은 그녀를 저능아 취급할 것이다. 그녀는 평생 병을 이기기 위해 분투할 것이나 결국 실패할 것이다.


 죽음이라는 불치의 병이 생명의 조건이듯, 불치병은 그 자체로 환자의 삶에 있어 조건이 된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는 P선생, 기억이 과거에 멈춰져 끊임없이 퇴행하는 지미, 절단한 다리의 발톱이 파고드는 환각에 시달리는 남자, 완전언어상실에 걸려 타인의 어떤 말도 이해할 수 없게 된 사람... 색스의 환자들은 하나같이 가혹한 조건속에 내던져 진 사람들이다. 색스의 시선은 환자의 ‘병’에서 ‘병을 안고 살아가는‘ 한 개인의 투쟁으로 옮겨간다.


“그(지미)의 기억이 되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더라도 인간은 기억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인간은 기억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아닙니다. 인간은 감정, 의지, 감수성을 갖고 있는 윤리적인 존재입니다. (...) 신경심리학상으로 봤을 때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견지에서는 할 일이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by. A.R 루리야 박사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재인용)


 의사는 사람을 고치지만, 좋은 의사는 인간을 살린다. 불치병 판정과 함께 의사의 할일은 끝나지만 환자를 삶으로 다시 끌어올리려는 자의 의무는 그제야 시작된다. 환자가 독한 절망 앞에 무릎 꿇었다면 끊임없이 설득해 의지를 북돋고,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 재활 계획을 짜고, 지진파 곡선처럼 흔들리는 환자의 마음을 보듬는다. 해서 기어이 ‘살도록’ 만든다.


 히포크라테스 이후, 의사가 병을 치료해온 이유는 인간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병환 앞에 좌절한 환자의 마음을 보듬는 일 또한 의사의 윤리적 의무 중 하나다. 불치병 진단 이후까지 병과 함께 살아가야 할 환자를 위해 번민했다는 점에서 올리버 색스는 좋은 의사였다. 2015년, 이 위대한 의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전세계적인 추모 물결이 인 것도 그래서다. 그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였다.




 책을 덮자 낡은 상념들이 먼지처럼 피어올랐다. 손주의 가방을 꼭 쥔 채 침묵했던 할머니의 서러움이 있었고, 할머니에게 윽박지르던 의사의 미간 주름이 뒤를 이었다. '왜 우리나라는 이 모양인걸까' 중얼거리면서 나는 무심코 모니터를 응시했다.


사진 출처 = 뉴데일리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에는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를 살린 의사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그는 경직된 환자에게 남한 걸그룹 노래를 들려주며 간단한 환담을 나눴다고 밝혔다. 이미 환자를 ‘고친’ 그가 어떤 의도로 친밀감까지 쌓으려 했는지 나로선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사람을 고치는 의료 기계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장기속 무수한 기생충을 하나하나 제거한 그의 의술보다 이제 막 새 땅에서 눈을 뜬 젊은 병사에게 걸그룹 노래를 들려주는 그의 모습이 더 인상적인 건 왜 였을까. 쏟아지는 여론의 찬사에 그는 “의사의 할 일을 했을 뿐”이라 일축했다. 이 땅에도 사람을 ‘살리려는’ 의사들이 많이 있다고, 나는 문득 믿고 싶어졌다. 


“의사와 환자는 (질병의 치료에 있어) 협력자로서 동등한 위치에 있으므로 서로 배우고 도울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새로운 치료법이 밝혀진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1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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