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몰랐을 당신의 이야기
페르소나(persona)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그리스어로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대할 때 가면을 쓴 채 대합니다. 아버지라는 가면, 혹은 아들이라는 가면, 상사와 부하직원이라는 가면을 써야합니다. 비교적 정상적인 대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싶다면요.
헌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가면을 쓰는데서 오는 피로감이 그것이죠. 가끔은 가면과 가식 따위 벗어 던진 채 묵혀둔 진짜 욕망을 표출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절친한 관계라고 해도 나의 지저분한 욕망이나 고민까지 전부 털어놓을 수는 없는 법이죠. 언젠가 약점이 될 수도, 상대가 나를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우리는 어떤 대나무숲으로 들어가 내 귀가 당나귀 귀임을 털어놔야 할까요? 젊은 분들이라면 ‘대나무숲’이라는 말에서 힌트를 얻으셨을 수도 있겠군요. 맞습니다. 구글과 네이버, 다음, 페이스북 같은 온라인 세상이 오늘날의 대나무숲입니다.
구글 트렌드로 정리한 인간의 진짜 욕망 보고서. 오늘의 책인 『모두 거짓말을 한다』입니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금융회사는 정보가 시카고에서 뉴저지로 이동하는 시간을 1,000분의 4초를 줄이고자 수천만 달러를 들여 광섬유 케이블 접근권을 얻었다.”
『모두 거짓말을 한다』, 75p
유수의 금융그룹이 경쟁 회사보다 1,000의 4초라도 먼저 얻고자 하는 이 정보의 이름은 바로 ‘미국 월간 실업률’입니다. 크고 작은 뉴스에도 요동치는 게 금융 시장임을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테죠. 어쨌든, 최신 월간 실업률은 수천만 달러를 훨씬 상회하는 가치를 지녔습니다. 이 중요한 정보를, 남보다 빨리 받아보는 정도가 아니라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용하다는 점쟁이라도 찾아가야 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4차 산업 혁명의 화두 중 하나인 ‘빅데이터’가 이미 오늘날의 점쟁이 노릇을 하고 있으니까요.
먼저 수년간의 미국 실업률 데이터를 구글 코릴레이트에 넣습니다. 실업률이 높았던 지역에서 즐겨 사용된 검색어를 찾는 것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실업자들이 많이 검색하는 검색어를 찾아낸다면, 다음 달에 검색어 순위가 높은 지역은 실업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겠죠. 그럼 그 검색어는 무엇일까요? 고용센터? 일자리? 실업수당?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검색어는 ‘슬럿로드(slutload)’였다. 가장 자주 찾은 검색어가 포르노 사이트였던 것이다. ”
- 『모두 거짓말을 한다』, 77p
실업자의 특징 중 하나는 ‘시간이 남아돈다’는 것입니다. 남아도는 시간 동안 실업자들이 구직 사이트만 노려보고 있진 않겠죠. 그래도 그렇지 1순위가 포르노 사이트라니. 이 같은 결과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느끼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우리 인간은 페르소나의 이면에 많은 것을 숨긴 채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구글(어쩌면 네이버) 검색창은 나의 비밀을 절대 발설하지 않는 상담가 혹은 사설탐정인 셈이죠.
“ 남성들은 신체의 다른 어떤 기관보다 생식기관에 관한 질문을 많이 올린다. 폐, 간, 발, 귀, 코, 목, 뇌를 합친 것보다 많다. 남자들은 기타 튜닝하는 법, 오믈렛 만드는 법, 타이어 바꾸는 법보가 성기를 크게 만드는 법을 더 많이 검색한다. (중략) 여성들이 하는 가장 흔한 고민은 남자가 절정에 언제 이르느냐가 아니라 왜 절정에 이르지 않느냐이다.”
- 『모두 거짓말을 한다』, 149p
만족도 높은 성관계를 위한 전문가의 조언 중 가장 흔한 것은 ‘파트너와 대화하라’입니다. 성감대는 어디인지, 어떤 체위를 선호하는지 따위에 대해서요. 하지만 빅데이터는 남성과 여성들이 파트너 대신 포털 검색창에 고민을 토로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약해보이고 싶지 않아서, 혹은 파트너에게만은 섹시해 보이고 싶어서 일수도 있겠죠. 이 소통의 부재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하는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하지만 구글 검색 결과가 지인들의 입에선 결코 들을 수 없는 비밀들을 드러내 보인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외에도 빅데이터는 공익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들을 내놓기도 합니다. 일례로 독감 발병률이 있습니다. 개인에게야 독감이 별일 아닐지 모르지만, 보건당국이나 제약회사의 입장은 다릅니다. 이 둘에게 어느 지역의 사람들이 얼마나 독감에 걸렸는지 파악하는 건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미경으로나 보이는 독감균이 어떻게 퍼져나가는지를 아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독감 증상’, ‘근육통’ 같은 검색어의 상승추이를 살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독감 관련 검색어가 자주 검색된 곳은 여지없이 독감 환자 수가 상승했습니다. 이처럼 『모두 거짓말을 한다』는 한 번의 검색이 데이터화 되어 실업률, 독감 발병률, 특정 광고 선호율 등의 파악에 사용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편리하긴 하지만, 조금 소름끼치기도 하는 세상이죠. 그러고 보면 먼 미래처럼 느껴지는 4차 산업 혁명의 시대를 우리는 이미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사실 우리는 인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이 좋은 소식이고 나쁜 소식인지도 알지 못한다. (중략) 내가 죽으면 천국의 책임자에게 물어볼 것이다. ”이봐요, 대체 뭐가 좋은 소식이었고 뭐가 나쁜 소식이었소?“”
미국이 자랑하는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kurt Voneegut)의 말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인간은 한 사건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죠. 하물며 전에 없던 신기술의 등장이 사회 전체에 미칠 영향은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
빅데이터는 유용합니다. 두터운 페르소나 이면의 고민을 묵묵히 들어준다는 점에서, 또한 독감 발병률 등 공익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죠. 빅데이터에 대한 책인 『모두 거짓말을 한다』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 스티븐스 다비도위츠도 경고했듯, 빅데이터의 남용은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기업의 인사 담당자가 신입 사원의 SNS 속 단어들을 빅데이터화해 정치적 이념성 등을 사찰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이 같은 발상을 전체주의 독재자가 활용한다면 어떨까요? 끔찍하죠. 조지 오웰의 『1984』에나 어울릴만한 문제들을 빅데이터는 현실에서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데이터를 이해하는 것에는 장점이 더 많습니다. 이미 빅데이터는 도래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순기능을 살리든 역기능을 제어하든, 언제나 기본 조건은 그것에 대한 ‘앎’에 있습니다. 빅데이터의 활용·악용 가능성을 명쾌하게 밝힌다는 점에서 『모두 거짓말을 한다』는 탁월한 저작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재밌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죠.
어쩌면 커트 보네거트가 천국에서 던지겠다던 질문의 답은 살아있는 우리에게 달렸을지도 모릅니다. 빅데이터의 발전은 좋은 소식었는가, 나쁜 소식이었가. 아직 누구도 답은 모릅니다. 다만, “좋은 소식이었다”는 답을 할 수 있도록 활용해 갈 책임만이 우리에게 남았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