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언 May 07. 2019

영화<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야생화에도 나비는 앉노니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스틸컷
“난 아직 살아있어! 여기 살아있다고 새끼들아!”        

 남자는 자신의 허름한 트레일러 밖에서 절규한다. 그의 집 벽면에는 ‘게이 새끼는 나가 죽어라’ 따위의 욕설이 붉은 스프레이로 휘갈겨져 있다. 남자의 이름은 론 우드루프. 로데오와 섹스에 미친 카우보이이자 게이 혐오자, 그리고 한 달 전 에이즈로 30일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자였다. 삶의 짓궂음이랄까. 에이즈 환자와 동성애자를 향해 내뱉어온 그의 숱한 편견들이 이제 그 자신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의사의 시한부 선고에 론은 병원을 뛰쳐나와 멕시코로 향한다. 우선 멕시코에서만 합법인 약물로 자신을 구하기 위함이요, 다음은 그 약물을 수입해 미국 내 에이즈 환자를 상대로 한몫 챙기기 위해서였다. 시시각각 죽음의 공포와 살을 부대끼는 에이즈 환자들에게 무허가 약품을 팔겠다니. 실정법 위반임은 물론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걸로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론은 시한부의 삶이라도 어떻게든 살아가겠노라 선택한 거니까. 약물을 싣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갑자기 터진 론의 울음은 ‘살아가겠다’라는 그의 선택이 결코 손쉽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어떻게든 살기로 했다면, 그걸로 족하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스틸컷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 온 걸 환영합니다”     
     

 동성애자 레이언(자레드 레토 분)과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연 론은 멕시코에서 시작해 일본, 이스라엘 등을 다니며 FDA 승인을 받지 못한 약물들을 사 모은다. 모든 약물은 론의 몸에 먼저 투약한 뒤 판매한다는 차별점까지 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에이즈 전문 병원을 위협할 만큼의 대성황을 이룬다. 이곳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운영 원칙은 단 한 가지. ‘돈 없으면 꺼져’다.   


“(차키를 던져주며) 내 차 팔아서 저 사람한테 약줘”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스틸컷

 영화는 론의 성숙, 정확히는 론의 욕망이 성숙해 가는 과정에 주목한다. 처음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론의 욕망은 당연하게도 말초적이다. 싸구려 매춘부들과 파티를 벌이고 이명이 들릴 때까지 마약을 들이킨다. 이후 에이즈 환자들에게 약을 팔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그 동기는 ‘나 치료하는 김에 돈도 번다’는 이기심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론은 그토록 혐오하던 동업자 레이언이 에이즈 병원에서 신약을 먹고 죽자 병원으로 달려가 의사의 멱살을 잡는다. “네가 죽였어”를 반복하며 격노하는 그의 눈빛은 영화 초반, 동성애 혐오 발언을 쏟아내던 자신의 얼굴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한낱 ‘역겨운 게이’ 카테고리에 속해있던 동업자 레이언을, 론은 유심히 들여다보고 말았다. 동성애자도 삶의 기쁨과 슬픔, 각자의 사연을 품고 사는 인간이며, 무엇보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고자 발악하는 한 생명임을 그는 알아 버리고 만 것이다. 죽음을 접하며 소년은 어른이 된다 했던가. 레이언을 잃은 후 론의 욕망은 더 이상 말초적일 수도, 이기적일 수도 없다. 론은 돈 없는 에이즈 환자들에게 약을 무료로 나눠주는 동시에 환자들의 자유로운 투약을 막는 FDA와의 소송전에 돌입한다. 무명의 에이즈 환자와 거대 국가 기관과의 전면 소송전. 론의 패배는 죽음처럼 확실했다. 그럼에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모두는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패배를 예감하면서도 목소리를 냄으로서 그의 실패는 위엄을 쟁취한 까닭이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스틸컷

 영화에서 론은 여러 차례 '야생화'로 비유된다. 그가 터프한 야생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 아니다. 야생화는 누구도 이름을 모르는 꽃이다. 길 가다가 보이면 '꽃이 있네'라고 잠시 신기해할 뿐, 언제 열매를 맺는지 따위엔 누구도 관심이 없는 꽃이 야생화다. 더러는 꽃인지도 모른 채 밟거나 깔아뭉개기도 하는 꽃이다. 꽃이되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는 꽃이 야생화다.     


 그래서 수천의 나비에 둘러싸인 론이 미소 짓는 영화 속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이름 없는 야생화에게도 나비를 매료시키는 각자의 향기가 있다는 사실과, 그렇게 견디고 있으면 그 마음이 꽃가루처럼 나비의 발끝을 타고 퍼져 나갈 거란 희망의 메시지였다. 지금도 온 사회로부터 없는 셈 쳐지는 삶을 엉버티고 있을 에이즈 환자들에게도 그러하리라는 격려 같기도 했다. 그러니 살아라. 살아가 달라.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그렇게 말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시체들의 아침>: 걸작이 되지 못한 나의 삶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