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집

오글거린다는 말

by 시언

몇 달전, 간만에 나간 독서모임에서 였다.


그 날의 선정 도서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다가 문득 '봉사 활동'이 화제에 올랐다.


십여명의 회원들이 제각각 봉사 활동에 관한 경험들을 돌아가며 이야기했고 마지막 내 차례가 되었다.


"저는 20살 대학 신입생 때부터 쭉 교육 봉사 동아리(야학)에서 교사로 활동 했습니다. 남들은 저를 보며 대단하다, 취업에 유리하겠다 하는데 솔직히 민망할 때가 많아요. 저는 세상에 폐를 많이 끼치며 사는 인간이거든요. 그래서 이런저런 과오를 조금이라도 갚으며 살자고 시작한 게 여기까지 왔을 뿐이에요. 취업에도 별로 도움이 안될 겁니다. 봉사 인증 시스템에 봉사 입력을 해야 봉사시간이 인정이 되는데 아직 아이디 만드는 법도 모르거든요."


음... 하는 소리와 함께 몇 초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인상적이라는 표정, 관심 없는 표정 등등 다양했다. 침묵을 깬 건 그날 처음 온 한 남자 신입회원이었다.


"좀 오글거리네요."


좌중에서 옅은 웃음이 하품처럼 번져갔다.


몇 달전 들은 한 마디를 아직까지 맘에 담아두고 있거나 하진 않다.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말에 일희일비할 나이는 슬슬 지나고 있는 듯 하다.

다만 그 날부터 '오글거린다'는 표현에 대한 상념이 많아졌다.


요즘 20대들, 정말 재미있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빛을 발하는 작명센스와 위트에 감탄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허나 그 재미에 대한 반대급부로 '진지함'은 이제 배격해야 할 이른바 '꼰대적 애티튜드'로 몰리고 있다. 여럿이 모인 술자리에서 진지한 얘기를 꺼내려면 '오글거린다'는 비난의 화살을 받아낼 각오부터 해야한다.

물론 요즘 20대가 상황에 관계없이 웃음만을 강요한다는 말은 아니다. 불합격, 결별, 가정문제 등 누구에게나 아프고 힘든 일에는 그들 역시 진지하게 함께 아파하고 울어준다. 또한 자리의 분위기를 무시한채 진지한 자세로만 일관하는 발화자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염려하는 건 '일상적 진지함의 쇠퇴'다. 몇 가지 유머코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복잡한 일상 감정을 진지하게 발언할 공간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은 나만의 착각일까. 꼭 대단한 비극에만 한정지어 진지해져야 하는 걸까.


오글거린다는 말. 들어도 들어도 도통 정이 안 가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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