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집

<사피엔스>를 통해 바라본 언론의 본분

by 시언


언론인은 원래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었고, 언론인들은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무임승차자인지를 사회에 알려서 사회를 이들로부터 보호한다.’

-<사피엔스>, 48P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


흔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한다. ‘세상 만물 중 으뜸이라는 뜻의 이 표현은 마치 인간(= 사피엔스)만을 위해 만들어진 단어처럼 느껴진다. 정말 호모 사피엔스는 땅위에 탄생한 그 순간부터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했을까?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에 따르면 답은 NO. 현재 과학 교과서에서는 마치 사피엔스가 다른 동물과는 차원이 다른 지적 능력을 사용해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선 양 가르친다. 허나 실상은 그와 다르다.


사피엔스는 지구상 많은 동물 중에서도 나약한 축에 속하는 종이다. 사자처럼 날카로운 발톱도, 독사나 전갈과 같은 치명적인 독도 지니지 못한 사피엔스는 만물의 영장은커녕 포식자들이 먹고 남긴 동물의 사체를 훔쳐 먹으며 연명하는 처지였다. 그들은 사냥보단 채집에 더 유능했지만, 그마저도 나무를 타기 적합하게 진화한 다른 동물들에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몸 전체 열량의 30%를 소비하는 뇌는 문명시대 전까진 이렇다 할 발명품을 만들지 못했다. 즉 최초의 인류는 멸종해온 수많은 종들이 그랬듯, 멸종하기 딱 좋은 수준의 나약한 동물 중 하나였다.


이토록 나약했던 사피엔스가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데는 어떤 비결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언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피엔스 언어 특유의 디테일에 있다.


모든 동물들은 동종 간에 통용되는 언어를 가지고 있다. 개미들은 페로몬, 돌고래는 초음파를 통해 먹이나 천적의 출현 정보를 교환한다. 허나 사피엔스의 언어는 다른 동물들의 그것과 다르다.


우리는 제한된 개수의 소리와 기호를 연결해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무한한 개수의 문장을 만들 수 있다....(중략)...녹색원숭이도 동료들에게 조심해! 사자야!”라고 외칠 수 있지만 현대 여성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오늘 아침 강이 굽어지는 곳 부근에서 한 무리의 들소를 쫓는 사자 한 마리를 보았어.”’

-<사피엔스>, 46P


포식자의 출현 여부 같은 단순 정보전달 차원을 넘어선 사피엔스의 언어 구조는 그들 간의 뒷담화(Gossip)’를 가능케 했다.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디테일한 정보를 담아낼 수 있는 언어 특성을 이용해 누가 신뢰할 만한 리더인지, 누가 피해야 할 리더인지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


자연 상태에서 전형적인 침팬지 무리의 개체수는 20~50마리다. 집단 내 개체 수가 늘어나면 사회적 질서가 불안정해지고 결국에는 불화가 생겨서 일부가 새로운 집단을 형성한다.’

-<사피엔스>, 51P


이렇게 공유한 정보를 토대로 사피엔스는 일반 동물들의 공동체 구성 한계인 50개체를 넘어서는 거대 공동체를 이뤘다. 자연 상태의 공동체에 머문 다른 동물들과, 이를 거부하고 거대 공동체를 이룬 사피엔스의 운명은 순식간에 역전됐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선언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야만 했다라고 수정될 수 있으리라.


따라서 모든 언론인들이 기사를 쓰기에 앞서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떻게 조회수를 높일 것인가?’가 아닌 사회 유지에 필요한 정보는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인류가 생태계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던 이유는 단 하나, 신뢰할 만한 정보를 토대로 거대 공동체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망각한 언론이 눈앞의 명성이나 구독자수에 집착하는 순간, 인류가 이룬 사회라는 공동체는 걷잡을 수 없이 분열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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