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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May 10. 2020

이젠 맥주가 싫지 않다

    

출처 = Unsplash

 솔직히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얼마 전, 4캔에 만원이라던 편의점 맥주를 사들고 친한 형의 자취방으로 드러설 때만 해도 말이다. 칭따오, 호가든, 기네스 오리지널, 타이거... 눈에 보이는대로 집어온 맥주를 봉투 안에서 꺼낼 때마다 형, 누나들의 눈에는 의구심이 지하수처럼 드리워 갔다. 나라고 애초에 좋아서 사온 맥주도 아니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바, 나는 맥주를 싫어한다.     


 이후 30분간 대학 시절 토론 시합 준비 뺨치는 논쟁이 벌어질 줄 알았더라면 나는 맥주를 사오지 않았을까. 기네스 오리지널 캔을 따는 순간부터 평소 막내가 하고 싶다던 건 오냐오냐 맞춰주던 형, 누나들의 격렬한 저항이 뒤따랐다. 너 온다고 쟁여둔 전통주들은 어쩔거냐, 남으면 니가 책임져라...등등. 댁들 한잔 마실 때 나는 세잔 먹겠다고 읍소해봐도 소용없었다. 니가 어떻게 이러냐.. 배신이다.. 이상한데서 독한 구석이 있는 나는 기어이 맥주로만 밤을 지새웠고, 그날 4명 중 블랙아웃으로부터 살아남은 것도 나뿐이었다. 맥주든 안동소주든 밤새는 건 똑같은데 왜 그렇게 이상해 한걸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문이 얼마간이나마 풀린 건 며칠 후 친한 후배와의 술자리에서였다. 당분간의 결심대로 ‘맥주만 마시겠다’ 선언하니, 그 역시 믿지 못해했다. 이윽고 나타난 점원에게 소주와 맥주 한병을 시키자 녀석의 설마는 확신으로 변모했다. 평소 같으면 내가 술을 따를까 무서워하던 놈이 잔을 들 때마다 나를 도발해댔다. 이 형 다 죽었네... 같이 못 놀겠네.. 까불지말고 니 텐션이나 잘 챙기라 조언하고 말았다. 이윽고 연애 사업에 이어 가족 이야기까지 넘어간 그는, 내 소매를 붙들고 송아지 눈망울만한 눈물을 쏟는 와중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아니, 딴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형이 맥주를 마셔? 그동안 해온 말이 있는데.”

“무슨 말??”

“형은 맥주만 마시는 사람들이랑 못 친해지겠다고 그랬잖아. 거리감 느껴져서 싫다고.”     


  그제야 깨달았다. 나를 향한 오해들이 얼마나 깊은지, 두어달간 맥주만 마시겠다는 내 결심이 왜 이토록 집요한 반발을 샀는지, 나는 이토록 진한 오해를 살 때까지 왜 소주와 와인, 막걸리만을 고집해 왔는지를.  

    

    


출처 = Unsplash

 처음 술병을 마주했을 때를 기억한다. 휩쓸리듯 참석한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자리였고, 숫기라곤 먹고 죽을래도 없던 나는 그때부터 이미 ‘공공의 찐따’로 찍혀 주변부를 겉돌고 있었다. 이러한 직감이 내 자의식 과잉에서 비롯한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 뚱뚱한 놈이 멋 부리는 거 같잖지 않냐, 땀 흘리는 건 또 어떻고.. 등의 술자리 뒷담화가 학기 내내 내 귓가에 들려오곤 했다. 그땐 나나 그들이나 어렸으니 지금은 다 잊고 용서했지만, 여튼 그딴 말 내 귀에 안들리게 하라고 속시원히 말 한마디 못해본 스무살의 나는 방치한 바나나처럼 속부터 썩어갔다. 범인(凡人)들의 의견 따위 개의치 않는다는 듯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따위 책들을 쉬는 시간마다 펼쳐읽곤 했으나, 실은 책 같은 거 평생 읽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한심하게 낄낄거리고 싶었다.      


 그런 내게 술, 특히 소주는 가히 기적의 음료에 가까웠다. 이 초록생 병에 든 물 몇잔만 마시면 거짓말처럼 얼어붙은 입에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평소 리액션에 인색하던 동기들도 술이 들어갈수록 웃음에 헤퍼져 갔다. 나의 어수룩한 농담에도 그들이 넉넉하게 웃어줬던 이유는 딱 하나, 그들이 취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때의 나는 그렇게 믿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술을 잘못 배운 셈이다. 술은 소심한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창구라고, 이렇게도 다가설 수 없으면 정말 끝장이라고, 스물의 나는 그리 믿었다.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남몰래 토해가며 늘려갔던 나날들.     


 그런 내게 소주를 마다하고 굳이 맥주를 택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캐쥬얼한,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나와 ‘적당히’ 친해지고 싶은 거라고 나는 멋대로 생각했다. 어쩌다 술잔은 부딪히겠으나 마음까지 부딪히고 싶진 않은 사람들이 흔히 취하는 제스처랄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실제로 그때 나와 맥주잔을 사이에 뒀던 이들 중 지금껏 연락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봉구비어처럼 캐쥬얼하지 못한 나였고, 순댓국처럼 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던 그들이 아니었을까. 엇갈려가는 인연들이 못내 아쉬워 ‘맥주만 마시는 사람들과는 친구 못한다’고 괜시리 여기저기 투덜거리고 다녔더랬다. 주변 지인들의 몰이해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됐다. 딴 사람은 몰라도 니가 ‘맥주'를 마신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 말이다.      


 이제 난 맥주를 마신다. 이상하게 일이년전부턴 소주를 마시고 집으로 걸어가는 날이면 땅바닥까지 꺼지는 기분이었다. ‘서른, 이제 잔치는 끝났다’던 시인의 말이 예언처럼 다가와서 였을까. 물방울 맺힌 소주잔을 아무리 부딪혀도 기어이 가까워질 수 없던 간격들이 혼자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내 그림자를 찔러댔다. 소주도 안 먹히네? 그래봤자 또 혼자인 걸. 가끔은 첼시부츠 신은 발로 아무도 없는 새벽 거리를 달렸다. 불온한 예감을 따돌리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부러 불을 켜두고 나온 원룸의 불빛이 보이면 멍하니 서서 숨을 골랐다. 잔치는 끝났고, 소주를 통해도 고독은 가시지 않았다.      

출처 = Unsplash

 이제 난 맥주를 마신다. 어느새 술 없이도 말을 잘하게 됐으므로 소주는 필요 없어졌다. 크게 아쉽지도 않은 걸 보면 애당초 좋아서 마셨던 게 아닌 모양이다. 소주잔으로 도망치듯 맺은 인연이지만, 어느새 소중해진 당신들의 흥을 깨지 않기 위해 소주 대신 맥주를 홀짝인다. 어쩌면 내가 스무살에 냈어야 했던 용기는 주량을 어거지로 늘리는 객기가 아니라, 어수룩하고 어버버한 나일지언정 그런대로 드러낼 수 있는 담대함인지도 몰랐다. 그 사실을 뼈아프게 후회할만큼 간신히 자란 나는 싫어하던 맥주만 마신다. 가끔은 누군가와 맥주잔으로도 쨍하고 마음까지 부딪힐지 모를 날을 그려가면서. 이젠, 맥주가 그리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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