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길 잘했다, 가끔은 그렇게 생각해요
고딩 때 미친 락앤롤 키드였다. 정확히는 서태지 키드. 대장 원년 팬들의 연세를 고려하면 서태지 그랜썬(Grand son)이 맞으려나. 어린 놈이라 돈이 없었지, 팬심이 부족하진 않았다. 2000년 컴백 앨범 시그니처인 헤드뱅잉을 따라하다 잔도 여럿 깼고(엄마 미안), ‘서태지 에디션 MP3’를 사겠다며 매주 5000원씩 바득바득 모았다. 대장 소속사에서조차 업로드를 까먹은 거 아닐까 싶을만큼 늦게 공개됐던 '코마'(Coma)의 뮤직비디오를 1년 넘게 매일 검색하기도 했다. 아마 그 사랑의 연유는 '000의 음악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와 같은 인스타 감성류의 그것은 아니었으리라. 먼저 입에 붙은 가사가 "축복된 인생에 내가 주인공은 아닌가봐" ( 7집 '로보트') 였던 걸 보면.
이젠 안하면 불안한 운동과 나 뼈를 빻아 쌓아올린 친목... 향후 10년 넘게 지속될 강박을 낳은 왕따와 초고도 비만의 시간도 이때였다. 죽고 싶진 않은 듯 했으나 살고 싶지 않다는 건 확실했다. 어른들이 터널은 끝난다기에 믿는 척 했을 뿐 실은 크레바스 사이로 추락중이라 믿던 그 시절, 대장의 노래엔 이상한 위로가 있었다. '힘내라'는 같잖은 위로 대신 '옆에 있을게'라고 읊조리던 가사들. "침착해, 내가 너의 곁에 있는데" (7집 당시 싱글 ‘Watch out’)
땀내 가득한 방구석 콘서트의 마지막 곡. “왜 이리지 틀리지? 너는 또 다시, 숨쉴 곳을 찾겠지만”(7집 당시 싱글 ‘Watch out’)까지 외치고 나면 간신히 내일 등교할만큼의 용기가 생겼다. 사회화 직전의 호모 라피엔스들이 우글대던 정글의 시간을 나는 비교적 무탈히 통과했고, 어느새 대장의 노래를 '필요로' 하지않는 어른이 됐다.
얼마 전 달리다 참 오랜만에 대장의 노래가 랜덤재생됐다. 다행히 이젠 향수였다. 음악이 밥벌이가 아닌 내가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라고 선언하기는 다소 민망한 일이나, 그 시절, 대장의 음악은 별 도리 없이 내게 그러했다. 매일 죽음을 떠올리던 소년은 대장의 앨범 커버가 인쇄된 MP3를 등불처럼 쥔 채 어두컴컴한 숲을 통과했다. “내가 말했잖아. 너를 데려간다고, 너의 아픔들은 이젠 없을 거라고”(Seotaiji Live Tour Zero 04 ‘Take One’ 중)
대장, 용기내 살아내니 적지 않은 기쁨들이 있었어요. 살아있길 잘했다. 이제 가끔은 그렇게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네가 나쁜 게 아니라고, 같이 있자고 다독거려 줘서. “내가 너를 만난 건 행운이었어”(Seotaiji Live Tour Zero 앨범 ‘Take Five’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