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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Aug 19. 2022

뭐야, 아직 다들 쓰고 계셨던 거예요?

친애하는 글쟁이 여러분들께

하는 것도 없으면서 바쁘게 지냈다. 시간 관리 못하는 놈들의 생활이 대개 그렇다. 아, 작문 노동자로서 글은 매일 쓰고 있었다. 돈 안 되는 브런치 작가를 때려치우고 베어 문 월급의 과육은 몹시 달았다.


웃긴 소리지만, 월급의 단맛은 내 20대를 다 바친 브런치 작가 생활을 떠올릴 때마다 극대화됐다. 이젠 햇수로 세기도 힘든 그간의 브런치 작가 생활은 10만원 남짓한 외부 원고료만을 남겼을 뿐이다. 휴대폰으로 글을 썼다고 가정했을 때 데이터값도 못 되는 돈이었다. '작가님의 글을 보지 못한 지 120일이 지났어요ㅠ.ㅠ' 같은 앱 알림을 볼 때마다 묘한 쾌감에 몸을 떨었다. 누굴 더 벗겨먹으려고, 나는 이제 글로 돈을 벌고 있단다, 따위의 냉소. 생각해보면 웃기다. 누가 머리에 총 들이밀고 브런치 작가가 돼라 협박했던 것도 아니고.


한번만 상스러운 단어를 쓰겠다. 그런 내게 브런치 재접속의 계기는 말 그대로 '개뜬금포'였다. 바로 아버지의 권유였다. 월급과 별개로 글 쓰기를 놓지 말라는 것. 황당함에 실소가 터졌다. 중학생 때 소설가가 되겠다는 아들을 불러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같은 말을 하시던 분이? 천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가족도 사람이었다. 물론 그때만 해도 딱히 브런치 복귀 계획은 없었다. 가에 진심이었던 자의 포기 진한 그토록 진한 절망의 결과물인 법이다. '이만하면 됐다'고 치를 떨며 분지른 만년필을  다시 잡기란 쉽지 않다.


작가 한 분이 계속 글을 쓰고 계시다는 건 앱 알림을 통해 알고 있었다. (아마) 동갑인 K 작가님. 문체도 다르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분이지만 브런치 입문 때 등대로 삼았던 분이었다. 근데 K 작가님을 비롯해 당시 내가 구독하던 작가님들 대부분이 작품 활동 중인 건 놀라움을 넘어 경악스러웠다. 포기하고 떠난 건 나뿐이었던 것이다. 절대 다수의 작가에겐 별다른 보상도 없는 브런치에서? 계속?




나는 확신의 고양이파다.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비릿한 청어트릿 냄새가 날 지경이다. 당연히 구독하는 채널도 구독자 수십 만명대 채널부터 1000명대 채널까지 셀 수 없다. 각 고양이의 미모, 자막 스타일, 집사의 말투 등 매력 포인트는 각양각색이다. 단, 딱 하나 약속한 듯 같은 점이 있다. 바로 몹시 사랑스러운 내 고양이와의 영상 기록을 남기는 작업 자체를 즐긴다는 점이다. 멀고 먼 '떡상'의 그날까지 견디어내는 근성도 바로 이 즐기는 태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난 글쓰기를 즐기지 못했다. 그간 써온 100여 편의 글들에서도 고통스럽게 키보드 앞의 시간을 견디는 20대의 내 모습이 역력다. 그럼 왜 글을 썼느냐고? 별 볼일 없는 내 재능들 중 유일하게 빛나는 것이어서가 그 시작이었다. 잘하는 걸 더 잘하려 글을 쓴 나는 브런치를 떠났고, 글쓰기를 즐기고 사랑한 작가들은 남았다. 브런치 피셜, 구독자 수 상위 1%를 기록하고도 견디지 못해 때려치운 작가와, 자기만의 속도로 꾸준히, 계속 쓰고 있는 작가 중 누가 성공적이었는가를 물으면 답은 자명하리라. 안경 쓴 옆태가 멋지던 한 노작가의 책 제목도 있었지.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고.


지금도 계속 쓰는 모든 작가님들이 키보드 앞에서의 시간을 은은한 미소로 보내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표정만 보자면 그 반대에 가깝다는 걸 나는 진저리 게 잘 알고 있다. 달리기를 사랑하는 나도 달릴 땐 거의 우는 것에 가까운 얼굴이 된다고 친구들은 말했다. 그럼에도 6년째 즐겼고, 즐기고 있다. 즐기는 걸론 결코 성공할 수 없다던 모 스포츠 스타 출신 연예인의 차가운 일성이 반은 틀린 이유다. 최소한의 즐김 없인 아예 성취의 그날까지 지속할 수조차 없다.  글쓰기를 잘하기보단 즐기기위해 노력했어야 옳았다.


우리 한국인들은 쓸데없이 자기반성이 과하다고 믿는 나지만 오늘은 예외다. 저와 함께 계속 썼고, 쓰고 계신 브런치의 작가님들,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계속해 주세요. 뒤늦게라도 따라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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