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입니다.
같이 일했던 동생 녀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마지막 연락은 최근 연애를 시작했다는 게 전부였죠. 몇 년 동안이나 ‘연애 무쓸모론’을 주창하던 녀석이 사랑에 빠졌다기에 대견해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100일 선물은 뭐가 좋을지 물으려나... 하지만 예상외로 동생의 목소리는 어딘가 짓눌려 있었습니다.
“형 나 00이한테 벌써 마음이 식은 거 일까봐, 그게 무서워”
“너 만난지 얼마 안됐잖아? 엄청 좋다고도 했었고. 뭘 보고?”
“아니 그게 그러니까...”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사랑에 빠진 남자들이 그렇듯, 동생은 도도한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인스타그램에 '#힐링' 태그 달기 좋은, 본인은 딱 싫어하는 그런 분위기의 카페를 부러 검색하고, 언제 첫 전화를 걸어볼까 애태우고, 고백 멘트는 뭘로 할까 줄담배를 태우고 등등이요. 다행히도 그녀는 덜덜 떨며 내민 동생의 손을 잡아줬고, 화수분만큼이나 풍부한 애정 표현으로 그간의 다망(多忙)함에 보답했습니다. 곰인형의 플라스틱 눈을 보듯 속을 알 수 없던 그녀가 활짝 웃으며 처음 발음한 “사랑해” 세 음절의 짜릿함. 여기까진 순조로웠죠.
문제는 매복사랑니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솟구쳤습니다. 바로, 동생 본인의 마음이 바로 그것이었죠. 여자친구가 처음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가슴 속에서 휘몰아치던 짜릿한 전율이 마술사의 모자 속 토끼처럼 사라진 것입니다.
“보름전에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좋았어. 그냥 좋은 수준이 아니지. 거의 감전된 느낌이었으니까. 근데 오늘 점심 때 카톡하다가 여자친구가 불쑥 사랑한다고 했는데, 엄청 기쁘거나 놀랍지 않은거야. 그냥 밥 먹었냐고 물어보는 거보단 기분 좋은 딱 그정도? 근데 나도 여자친구 마음에 응답해야 되니까 이모티콘 써가면서 ‘나도 사랑해’라고 했는데, 사실 내 솔직한 감정보단 과장된 거거든. ‘나 벌써 식은건가’ 싶으니까 순간 무섭더라고.”
착한 녀석이죠. 상대가 보여준 마음만큼 화답하지 못하고 있을까 두려워한다니. 예비 시어머니를 뵀느니 식은 내년이 낫겠다느니 하는 제 지인들에 비하면 꽤 귀여운 고민이기도 했고요. 비실비실 웃음이 새나왔지만 동생은 사뭇 심각했습니다. 결국 저도 진지해질 수밖엔 도리가 없었죠.
"너, 요즘 여자친구가 사랑한다거나 하면 뭐라고 대답해?”
"나도 사랑한다고 하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나도 사랑한다고.”
"그냥 그렇게만 말해? 아니면 이모티콘을 섞든 미소를 짓든 가미해 가면서 해?"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안 그러면 얘가 얼마나 상처받겠어."
"그럼 된 거 아니야?"
"...?"
"니가 무슨 직업 연기자도 아니고, 즉석에서 거짓말을 지어내고 과장을 섞어서라도 그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 그 갖은 수고를 다하고 있는데.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야? 너 생판 남대할 때도 그렇게 해?"
"....아니? 남한텐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성의껏 거짓말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진짜 연기자처럼 말투, 표정 바꾸고, 카톡이면 문장 가다듬고, 했던 말, 행동 전부 기억하고... 니 사랑이 벌써 식었다면 니가 그 수고를 다 감당할까? 아닐거야. 그냥 사실대로 툭 말하고 말겠지. 아니면 건성으로 ‘어~ 나도~’하고 말던지. 상대야 상처받아도 뭐 너는 솔직했으니까. 나한텐 이게 최선이야 하면서 어깨 한번 으쓱하고 말 걸? 안 그래?"
"아..."
"Everybody lies.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미국 드라마 <Dr. 하우스> 중
우리는 믿습니다. 진실과 거짓말의 위계는 분명하다고, 그러므로 남들한텐 몰라도 서로가 가장 소중한 존재인 연인 관계야말로 오로지 진실된 말과 행동이 근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사람들은 상대에 대한 사랑의 깊이에 비례해 ‘진심으로 거짓말’합니다. 이 명제를 토대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변주해 보면 이정도가 되겠네요.
”행복에 관해 말할 때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진실하지만, 나의 불행과 아픔, 우울에 관해 말할 때 사람들은 당신에게만은 거짓말한다“
돌이켜보면 흔합니다. 나만 바라보는 가족들 앞에선 슈퍼맨이지만 친구들을 만났을 땐 ‘우울하다’ ‘희망이 없다’ 쓰린 털어놓는 아버지, 회사에서 실컷 깨지고 와서도 데이트에 신난 여자친구 앞에선 ”별일 없었다“ 눙치는 연인 같은 사람들이요. 소용돌이 치는 가슴을 억누르면서 웃는 낯을 취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감정 노동’이라는 네글자가 갖는 무게감으로 설명할 수 있겠죠.
동생 녀석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현재 내 솔직한 감정은 당신을 웃게 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거짓말을 한다, 그것도 최선을 다해서.
사랑한다면 조금의 힘든 기색도 내비치지 말고 광대처럼 웃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어디로도 물꼬가 트이지 않은 상처가 기어이 썩고 곪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죠. 또한 이른바 ‘최선의 거짓말’을 가장한 자기 변명이나 위선으로 악용될 여지가 다분함 역시 명약관화합니다. 소중한 관계일수록 진실이라는 단단한 토대위에 건설돼야 옳습니다.
하지만 어떤 거짓말, 그것도 최선을 다한 거짓말에는 사랑이라는 진실이 숨겨져 있음을 안다면, 당신이니까 하는 거짓말도 있음을 알아차린다면, 그때 또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겁니다. 너흰 아무 걱정마, 아빠 아직 팔팔하잖아 라며 뒤돌아서는 한 남자의 굽어버린 등과, 밥도 잘 챙겨먹고 잠도 잘 잔다며 큰소리치는 취준생 딸의 눈 밑 그늘 같은 것들이요.
봄 같지 않은 봄도 봄인 걸까요. 얘 때문에 애태워 죽네, 문드러져 사네 하는 고민들이 이틀에 한번 꼴로 전화기를 울립니다. 연애 장기 냉담자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족속이죠. 듣는 사람 입장에선 엊그제 그놈이나 저번주 그 누나나 비슷한 사연 같건만 본인들에겐 땅이라도 꺼진 양 심각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사랑이 저런 거였지 참' 하고 새삼스레 회상하게 됩니다.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불야성을 이룬 밤거리의 러브호텔 간판을 보며 중얼거렸다는 한 마디가 떠오르네요.
"지바 현에서 '굿럭'이라는 이름의 러브호텔을 보았습니다. 애쓰십시오"
이게 뭔 소린가 싶다가도, 정말이지 애쓰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구나 끄덕이게 만드는 게 사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사랑하는 모두들 굿럭, 아무쪼록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