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단행본 <죽음에 관하여>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의 라틴어. 옛 로마에서 승리한 개선장군들은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로 하여금 행진 뒤에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고 한다. 중세 카톨릭 수도사들 간의 인사말이었다는 설도 있다.
약 2년 전 새벽,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소형차와 부딪치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왼쪽 허벅지를 차에 받친 나는 약 1m를 날아가 인도 보도블럭 위에 떨어졌다. 차에서 내린 차주는 재빠른 안부확인 후 갑자기 끼어들면 어쩌냐며 쏘아붙였고, 경황이 없던 나는 그저 괜찮다는 말만 주워섬기곤 절룩거리며 기숙사로 돌아왔었다. 되려 끼어든 건 자동차 쪽이었고 다친 것 역시 나였음에도,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은 죄스러움을 떨치기 힘들었다.
‘살아간다는 건 수도 없이 많은 우연의 화살들 사이를 걷는 것이죠. 어떤 화살은 나와는 멀리 떨어진 곳을 지나지만, 또 어떤 화살은 바로 내 옆을 스치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들만 그걸 모를 뿐이에요.’
- 영화 평론가 이동진, 팟캐스트 <빨간책방> 중
주변 지인들에게 보험 처리를 일임한 후 병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때 만약 내가 떨어졌던 곳에 자동차나 다른 물체가 있었다면? 자동차가 박은 곳이 내 허벅지가 아닌 다른 곳이었다면? 끔찍한 상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필요하다고도 생각했다.
우리 인생에서 단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자연사, 타살, 사고사 등등... 단 일주일만 뉴스를 눈여겨 봐도 황당하다 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감을 알 수 있다. 죽음은 길거리 사람들의 표정만큼이나 다양한 가면을 쓰고 불현 듯 들이닥치는 불청객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우린, 마치 천년이라도 살 것처럼 삶을 낭비한다.
오늘 다룰 책, <죽음에 관하여>는 이런저런 사건들로 인해 죽게 된 사람들이 죽음과 환생 사이의 짧은 시간동안 ‘신’을 만나 죽음과 삶에 관해 이야기 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웹툰이다.
# 옴니버스 형식 :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독립된 여러 개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방식. 주인공이 다른 인물로 된 짧은 이야기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이어진 구성을 말한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여기가 어딘지를 묻는 한 청년 앞에 신이 나타나 대답한다. “여긴 저승이다”. 그제서야 청년은 이럴 순 없다 울부짖으며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신에게 간청한다. 하지만 그를 내려다보는 신의 눈빛은 건조하기만 하다.
"기회는 없어. 넌 죽어 버렸다. 삶은 한번 뿐이야. 무슨 반전을 기대해?"
그렇다. 죽음 이후에 사후 세계가 있다 없다 말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단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죽음 전으로 결코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죽음은 찾아오게 마련이고, 죽음 이후에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아직 살아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어차피 예기치 않게 들이닥치는 죽음, 멸망 직전의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처럼 뭔가에 쫓기듯 향략에 젖어 살아야 할까?
허나 잘 알려진대로, 지나친 향락은 언젠가 반드시 사람을 파괴하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당장 내일 지구가 망할 것처럼 사치와 향락을 부여잡고 있다가 기어이 망가져 버린 사람들을 우린 누구나 한번쯤 본 적이 있다.
반면 허무주의는 어떤가. 어떻게 발악하든 종국에는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인간의 삶. 성경 코헬렛서의 코헬렛처럼 ‘헛되고 헛되다’를 외치며 삶의 모든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내저어야 하는가. 하지만 한번 허무주의의 늪에 빠졌다가 다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침잠해 가는 사람들을 보면 이 역시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결국 작가는 중세의 메멘토 모리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만으로도 삶은 바뀔 수 있다고. 작가는 21화에 달하는 길고 긴 죽음의 사연들 안에서 그렇게 외치고 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짝사랑하던 사람에겐 사랑을 고백하고, 원수가 됐던 친구에겐 그간 미안했다고 말하며, 여리고 못난 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몇 번이고 달려와 일으켜 주던 가족들에게 고마웠노라고 지금 당장 이야기하자.
우린 언젠가 ‘반드시’ 죽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