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당신의 기억을 확신합니까

by 시언

수년간 확신해 오던 어떤 기억이 실제로 있던 일과는 영 딴 판이어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죽고 못 살던 그녀와의 연애를 끝내자고 선언한 게 실은 그녀가 아닌 나였다든지, 나는 A라고 말했던 것을 당시 동석한 모든 사람들은 Z라고 기억한다든지 할 때 말이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는 그럴 리가 없다며 손사래 치지만, 머지않아 당시 상황의 디테일들이 하나 둘 피어오르며 예감은 팩트가 된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했던가. 기억은 종종 우리의 확신을 배반한다.


영국이 자랑하는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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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의 기억을 얼마나 확신합니까?’라고.


명민한 두뇌를 토대로 철학적 예리함을 뽐내는 영재, 에이드리언은 (토니 웹스터)’의 친구임과 동시에 모든 또래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학업성적이든 인간관계든 평균치에 불과한 나의 삶에 비해 에이드리언의 삶은 모든 것이 명료하고 진취적 이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각자의 삶을 살며 연락이 뜸해졌을 즈음, 에이드리언이 욕조에 들어가 손목을 긋고 자살했다는 비보가 전해져 온다. 누구보다 명민하던 옛 친구의 자살 소식에 토니는 충격에 휩싸인다.


Life goes on . 투팍(2pac)의 노래 제목처럼 삶은 계속되고, 에이드리언에 대한 기억 역시 시간의 풍화 안에서 희미해진다.


한가로운 토니의 은퇴 생활은 어느 날 배달된 한 통의 편지에 의해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자살한 친구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상속받으라는 유서 집행 변호사의 문서. 토니는 잊고 있던 에이드리언과, 에이드리언의 여자친구인 베로니카에 대한 기억을 반추하기 시작한다. 베로니카는 토니의 전 여자친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토니는 둘의 교제를 알리는 에이드리언의 조심스러운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저주를 적어 보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다. 에이드리언은 그 편지를 받은 후 연락이 끊겼고, 몇 년 후 닿은 그의 다음 연락은 자살 소식이었다. 어이없게도, 토니는 자신이 한 짓을 잊고 있었다 소설은 종반부로 가면서 점차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에이드리언]“‘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본문, 34P


경험론자들은 말한다. “난 내 눈으로 본 것만을 믿는다라고.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이 눈으로 본 기억들이 사실이라고 확신하느냐고.


작가가 책을 통해 드러내려 했던 생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과거의 철없던 행동이 훗날 내 발목을 잡을 수 있으니 매사에 조심하자? 일견 타당하지만 조금 뻔하다. 희미해지는 기억을 보완할 수 있는 건 문서뿐이니 꼼꼼히 챙겨놓자? 어떤 문서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는 그 순간이 지난 다음, 즉 사후적으로 결정되기에 이것도 좀 부적절하다.


나는 그 워블리 다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다리가 흔들리는 것도 좋았다. 우리가 딛고 있는 지반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가끔이나마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본문 156P


결국 작가는 삶 앞에 겸손하라고 말한다. 수십 년 전, 철없는 패기로 보낸 편지 한 통에도 곤두박질치는 게 우리가 숭배해 마지않는 삶의 진면목이다. 인간의 인식능력은 또 얼마나 주관적인가. 자기 손으로 쓰고, 우표를 붙이기까지 한 저주의 편지마저도 뇌에서 의미 없음으로 판명되면 까맣게 망각하는 것이 우리의 기억이다. 그 뿐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은 멋대로 각색, 편집된다. 결국 우리 기억의 대부분은 ‘기억하고 싶은 기억’ 일뿐이다.


존재와 당위는 다르다. 기억의 불완전성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기 마련인 맹점, 존재. 우리가 아무리 실제와 가까운 기억만을 가지려 노력해도 우린 번번이 실패한다. 인간은 뼛속부터 주관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린 누구에게나 있는 이 맹점을 마냥 방치해도 되는 걸까? 답은 NO. 존재한다고 해서 그래도 되는 것(당위)은 아니니까. 누군가에게 화가 날 때마다 한 대 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때려도 되는 건 아니듯이, 기억이 주관적이라고 해서 멋대로 기억해도 되는 것 역시 아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딛고 있는 지반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가끔이나마 상기하는 것뿐이다. 우리 삶과 기억이 갖는 불안정성을 인정하고, 언제나 겸손할 것. 그 어떤 기억도 확신하지 않을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지 않겠냐고, 줄리언 반스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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