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기사들을 읽다보면, 선뜻 이해되지 않는 표현에 시선이 붙들리곤 한다. 예컨대 ‘헤어지자 요구하는 여자친구의 직장에 수차례 찾아가 스토킹한 50대’ 등의 표현이 그렇다. 헤어지자 요구하는 여자친구라니? 그럼 이별을 통보당한 후부터 범행하는 시점까지 가해자는 아직 피해자의 연인이었다는 뜻인가. 연애라는 계약의 파기 시점은 대체 언제인가.
연애의 시작엔 당연히 상호간의 동의가 필요하다. 오늘밤도 숱한 남성들과 적지 않은 여성들이 연모하는 상대방의 동의를 이끌어 내고자 잠 못 이루는 이유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일방에 의해 정의되고 선포된 연애 관계를 우리는 다른 말로 ‘망상’, ‘허언증’,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등으로 지칭한다.
생각해보면 희한하다. 연애처럼 관계의 시작 전 동의 절차가 사회적 상규로서 명시된 관계는 생각보다 드물다. 가족들은 날 때부터 이미 법과 피로서 질기게 묶여있는 관계고, 선·후배 관계는 입학이나 입사와 동시에 당사자의 동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부여되는 것이다. 친구 관계는 언제부터 맞고, 언제부터 아닌 게 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각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연애란, 관계의 시작 단계부터 상호간의 명시적 동의가 있어야만 효력을 발휘하는 특수 계약 관계다.
연애의 시작에 이처럼 복잡하고 엄격한 절차가 명시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연애의 시작과 동시에 연인들에게 부여되는 독점적 권한들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컨대 ‘왜 나랑 매주 만나주지 않는거야?’라고 묻는 친구는 떠올리기 어렵지만, 같은 질문을 연인이 하는 건 꽤나 자연스럽다. 같은 취지에서 연인은 친구와 달리 ‘나랑만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입을 맞추면 좋겠어’라고-당연히 간접적이고 은근한 방식으로-요구할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연애란 나라는 주식회사의 운영에 일부 개입하거나 요구할 권한을 특정인에게 부여하는 상호 독점적 계약이다. 연애의 시작에 상호 동의 절차가 필요한 이유다.
그럼 연애의 끝 또한 시작과 같은가. 당연히 아니다. 연애라는 계약의 파기는 당사자 중 한 쪽이 이별을 통보한 시점에 즉시 이뤄진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별을 통보하는 쪽이 시간을 들여 상대를 설득하거나 동의를 구하는 건 미덕일 뿐, 의무가 아니다.
만약 연애라는 계약의 파기에 상대방의 동의가 필수적이라면, 이별을 완강히 거부하는 일부 연인들의 성범죄 또는 스토킹 행위를 제지하거나 처벌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사랑의 이름으로 이미 너무 많은 범죄가 자행되고 있음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따라서 모든 이별은 본질적으로 일방적이고, 질리지도 않고 지속되는 수많은 이별 관련 범죄들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일방적이어야 한다.
‘사랑이 어떻게 그래요’라고 따져묻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다. 불과 어제까지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이 이별을 입에 담는 순간 남보다 못한 사이로 전락한다니. 하지만 그래도 묵묵히 헤어져 전 여친 또는 전 남친의 신분으로 전락해줘야만 한다. 한 철학 유튜버가 정의했듯, 사랑이란 ‘가장 내 뜻대로 하고 싶은 상대를 가장 자유롭게 해줘야하는 고통’이니까.
출처 : 논객닷컴(http://www.nonga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