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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Jul 17. 2016

영화<향수>;이것은 속죄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리뷰를 시작하면서 생긴 버릇 중 하나는 영화를 볼 때 리뷰의 부제를 궁리하면서 본다는 것이다예를 들면영화 <사도>를 볼 때는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나 애증으로 얼룩진 부자의 비극’ 같은 부제를 구상하면서 본다는 거다오늘의 영화, <향수>가 후반부 절정에 오르기 전까지 내 머릿속을 채운 부제는 이토록 지독한 탐미주의였다허나 보는 바와 같이영화를 끝까지 관람한 후 내가 결정한 부제는 이것은 속죄에 관한 이야기다이다.


 지금이야 문화와 교양예술의 대명사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는 18세기까지만 해도 악취와 오물로 기억되는 도시였다기록에 따르면하수도 시설이 갖춰지진 않았던 당시 파리에서 시민들은 길가 아무데서나 용변을 보았다고 한다당시 파리 여성들의 치마가 그토록 길고 풍성했던 이유가 길에 용변을 눌 때 가리기 위함이었다는 설이 돌 정도니 말 다한 셈이다영화의 주인공 장 밥티스트 그르누이(이하 장)는 이 악취의 길바닥 한가운데서 무책임한 어머니에 의해 말 그대로 싸질러진다’. 

 고아원과 무두 작업장 등을 전전하게 된 장에게는 한 가지 특별한 재능이 있다그건 바로 남다르다 못해 가히 동물적인 후각 능력이다한번 맡은 냄새를 평생 기억하는 것은 물론수십 수백미터 밖의 사물에게서 나는 향기도 정확히 구분해 낼 수 있는 그의 재능은 그에게 둘 도 없는 축복이자 저주가 된다.


 손질한 가죽을 배달하기 위해 마을을 찾은 장은 곁을 스쳐지나간 이름 모를 여인에게서 나는 향기에 완전히 매혹된다귀신에 씌인 양 여인의 뒤를 밟으며 향기를 맡던 장은 여자가 자신을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려하자 실수로 여자를 목 졸라 죽이게 된다


 여자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장은 어쩔 줄 몰라하며 전전긍긍한다윤리적 죄책감 때문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향기를 자기 손으로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뒤늦게 여자의 온 몸에 코를 박고 향기를 흡수해보지만 사라져 가는 체취를 붙잡을 수는 없다그날 밤 잠 못 이루던 그는 결심한다.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를 만들겠다.


 이후 향수장인에게 향수 만드는 법을 배운 장은 아름다운 소녀들을 납치해 죽인 후 그녀들의 체취를 담은 자신만의 향수를 만들기 시작한다그리고 그의 범행이 발각되어 공개처형이 예정되어 있던 날, 12명의 소녀들로 완성된 그의 향수는 그 자리에 있던 성난 군중 전체를 열락의 도가니에 빠지게 한다



 처형 현장을 유유히 떠난 장은 자신이 태어난 파리의 어시장에 도착한다. ‘장 밥티스트 그르누이란 이름의 비극이 시작된 곳에서 그는 자신의 향수를 온 몸에 쏟아 부은 뒤 열락에 빠진 행인들에게 뜯어 먹히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당연히이 영화는 매혹에 관한 이야기다. 매혹(魅惑)이란 무엇인가도깨비 매()자에 혹할 혹()자를 쓰는 매혹이란 단어의 뜻 그대로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향기에 매혹당한 장의 인생을 그리고 있다그러나 짧은 찰나의 순간영화는 자신이 단순히 향수에 미친 남자의 일대기가 아님을 피력하고 있다


 자신의 향기에 취해 열락에 빠진 군중들 한 가운데서 장은 몇 년전 자신을 매혹시킨 이름 모를 여인에 대한 상상에 빠져든다상상 속에서 그는 자신이 실수로 목 졸라 죽인 그 여인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다. 장의 눈물이 일면식도 없는 자에게 목 졸려 죽어간 여인에게 바쳐진 것인지자기 손으로 망쳐버린 완벽한 향기에 바쳐진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허나 분명한 것은 여인의 품에 안긴그리고 자신의 향수에 열광하는 군중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환희보단 고독과 회한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향기를 만날 때마다 환희에 젖어 향기에 취했던 장은 첫 번째 여인을 죽인 후부터 새로운 향기를 발명해 냈을 때도 기뻐하거나 만족스러워 하지 않는다그는 온 생애를 통해 속죄하고 있던 것이다. 죄 많은 자신의 손에 조각나 버린 완벽한 향기엄마처럼 자신을 품어줄 듯 포근했던 최초의 사람냄새를 향해그는 완벽한 향수를 만들어 바치고자 했던 것이다.


 장이 하필이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던 어시장 바닥을 죽음의 장소로 택한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기어이 물살을 거슬러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와 죽음을 맞는 연어처럼싸질러지듯 태어난 그 자리에서 향수를 온 몸에 두른 채 휘발되어 가는 그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간만에 만난 걸출한 작품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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