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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Jul 10. 2016

영화 <스물>;힘들지만 울기엔 애매한 그 이름,청춘


뭐가 이렇게... 뭐가 없냐? 사람들은 우리보고 좋을때라 그러는데, 피부가 좋다는 얘긴가? 분명히 힘들고 답답한데 어디 가서 얘기하면 배가 불렀다 그러고...”

                                                                                                                      -영화 <스물>


 하루는 동아리의 낡은 책장을 뒤지다 20여 년 전 선배들이 쓴 메모장 몇 권을 발견했습니다. 미대생 뺨치는 풍경 스케치부터 한자 한자 비장하게 써내려간 민중시까지. 홈커밍데이 때 모신 대선배님 말씀으로는 이름 모를 누군가가 동아리 테이블에 큼지막한 공책을 올려뒀는데 그때부터 자유롭게 그날의 감상을 적는 것이 전통이 됐다고 합니다.

 신기했습니다. 20여년전 청춘의 감성이 현시대 청춘들의 그것과 확연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민주주의와 우정, 낭만과 연대를 노래했고, 젊은 지성인으로서의 긍지를 기록했습니다. 요새 대학생들 술자리에서 언급했다간 진지충이라는 비난을 듣기 딱 좋은 멘트들이 그들이 느낀 청춘의 요소였던 거죠.


 한편 현재 청춘들의 자화상은 어떨까요? 찌질하고 우울하며 불안하기까지 하죠. 연일 최고수치를 경신하는 청년 실업률에 떠밀려 입학과 동시에 취업 동아리 문을 두드리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나라로 교환 학생을 떠나기 위해 밥먹을 때조차 토익 책을 놓지 않습니다.


  허나 중요한 건 현재 청춘들이 마주한 시대가 힘들다는 사실이 아닌 듯 합니다. 고되지 않은 청춘은 없으니까요. 청춘이 고되고 팍팍한 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옛 선배들이 영위한 청춘과 현재 오늘 날 청춘들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거대 서사의 실종입니.


 민주화 대열에 참가하든 하지 않든, 선배 세대들은 민주주의 구현이라는 거대한 서사시의 일원으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성했습니다. 그들에겐 맞서 싸워야한 군부 독재 정권이 있었고, 이 땅에 구현해야 할 명확한 정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성립된 이후, 20대를 하나로 통합해주던 이른바 민주화 서사는 취업, 연애, 결혼과 같은 개인적 고민들로 파편화 되었습니다. 청춘은 더 이상 사회 정의를 고뇌하는 정의의 최선봉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영화 <스물>은 거대 서사를 잃어버린 청춘들의 찌질한몸부림을 유쾌하게 담아낸 20대의 자화상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이제 막 20살 청춘을 맞은 세 친구는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을 찾아 이리저리 분투하지만, 결과는 영 신통치 않습니다. 명문대에 입학한 모범생 경재는 선배 누나를 짝사랑하지만 그녀는 교수와 내연 관계였고, 금수저 치호는 클럽만 전전하던 인생을 바꿔줄 여자를 만나지만 그녀는 연예인 스폰서를 선택하고, 가난한 청년 가장 동우는 만화가를 꿈꾸지만 주변의 압박에 못 이겨 결국 취직을 선택합니다.


[치호]“니미... 순 여자, 연애 이딴 게 고민이라고? 인생의 반환점(20)에서 이건 너무 무게감이 없어. 어른답게 어?!.....[동우에게] , 너 오늘 자살해라.”

[동호]“어어??”

[치호]“내가 요새 영화 많이 보는데, 청춘 영화들 보면 자살 하나씩은 꼭 해요. 니가 자살하면 우리의 고뇌는 한층 더 무게감이 실리는 거야.”

[동호]“나 내일 알바비 나와.”

[치호[“오우, 그럼 안 되지.”

                                                                                                                                                 -영화 <스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랄까요. 20살 청춘을 맞은 세 친구의 고민은 깃털처럼 가볍습니다. 여자, 연애, 학원비... 존재 자체에서 오는 철학적 고뇌나 고독 같은 무거움은 영화 안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시대 청춘들의 고민을 너무 희화화 시켰다는 비판은 가능할지 모르나, 감독은 거대 서사를 잃어버린 청춘들의 혼란을 유쾌하게 표현했습니다.

사업도 배우고..이런 기회가 뭐 흔해? 만화는....만화는...! (주저 앉으며) 눈물이 안 난다..... 이게 뭔가... 울기엔 좀 애매해.

                                                                                                                                             -영화 <스물>


 정말 그렇습니다. 치 떨리는 분노와 통한의 눈물 같은 정서는 구시대 청춘들의 유물이 된지 오래입니다. 말 그대로, 지금의 청춘들은 힘들지만 그렇다고 울기엔 좀 애매한 세대가 된 것이죠. 힘든데, 분명히 힘든데, 그렇다고 울기에는 좀 애매한 세대. 이것이 감독이 본 현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이지 않을까요?


 <스물>은 삶이 주는 아이러니나 부조리를 고발하거나 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킬링타임용 영화임을 고려하더라도 서사 군데군데에서 헛점이 드러나곤 합니다. 오늘의 청춘들이 달고 사는 수많은 고민을 사랑하나로 치환시켜 놓았으며, 그러면서 동시에 동우의 불우한 가정사를 통해 애환을 끌어내려 애쓴 티가 확연하죠. 그래서인지 검색창에는 영화에 대한 혹평들이 즐비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좋은 예술 작품은 상념이 많아지게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쿤데라니 피카소니 모차르트니 해도 감상 후 정서적으로 별 감흥이 없다면 그 작품은 최소한 내게 좋은 작품이 아닌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남들이 혹평을 아끼지 않는 작품이라 해도 영화관을 나설 때 이런저런 상념이 일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면 그 작품은 내게 좋은 작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게 영화 <스물>은 좋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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