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 ;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by 시언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크고 작은 욕망들을 품고 살아간다. 사회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공적인 욕망일수도, 애인을 만들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 욕망일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이야 말로 자신을 남들과 구분 짓게 하는 특징적인 무언가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프랑스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1901~1981)은 이러한 통념에 반기를 들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 자크 라캉


아직 걸음마조차 떼지 못한 아이는 자신의 생존에 엄마의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본능적으로 안다. 이 앎은 강력한 인정욕구로 이어진다. 아이는 옹알이, 걸음마 등 엄마를 기쁘게 하는 행동을 지속한다. 후일 아이가 자라나 학교에 입학하거나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변한 것은 아이가 인정받고자 하는 대상이 부모에서 선생님으로, 교수님으로, 배우자로 교체된 사실 뿐. 이처럼 모든 인간은 일생동안 타자의 인정에 목말라하며 살아간다는 게 라캉식 욕망 이론의 골자.


일반인들에게 강력한 왕권의 소유자로 잘 알려진 조선 21대 왕 영조. 허나 그는 3가지 컴플렉스에 짓눌려 평생울 불안에 떤 히스테리 환자이기도 했다. 영조의 3가지 콤플렉스는 바로, 어머니가 천민이었다는 신분 배경과 배다른 형인 경종을 독살하고 왕이 되었다는 소문들, 그리고 신하들(노론)에 의해 추대된 왕이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영조는 죽을 때까지 왕권 강화에 가히 병적인 집착을 보이게 된다.


누구 하나 믿을 수 없는 조정 안에서 지쳐가던 영조에게 늦둥이 이선(李愃, 후일의 사도’)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아직 채 핏기도 가시지 않은 아들을 보며 영조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자식만은 결코 가지지 않게 하리라 결심하고, 사도가 2세가 되던 해에 그를 세자로 책봉한다. 영조의 콤플렉스와 그를 극복하고자 하는 진한 욕망이 핏줄을 타고 사도에게 계승되는 순간이다.


어릴 때 남다른 학업 성취로 영조의 기대에 착실히 부응하던 사도. 허나 사춘기를 지나고 몸집이 커지면서 그의 관심은 무술이나 그림 같은 학문 외적인 것들로 옮겨가게 된다. 타자이던 아버지의 욕망을 넘어 자신의 욕망에 눈 뜬 것이다. 이에 영조는 사도에게 무려 10여년동안 대리청정을 맡겨 놓고 그가 어떤 결정을 하건 호통을 치며 자신의 실망감과 분노를 오롯이 표출한다. 종잡을 수 없는 아버지의 분노에 사도는 결국 울화증에 걸려 죄 없는 내관을 찔러 죽이는 등 기행을 일삼다가 결국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게 된다.

영화의 제목이 <사도>인 이유는 영화의 주인공이 사도 세자임을 분명히 나태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생각할 사() 슬퍼할 도()를 쓰는 사도란 이름은 영조가 아들이 죽은 후 아들에게 내린 묘호(왕이나 왕족이 죽은 후 붙이는 이름)이다. , <사도>의 진정한 주인공은 자기 손으로 아들이 갇힌 뒤주에 못질을 해 놓고, 또 다시 후회하고 비통해하는 복잡한 감정의 주체, 영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너 나이 때는 단 한순간도 공부를 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는데, 너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도 공부를 게을리하니...’

- 영화 <사도>


200여년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대사 한 줄이 왠지 낯설지 않다. 이 대사가 마치 영조의 입을 빌린 기성세대의 말처럼 느껴지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일자리 하나 얻기 위해 취업 성형까지 불사하는 우리 20대는 진정 좋은 환경에서도 놀고먹는 나태한 세대인가.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한병철, <피로사회>


각 시대에는 고유한 그림자, 즉 당면 문제들을 지니고 있다. 가난과 굶주림이 될 수도 있고, 군부 독재가 될 수도 있으며, 실업률이 될 수도 있다. 각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들은 그 당면 과제들에 적응하거나 맞서 싸우는 등 각자의 방법으로 돌파구를 모색한다. 그것도 아주 절실하게.


세대 갈등은 세대마다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서로 다름을 부정할 때 유발된다. 영화에도 잘 표현되듯, 왕이 되기 위해 신하들의 힘을 빌려야 했던 영조의 과제와 무리하게 커진 신권을 견제해야 했던 사도의 과제는 달랐다. 하지만 영조는 대리청정 기간 동안 자신의 콤플렉스만을 아들에게 투영하며 극복을 강요했고, 본디 총명했던 사도는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할지 갈팡질팡 하다 결국 미쳐 버렸다.


영화는 세대 간의 갈등이 어디까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 제시하며 서로를 존중하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고충과 시련, 절망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만이, 수십 년의 나이차를 넘어 세대와 세대가 화합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론이지 않을까.


내가 원했던 건 그저.. 아버지의 따듯한 눈길 한번, 따듯한 말 한마디였소..’

-영화 <사도>


모든 자식 된 자들의 숙명대로, 사도는 대타자인 아비의 욕망을 제 안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10여년이 넘는 대리청정 기간 동안 아니, 어쩌면 전 생애 동안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했다. 사도가 영조의 욕망을 욕망했던 이유가 고작 아버지의 따듯한 눈길 한번, 따듯한 말 한마디라는 사실을 통해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욕망은 당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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