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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Jul 23. 2016

영화<히말라야>;어디서 많이 본듯한 클리셰들의 향연


 한때 소설가를 꿈꿨던 내가 비평칼럼 쪽으로 방향을 튼 이유는 딱 하나였다창작의 고통을 감내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소설미술영화 등 예술들에 대해 알아갈수록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과의 괴리는 커졌다자신만의 문법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들이 감당해내는 창작의 고통은 내가 질 수 없는 십자가처럼 보였다.


 해서 브런치에서 작품 비평을 시작할 때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되도록 모든 작품들에 호의적일 것. 전문 비평가도 아닌 내가 오디션 심사위원이라도 된 양 남의 창작물을 멋대로 비판하는 건 예술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렇기에 어떤 작품이든 원작자의 창작의도를 구현하려 노력했고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정 크다면 아예 글을 쓰지 않았다하지만 오늘최대한 객관적이고 솔직하게 작성한다는 전제하에 이 원칙을 수정하려 한다.


 전설의 산악인엄홍길 대장이 아끼던 대원 박무택이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갑작스런 설맹(눈에 반사된 강렬한 햇빛으로 인해 시력을 잃는 현상)으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엄홍길 대장을 포함해 그를 아끼던 등반 대원들이 그의 시신을 찾기 위해 세계 최초로 휴먼 원정대를 조직정상 정복이 아닌 시신 수습을 위한 등반을 시작하는 것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다


 몇 년 전 무릎팍 도사 엄홍길 대장 편을 통해 휴먼 원정대 얘기를 듣고 감동했던 내게 <히말라야>는 그야말로 실패할 수 없는 영화로 보였다


 어둠속에서 외로이 얼어 죽어간 동료전 세계 수많은 산악인들이 오르내리는 길목에서 썩지도 못한 채 덩그러니 방치 되있을 동료의 시신을 생각하며 가슴이 미어지는 산악 대장과 대원들이라니훌륭한 재료를 요리할 땐 재료 본연의 맛만 잘 살려도 좋은 요리가 되는 것처럼, <히말라야역시 그러하리라 생각했다하지만 감독은 휴먼 원정대란 신선한 재료에 너무 많은 조미료를 털어 넣었다.

 일단 영화 배경음악을 보자등반인들의 쇳소리 섞인 숨소리와 대기를 찢을 듯 내달리는 강풍들날카로운 아이젠(미끄럼 방지를 위해 등산화에 부착하는 철침)이 얼음을 찍을 때의 파열음까지그대로 둬도 훌륭했을 오디오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현악기 소리에 완전히 파묻혀 버린다장신구도 과하면 오히려 독이 되듯상황과 장면을 가리지 않는 현악기 소리는 본래 의도였을 감동에게서 관객들을 되려 멀어지게 한다.


진부한 상황설정들 역시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 중 하나다


 ‘까불거리는 막내(박무택)와 그런 막내를 혼내다가 정이 드는 리더(엄홍길)’같은 장면들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을 지울 수 없다물론 처음 만난 사람들이 정들어가는 모습이 다 그런 거 아니겠냐고 강변하면 할 말은 없다허나 어느 노 시인의 선언처럼예술은 메타포(비유)사랑한다는 말을 사랑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표현해 내는 게 예술가의 윤리적 의무 아니던가


 천방지축이던 막내 박무택의 성장기 역시 방법 역시 예상 가능한 방법을 차용했다. 

 처음 팀에 들어온 박무택에게 엄홍길 대장은 산처럼 짐이 쌓인 지게를 메고 산을 오르게 한다박무택은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대장의 테스트를 극복해 낸다그리고 얼마 후막내들을 훈련시키던 박무택은 엄홍길 대장이 했던 말들("우리는 잠시 정상에 머무르는 것 뿐이다") 을 그대로 반복한다. 아버지처럼 따르던 대장을 어느새 닮아버린 제자를 표현하려던 의도는 잘 알겠으나, 역시 진부하게 느껴지는 건 별 수 없다.


 물론영화에서 훌륭했던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황정민정우박인권 등 배우들은 본래의 명성대로 상황마다 적절한 톤의 연기를 보여준다히말라야의 험악한 환경도 리얼하게 앵글에 담아냈다. 허나 잊을만하면 어김없이 들려와 감동받길 요구하는 현 악기 소리와 다소 진부한 상황 설정들은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끝내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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