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집

아빠라는 말, 아버지라는 말

by 시언

이를 먹으면서 내게 일어난 변화 중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아빠라는 호칭이 생소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어릴 땐 젓가락질을 이상하게 한다거나 어른을 보고도 인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혼나면서도 호칭은 꼬박꼬박 아빠라고 불렀던 나였다. 허나 더는 전처럼 일방적으로 혼나지 않는 나이가 된 후론, 나도 모르게 아빠대신 아버지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올 때가 있다.


아빠라는 호칭에는 단어를 발음하는 발화자의 미숙함이 전제되어 있다. 아직 어리고 미숙하던 시절, 아빠에게 한번 혼나고 나면 모든 잘못이 없던 일이 되는 어린아이에게 아빠라는 호칭은 자연스럽다.


허나 생의 어느 순간, 더는 아빠에게 혼나는 것만으로는 내가 저지른 잘못이 퉁쳐질 수 없다는 뼈 아픈 자각이 뇌리를 스친 순간부터, 아빠라는 단어는 점차 어색한 단어가 되어간다. 적어도 남자에게는.


그때부터였다. 아버지 앞에만 서면 자꾸만 부끄러워지는 나 자신을 발견한 건. 옛날처럼 일방적으로 혼나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도, 어른인 난 아버지를 마주할 때면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인 양 한없이 작아졌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나는 점차 바빠졌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먼저 연락해 아들 요새 어떻게 지내?’하고 묻는 성격이 아니셨으므로, 순간의 의문은 금세 잊혀지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렀을 무렵, 아버지는 내가 브런치에 쓴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하기 시작하셨다. 처음엔 그저 웹 서핑하시다 심심하셨겠거니 하고 넘겼다. 허나 아버지는 나조차도 써놓고 잊어버린 글들을 용케도 찾아 꼬박꼬박 공유하셨다. 공유 빈도수를 두고 구분했을 때, 아버지는 나의 독보적인 팬이셨다.


이제는 조금 알겠다. 아버지 앞에만 가면 작아졌던 이유를. 난 내 또래들이 공모전 수상이다 명문대 졸업이다 하며 날아다닐 때 가시적인 성취는 하나도 없이 자판이나 두드리며 사는 내가 한심했던 거고, 아버지의 공유는 그런 아들에게 보내는 나지막한 응원이었다는 걸 말이다.


정신없이 바빴던 하루의 끝, 침대에 픽하고 쓰러져 잠들어 버리고 싶었던 많은 순간 다시 나를 모니터 앞에 앉게 한 건 아들의 글을 찾아 공유 버튼을 누를, 아버지의 두껍고 투박한 검지 손가락이었다.


이젠 정말 징그럽게 커버린 나는 더는 어리광 부릴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지만 다음에 시골집에 내려가면 아버지란 말 대신 아빠라고 불러보리라 다짐해 본다.


“잊지 말자. 나는 아버지의 자부심이다. 모자라고 부족한 자식이 아니다.”

-드라마 <미생> 대사를 변주하여..

[원문: ‘잊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모자라고 부족한 자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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