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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Sep 23. 2016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 살려야 한다

인간을 구하는 건 언제나 인간이다


  영화가 끝나고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진한 슬픔과 분노가 턱 밑까지 치받쳤다. 함께 영화를 본 친구도 같은 심정인 듯 자리에 붙박인 채 꺼진 스크린만 노려보고 있었다. 2년 전의 그 날은 내 안 어딘가에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은 듯 보였다. 가까스로 짐을 챙겨 출구로 걸어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들도 살릴 수 있었는데...'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지난 2009115일 미국에서 있던 여객기 불시착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2009115, 설리 설렌버거(톰 행크스 분) 기장이 모는 여객기가 뉴욕 라과디아 공황에서 이륙한 지 1분 만에 버드 스트라이크(새가 비행기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엔진으로 빨려 들어간 새들로 인해 설리 기장이 모는 여객기는 양쪽 엔진을 잃고 추락할 위기에 놓인다.


 상황을 전달받은 공항 관제탑은 라과디아 공항이나 인접 공항으로 회항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허나 설리는 회항하기엔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뉴욕 허드슨 강 위에 비상착륙을 단행한다.

                                                                                                <출처=영화 메인 스틸컷>                     


 말이 좋아 '착륙'이지, 그때까지 수면 위에 불시착한 여객기는 예외 없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허나 설리 기장은 40년 간의 조종 경력을 토대로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안전하게 여객기를 허드슨 강 위에 착륙시킨다.


 설리 기장은 패닉에 빠진 탑승객들을 한 명 한 명 챙겨 비상 보트 위로 대피시킨 후 자신은 가장 마지막으로 탈출한다. 그가 비행기를 탈출했을 땐 이미 주위의 경찰과 민간 헬기, 출근 여객선들이 힘을 합해 탑승객들을 구조하고 있었다. 24. 155명의 승객들이 전부 구조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24분이었다. 당시 사고와 구조 과정을 생중계한 CNN은 이 사건을 '허드슨강의 기적'이라 명명한다.

                                                         *실제 사고 사진*


'그 누구도 처음 당하는 재난에 대비되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처음 당하는 재난에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없다. 이미 비극은 시작되어 버렸음에도 본인만은 결코 알지 못하는 아이러니. 그래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한 편의 희극 인지도 모른다.


 허나 세월호는 다르다. 세월호가 한국인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은 이유는 단순히 세월호 사건이 비극적이어서가 아니다. '살릴 수 있었던' 생명들이 수면 아래로 사라져 가는 장면이 전 국민의 뇌리 깊숙이까지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9.11 테러 이후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테러에 대해서라면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출처=JTBS '뉴스 9'>


 나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고 선실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들의 환영에 시달려야 했다. 흐릿한 이미지 속 아이들은 침대 끝에 매달려 애써 웃고 있었다. 자신들을 구하러 올 어른들을 기다리면서.


그들도 살 수 있었는데... 살릴 수 있었는데...


 재난 영화를 그저 한 편의 픽션으로 즐길 수 있는 날이 올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 불안을 증명이라도 하듯,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에 대한 관람객들의 감상평에는 하나같이 세월호가 언급되어 있다. 2014416일로부터 2년 하고도 5개월. 무수한 계절이 바뀌는 세월도 전국민적 트라우마를 씻기에는 턱없이 짧았다.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단순 명료한 진실을 나는 질주하는 소방차를 보며 확인한다...(중략)... 살려서 돌아오라. 그리고 살아서 돌아오라.'

                                                                                                       - 김훈, 바다의 기별, 73p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구할 수 있는 건 인간뿐이라는 진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동생에게 건넨 어린 오빠,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리고자 진도 팽목항으로 모여든 수많은 잠수부들, 차오르는 불길과 연기를 헤치고 이웃집의 현관문을 두드리며 화재를 알리고 죽어간 청년, 그리고 허리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고 행여 내리지 못한 승객이 있을까 수색을 계속하는 설리 기장까지. 자기 생명을 걸고 타인에게 손을 뻗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절망한 우리를 위로한다. 그렇다. 이 영화는 구원과 위로를 말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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