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집

성공이 아닌 성장으로; K작가님께

꾸역꾸역 쓰는것의 힘

by 시언


'가슴속에 만 권의 책이 쌓이면 비로소 그것이 흘러나와 글과 그림이 된다.'

- 추사 김정희


내가 글쓰기를 처음 시작한 건 초등학생 때였다. TV도 나오지 않는 두메산골에서 책은 초등학생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소셜 네트워크(?)였다. 초등학생치곤 많은 양의 책을 완독 하자 나는 뭔가에 홀린 듯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한창 친구 좋아할 나이였던 내게 시골은 외로운 곳이었다.


유기농 농산물을 판매하는 우리 집 홈페이지에 내 글(서평)을 올리자 단골분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어린 친구가 이렇게 생각이 깊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멋지게 성장해 가는 네가 자랑스럽다... 등등 수많은 리플들이 내 글 본문 하단을 수놓았다. 무엇보다 내가 매료되었던 건,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즐거움이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죽어라 자판을 두드려 댔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즈음부터 글을 읽어온 작가님 한 분(이하 K 작가님)이 계셨다. 일상 에세이나 문학 습작들을 올리는 작가님이셨는데, 글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내 시선을 잡아끈 건 글마다 달린 구독자들의 '댓글'이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십수 년 전 내가 쓴 글마다 주렁주렁 열리던 어른들의 댓글들이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도 내 글을 정기적으로 읽는 사람들이 생기고, 소통도 할 수 있단 거잖아?'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브런치팀에 작가 신청을 보냈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한다는 것에는 여러 목표들이 공존했지만, 가장 주된 목표는 '구독자 200명 넘기기'였다. 이유야 간단했다. K 작가님의 구독자수가 200명 남짓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님처럼 구독자수가 200명쯤 되면 내 글을 아끼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서로의 생각도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건가보다, 순진하게도 나는 그렇게 믿어 버렸다.


그리고 며칠 전, 내 브런치 구독자가 200명을 넘었다는 알람이 울렸다.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러나 순간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근데 왜 답글을 다는 분은 없지?'라는 의문이 피어올랐다. 애초에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는 파워 블로거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내 글을 매개로 소통하고 싶었을 뿐이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필력이 부족하니까'였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더 있을 것만 같았다. 원인만 찾는다면 그에 맞게 작문 스타일을 뜯어고칠 의향까지 있었다.


책 좀 읽는다는 주변인들에게 내 글을 보여주며 조언을 청했다. 누군가는 '글이 너무 이성적이어서 그럴 거다'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글에서 감성적인 부분을 좀 빼봐'라고 했다. 겉도는 조언들 사이에서 가슴속 조바심은 조금씩 덩치를 키워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오랜만에 K 작가님의 브런치에 들어갔다. 구독자수는 나와 비슷한 200명 남짓이었다. 최근 글들은 거의 다 읽었으니 처음 쓰신 글을 읽어보자는 마음에 스크롤을 내렸다. 헌데 작가님의 글은 밑으로 몇 번을 내려도 끝없이 이어졌다.


확인 결과, 나와 비슷한 시기에 브런치를 시작한 작가님이 그간 작성하신 글 수는 백 편이 훨씬 넘었고, 공유수와 댓글 수가 전부 0인 글들도 적지 않았다. 같은 날 기준으로 내가 작성한 글은 36, 구독자는 206명이었다.


'여러분은 성공이 아닌 성장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 CEO 김봉진 강연 중


민망하고 송구스러웠다. 글 쓰는 속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압도적인 글 편수 차이는 압도적인 노력의 차이를 증명한다. 5개월 간 40편 남짓한 글을 쓰면서도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그러면서도 분에 넘치게 주어진 성원에 감사할 줄 모르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아마 내게 부족했던 건 글이 이성적이네 감성적이네 하는 기교가 아니었리라. 꾸역꾸역 나만의 글을 써 나간다는 집요한 노력. 내가 놓쳐온 건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성공이 아닌 성장 그 자체에 방점을 찍는 것. 핵심은 거기 있을 것이다.


P.S : 어느새 브런치를 시작한 지도 5개월이 다 되어 가네요. 글 하나당 수십 회씩 올라가는 공유수를 보면서 '이래도 되는 건가?'하고 고개를 갸웃거린 적도 많았습니다. 들인 노력에 비해 큰 성원을 받왔다고 생각하기에 부끄러운 마음이 큽니다. 그럼에도 저는 원래 목표이던 구독자 200명을 달성한 후 나름의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민망하지만, 일종의 권태랄까요.


새로 정한 저의 목표는 '그저 쓰는 것'입니다. 외적인 수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글쓰기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 바꿔 말하자면 '목표를 정하지 않는 것이 목표' 정도가 되려나요. 말처럼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눈 딱 감고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운 좋게도 K 작가님이 이 글을 보시게 된다면 역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네요. 제가 보기엔'안 소심하신' 작품들 잘 읽고 있습니다. 의도하신 바는 아니었겠지만 많이 반성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 허름한 안식처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