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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문집

열정만으로는 안될 때가 있다

하면서 견디는 것

by 시언


저 형은 글 쓰는 게 일이야

내 얘기인가 싶어 고개를 들자 동아리방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내게 쏠렸다. 다들 웃고 떠드는 와중에 혼자 몇십 분째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후배들 눈에는 꽤 별스러워 보였던 모양이다. 분위기를 진지하게 하고 싶지 않아 변명 아닌 변명들을 나열했다. 아니 이게... 기사 마감이 내일이라... 오늘 유독 쓸 게 많네... 떠들어도 돼 얘들아... 등등


가까스로 마감에 맞춰 기사를 제출한 후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새벽 1. 쌀쌀해진 밤공기가 벌겋게 열이 오른 두 볼을 식혀 주었다. 과열된 머리 속에서는 기사에 포함되지 못한 단어들이 먼지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잠들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들어가는 길에 맥주 한 캔 사갈까 하다 이내 단념했다. 며칠 째 컴퓨터에 잠들어 있는 영화 비평 하나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늘이 두 쪽나도 오늘만은 브런치에 포스팅하리라 별렀던 글이었다. 머리가 좀 아프다는 것 말고는 하늘이 두 쪽난 것보다 큰 일은 아직 없었다.


"진짜 글 쓰는 게 일이네"

피식,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글 쓰는 게 즐겁던 때가 있었다. 소설가가 되겠다는 열정이 온몸의 관절 마디마다 들어차 있던 시절. 플롯이니 퇴고니 따위의 개념도 모른 채 경쾌하게 자판을 두드리던 그때의 기억에는 언제나 콧노래 흥얼거리는 소리가 따라다닌다. 결과물은 삼류 판타지 소설 한 두 편에 불과했지만 그때의 나는 분명,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한 아이였다.


반면 지금의 나는 글쓰기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내가 글을 쓰는 과정은 고통 쪽에 더 가깝다. 텅 빈 모니터 위에서 나를 재촉하듯 깜빡이는 커서를 보고 있으면 가슴 한쪽이 답답해진다. 적확한 단어를 찾지 못해 몇 번이고 타이핑했다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이따위 어휘력으로 소설가를 꿈꿨다니'라며 피식거린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쓴다. 기사, 영화 비평, 문학 비평, 에세이... 쓸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닥치는 대로 쓴다. 그렇게 매일 쓰다 보니 내 글들이 카카오 채널에 올라가기도 하고, 이번 글 잘 읽었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는 지인들도 늘어났다. 지인들 중 작가를 지망하는 몇몇은 자신이 쓴 문학 작품을 평해 달라는, 감당할 수 없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쏟아지는 칭찬 속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글쓰기를 어떻게 지금껏 지속할 수 있었을까.


'하면서 견디는 것, 그게 좋은 거다'

- 작가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열정은 중요하다. 연애, 글쓰기, 공부, 운동... 누군가가 전에 해본 적 없는 일을 시작할 때, 열정은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다. 생소함에서 오는 버벅거림의 순간들을 사람들은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돌파해 낸다. 길의 시작점에 놓인 바위를 뚫는 힘. 나는 그것이 열정의 정의라고 생각한다. 첫사랑, 첫 아르바이트, 첫 봉사활동... 사실상 거의 모든 경험이 첫 경험인 청춘들에게 열정이란 단어가 빠짐없이 따라붙는 이유는 그래서다.


"그러나 열정만으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내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열정만으로 유의미한 성장을 이룬 적은 거의 없었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의 대부분은 열정만으론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나는 글쓰기를 통해 배웠다.


세상을 놀라게 할만한 글을 써 보이겠다며 낮과 밤을 하얗게 불태웠지만, 내 작문 실력은 '대학생 치고 깔끔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우울증은 기다림을 망각한 병이라고 했던가. 내 안에서 들끓던 열정은 금세 조급증으로 변했다. 1시간쯤 텅 빈 모니터를 노려보다가 포기하는 날이 많아졌다. 이 정도 열의도 없어서야 어떻게 기자로 밥벌이를 하겠다는 건가 하는 자책들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그때의 내가 갖지 못한 건 열정이 아니었다는 걸.



처음의 열정은 금세 식기 마련이다. 다가오는 지하철 막차 시간이 야속해 발을 동동 구르던 연인 간의 정열도, 한 달안에 5kg을 빼리라 불태웠던 다이어트 의지도 길어야 몇 개월, 짧으면 며칠 만에 언제 그랬냐는 듯 증발해 버린다. 열정이 사라진 도전은 더 이상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뭔가가 아니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새로웠던 날들은 점차 희미해져 간다.


지금의 내가 추구하는 글쓰기는 ''로서의 글쓰기다. 일이란 무엇인가 즐겁지 않아도 매일 꾸준히 해야 하는 무언가. 일취월장은커녕 지난달보다 나아졌는지조차 불분명하지만, 그럼에도 해야 하는 무언가가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게 글쓰기란 그런 것이다. 글쓰기를 말할 때 내가 '꾸역꾸역'이란 표현을 즐겨 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나름의 작문 원칙을 정했다고 해서 글을 쓰는 게 편안해 지거나 한 건 아니다. 여전히 글쓰기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저 나는 쓰는 것이 쓰지 않는 것보다는 배우는 점이 많을 거라고 애써 믿는 사람일 뿐이다.


결국 지난날의 내게 부족했던 건 열정이 아닌 '근성'이었다. 열정이 시작할 수 있게 하는 힘이라면, 근성은 과정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쉽게 절망하지 않고, 과정을 꿋꿋이 견딜 것. 그런 날들이 크레페 케이크처럼 쌓이고 쌓이면 글쓰기도, 어쩌면 인생까지도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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