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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Jan 03. 2017

영화 <라라랜드>; 그랬다면 어땠을까

좌절당한 꿈들을 위하여

# 이 글은 브런치팀으로부터 사전 시사회에 초청받은 후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문구를 기억한다. 2002, 사상 최초로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룬 대한민국 축구팀을 필두로 대한민국의 온 국토는 붉게 물들었다. 국민들은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몰려나와 '~한민국!'을 목 놓아 외쳤다. 비단 월드컵 때문만이 아니었다. 세계 무대에선 언제나 변두리 취급을 받던 대한민국 축구팀의 연승은 국민들로 하여금 저마다 가슴속에 품고있던 꿈들을 상기시켰다. 월드컵 우승, 세계강국 대한민국, 경제대국... 어떤 꿈이든 이뤄질것만 같던 이상한 정열이 들끓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날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간의 꿈은 언제나 인간을 배신한다. 꿈꿔온 그대로를 현실에서 이루며 사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업적으로는 성공했으나 일에만 골몰한 나머지 가족을 잃은 기업인, 배우의 꿈을 접고 엄마로서의 삶을 시작해야 했던 주부까지. 꿈이란 마치 깐깐한 전당포 주인과도 같아서,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요구하는 법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쓴다던 시인의 회한이 그토록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저미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먼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 지으며 말하겠지, 언젠가 숲에서 두 갈래 길을 만났을때,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갔었노라고, 그래서 모든게 달라졌다고'

                                                                                   - 로버스 프로스트, 걸어보지 못한 길



 <라라랜드>의 주인공 미아는 카페 종업원이다. 유명 여배우의 단골인 화려한 카페와 인생의 가장 초라한 시기를 통과하는 중인 미아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미아는 생계를 위해 카페에서 커피를 서빙하면서도 배우라는 자신의 꿈을 잊지 않는다. 주인공의 전화를 받는 등의 단역 이라도 따내기 위해 온갖 오디션을 쫓아다니는 미아의 눈빛은 꿈이라는 별을 향해 질주하는 청춘의 그것이다. 이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청춘의 집중된 각오가 그녀를 견디게 하는 힘이다.


 또 다른 주인공 세바스찬은 재즈를 신봉하는 고독한 피아니스트다. 요새 누가 재즈를 찾느냐는 조소섞인 시선을 감당하는 것이 그의 일과다. 그는 생계를 위해  레스토랑에서 징글벨을 연주해야 한다. 카페와 레스토랑. 자신의 꿈이 조롱당하는 공간에서 두 주인공은 초라한 현실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서로의 공허한 가슴이 공명했던 걸까. 미아와 세바스찬은 운명적인 이끌림에 몸을 맡기며 연인이 된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서 감독은 '5년 후'라는 문구로 영화의 시간대를 도약시킨다. 5년 후 미아는 세계적인 여배우가 되었다. 영화는 매너있고 자상한 그녀의 남편과 아이, 그리고 풍족한 생활을 차례로 보여준다. 감독은 미아가 카페 종업원 시절의 꿈을 이뤘다는 것을 상기시키려 애쓴다. 그러나 꿈을 이룬 그녀의 생활에 세바스찬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편과 우연히 들른 재즈바에서 미아는 번듯한 재즈바의 사장이 된 세바스찬과 마주친다. 재즈바의 이름은 '셉스'. 두 사람이 연인이던 시절,  함께 지은 재즈바의 이름이다.

 표면적으로 <라라랜드>는 구태의연한 사랑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꿈 많은 두 청춘남녀가 사랑에 빠졌다가 이별한다는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뮤지컬 형식을 차용했다는 차별성은 어디까지나 형식에서의 차별성일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관객들이 영화에서 보고 싶어하는 것은 참신한 서사, 내러티브. 흔해 빠진 서사 구조와 신나는 노래, 멋들어진 영상미만으로는 '그 영화 나쁘지 않더라' 정도의 평을 피하기 힘들다.


 그러나 감독은 영화 종반부의 단 몇 분을 통해 기존의 청춘멜로 영화와의 차별화를 시도한다. 관객석에 앉은 미아를 발견한 후 세바스찬의 뇌리에 스치는 공상이 바로 그것이다. 상상속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은 애틋했던 그때의 사랑을 이룬 모습이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짓는 두 사람의 표정은 묘하게도 '직업으로서의 꿈'을 이룬 현실의 표정과 닮아있다. 그렇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꿈은 두 가지였음을 감독은 은연중에 내비친다. 배우와 재즈 아티스트가 되겠다는 업으로서의 꿈과, 언제까지나 함께하고 싶다는 사랑의 꿈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하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 다른 하나의 꿈을 버리라고 종용한다. 기회비용으로 지불해버린 꿈을 만날 수 있는 건 세바스찬이 그러했듯 찰나의 공상에서 뿐이다. 두 사람에게 사랑은 더 이상 꿈이 될 수 없다. 미아와 세바스찬그걸 안다. 역사에서 가정법은 통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서로를 바라보는 옛 연인의 시선은 건조하고 쓸쓸하다.


 결국 <라라랜드>는 기회비용으로 지불해온, 좌절꿈들을 위한 영화다. 누군가에게는 음악가의 꿈이 될수도 있고,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그렸던 장밋빛 미래일수도 있다.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한 지불해 온 꿈들, '그랬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법을 통해서만 간신히 재회할 수 있는 옛 꿈들을 향해 영화 <라라랜드>는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그때의 내게, 그런 꿈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냐고 영화 <라라랜드>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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