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져나온 국민들의 분노
'데모라는것은 '보여준다' '과시한다'를 뜻하는 영어 '데몬스트레이션(demonstration)'의 준말이다 ..(중략)... 즉, 위세, 위력을 보여줌으로써 겁을 준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떨게 한다. 그러함으로 이쪽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도록 강박한다는 것이 데모의 본질이다'
- 조영래 변호사, 『전태일 평전』 중
2040년, 언론과 경찰, 군대를 장악한 영국 정부는 감시와 처벌을 통해 국민들을 통제한다. 반정부주의자, 무신론자, 동성애자 등 이른바 불온 세력들은 정부의 적으로 간주돼 소리없이 체포되거나 처형된다. 통행금지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면 그 누구도 거리로 나와선 안되며 이를 어길시 비밀경찰에 의해 즉결처분 당한다. 이 모든 것은 ‘국민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뭔가 잘못돼가고 있음을 모두가 알지만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포와 불신. 비밀경찰에게 끌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와 나의 외침에 다른 이들이 연대해주지 않으리라는 불신은 국민들의 입에 자물쇠를 채운다. 이때 홀연히 나타나 방송국을 점거하고 브라운관에 나타난 'V'의 고발은 시청자들을 뒤흔든다.
'어쩌다 이렇게 됐죠? 누구의 잘못입니까? 물론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경이 되도록 방관한 건 바로 여러분입니다'
-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중
어떤 정치인이든 부패와 무능함으로 국민들을 우롱했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비판과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이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그 정치인에게 공권력을 위임한 것은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이 변할 수 없는 사실이 부끄러운 나머지 우리는 너무 쉽게 잊거나, 잊으려 애쓴다.
뒤이어 V는 정확히 1년 후인 11월5일, 의회 의사당 앞에서 함께 모여 대대적인 집회를 열 것을 제안한다. 11월5일은 1605년 11월 5일, 영국인 가이 포크스가 의회 의사당을 폭파시키려다 실패로 돌아간 이른바 '화약 음모 사건'이 있던 날이다. 영국 의회는 이 같은 사건이 다신 일어나질 않길 바라는 의도에서 11월 5일을 감사절로 지정했다. 그러나 많은 영국인들은 가이 포크스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기리기 위해 함께 모여 불꽃을 쏘았다. 가이 포크스의 이름인 가이(Guy)는 당시에는 '기이한 행색의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통용됐으나 오늘날에는 '사람들'이나 '당신들'의 의미로 더 널리 쓰이고 있다. 당신과 나, 그 누구라도 Guy, 즉 저항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V의 선언 후 의회의장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더욱 강도 높은 공포 정치를 시행한다. 정부는 경찰력을 총동원해 V와 불온분자를 색출하는 한편 미디어를 통해 국가 안보를 들먹이며 국민들이 한 마음으로 단합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한 작가의 정의대로, 진실이란 알고 난 후에는 행동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인걸까. 한번 눈 뜬 국민들의 정의감은 정부의 폭정을 묵묵히 인내하며 약속의 그날을 기다린다.
마침내 1년 후 11월5일 자정, 셀 수 없이 많은 국민들이 V에 의해 배달된 가이 포크스 마스크를 쓴 채 의사당 앞으로 집결한다. 군인들의 총과 대포가 시위대를 겨누고 있지만 시위대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기가 질린 군인들이 총부리를 내림과 동시에 폭압의 상징이던 의회 의사당은 폭발과 함께 공중으로 산산이 분해된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시민 혁명은 스크린에서만 상상할 수 있는 예술적 서사가 아니다. 10월29일, 시민들이 든 촛불이 광화문 광장을 밝혔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청와대를 향한 분노를 토해냈다. 전국 대학의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고 교복 차림의 학생들은 "훗날 내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왔다"며 자유발언대에 올랐다.
대통령은 3차례에 따른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고, 여당 지도부 역시 총사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연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집요했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매주 주말마다 전국 집회거점에 모여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비주류 여당 의원들과 야당 의원들은 탄핵안 발의에 찬성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18원의 정치후원금 포화를 맞기도 했다. 결국 지난 19일, 국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됐다.
<브이 포 벤데타>의 V가 가면을 고집하는 건 영웅적 은밀함을 부각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영웅의 가면은 영웅 혼자만의 전유물일 때 영웅적 상징성을 더해가기 때문이다.V의 가면이 배트맨의 그것처럼 영웅적인 행위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위해서였다면 시위대 전체가 V의 가면을 쓰는 마지막 장면은 오류다.
감독이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V의 가면을 벗기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V는 슈퍼 히어로라기보단 시민들의 정의감이 만들어낸 하나의 '사건'에 가깝기 때문이다. "내 가면안에 있는 건 단지 하나의 인간이 아니다"라는 V의 대사는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필요는 발견의 어머니다. 행동하고자 했던 시민들의 마음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V의 방송국 점거는 웬 반동분자가 일으킨 해프닝에 불과했을 것이다. 행동의 도화선을 필요로 했던 시민들의 정의감은 가이 포크스의 마스크와 광화문의 촛불을 계기로 격렬하게 타올랐다.
학교의 징계조치를 무릅쓰고 자유발언대에 오른 고등학생, 직접 산 쓰레기봉투에 집회장의 쓰레기를 주워담은 대학생...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V가 될 수 있다. 그 자명한 사실을 우리는 <브이 포 벤데타>에서 한번, 그리고 매 주말마다 광화문을 밝히는 시민들의 촛불행렬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 이 글은 기자단 활동(CUN) 중 작성한 제 기사에 조금의 수정을 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