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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Feb 04. 2017

영화<단지 세상의 끝>; 모든 자식된 자의 숙명, 가족

화목한 가정이라는 신화


 설 연휴가 끝났다. 올해도 수십만의 인파가 고속도로에 몰렸고, 주요 도시의 터미널은 선물 꾸러미를 든 귀성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방송국 기자들은 고속도로  톨게이트와 터미널 플랫폼에서 "명절 상봉을 앞둔 시민들의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같은 단골 멘트들을 쏟아냈다. 브라운관 속 설 풍경은, 쑤셔대는 삭신마저도 정겨운 가족 상봉 그 자체다.


 지난달인 131, 청주 흥덕경찰서는 남편에게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힌 가정주부 A(39,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남편이 설 연휴인데도 술을 마시고 들어와 다퉜다"라고 진술했다. 그보다 나흘 전인 27일에는 아버지(47)와 몸싸움하다 머리를 벽에 부딪치게 한 아들 B(22)씨가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들 말고도, '명절 상봉'이란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행태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옆집 김씨네 자식들이 유산을 두고 싸우다 차례상을 엎었다더라, 아랫집 이씨네 집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머리채를 잡았다더라 하는 식의 소문들. 간만에 모인 가족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비난하고 증오하기도 한다.


이미지 출처=네이버 영화

"누가 뭐래도 뒤도 안 돌아보고 가족을 떠날 때가 있듯이, 아무 이유 없이 가족에게 돌아오게 되기도 한다"

                                                                                                       - 영화 <단지 세상의 끝 >


 유명 극작가인 루이(가스파르 울리엘 분)는 새벽 택시 안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는 그 소식을 가족에게 전하기 위해 귀향길에 올랐다. 22살에 집을 나온 후 장장 12년 동안 만나지 않은 가족들을 마주하는 것이 그는 두렵다. "어쩌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지도 몰라"라고 중얼거리면서 루이는 별빛 하나 없는 새벽하늘을  응시한다.


 12년 만에 마주한 가족들은 생경하다. 어울리지도 않는 색조 화장을 덕지덕지 바른 엄마와 너무 어릴 때 헤어져 남보다도 서먹한 여동생, 뭐가 불만인지 늘 짝다리를 짚고 선 큰 형, 난생처음 보는 형수까지. 12년 만에 한 자리에 모인 다섯 가족은 강박적으로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연출한다. 얼굴도 모르는 큰 형네 아이들이 얼마나 잘 크는지, 여동생이 어쩌다 자신의 차를 갖게 됐는지 등등. 평범한 가정에서 오갈법한 이야기들을, 그들은 더듬더듬 주워섬긴다. 자그마치 12년간의 공백. 자신들의 가족이 화목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그들은 애써 무시하는 듯 보인다.


'어쩌면... 가족이 가장 모른다'

                                                                                                    -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자비에 돌란 감독은 "루이 넌 내가 가장 잘 알아", "넌 늘 그랬어" 따위의 말을 지껄이는 가족들의 얼굴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한다. 맘 놓고 한숨조차 쉬기 어려울 만큼 가까이 밀착해 있는 가족들의 얼굴은 왠지 답답하고 숨 막힌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함에도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함부로 속단하는 가족들. 너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확신하는 가족 앞에서 루이는 끝내 솔직해질 수 없다. 루이의 지인들은 전부 아는 시한부라는 커다란 진실을 가족만은 끝내 알지 못하는 아이러니.


 가까스로 이어지던 다섯 가족의 불협화음은 결국 12년간 농축된 감정의 폭발로 이어진다. 각자의 사연들을 토대로 가족들은 서로에 대한 서러움과 분노, 증오를 쏟아내고 루이는 결국 자신의 시한부를 고백하지 못한 채 집을 떠난다.


 다시 한번 집을 떠나온 루이는 이제는 가족에 대한 미련을 끊어냈을까. 감독은 그에 대한 대답을 우연히 집에 들어온 참새 한 마리로 대체한다. 참새는 집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날지만 언제나 집의 단단한 벽에 가로막힌다. 기진한 채 바닥에 누워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참새는 집을 벗어날 수 없다. 탄생과 동시에 시작되는 혈연이란 질긴 인연을, 자비에 돌란은 죽을 때까지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참새로 은유하고 있다. 좋든 싫든, 인간은 평생 동안 누군가의 가족으로 살아야 한다.


 브라운관 속 설 풍경의 단란한 모습만이 가족의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아니, 잊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격려한다는 믿음을 유지해야만 가족은 유지될 테니까. 너무 가까이 있기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자각하고, 분노와 미움 같은 가족 간의 부정적인 감정들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만이 나의 숙명이자 콤플렉스인 가족들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단지 세상의 끝>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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