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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Jun 24. 2017

<대립군>이 망한 이유

이래도 안 울어? 이래도?

출처=영화 <대립군> 스틸컷


"시는 메타포다"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1971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시를 '메타포(metaphor)'라고 정의했다. 메타포란 '숨겨서 비유한다'는 뜻이다. 모든 예술가들에게 비유는 권리이자 의무다. 우리가 연애시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 시가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표현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쓰지 않으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의 다양한 층위를 정확히 포착해 낼 때, 작품은 좋은 예술이 된다.

 

 반대로 창작자가 메타포에 대한 고민을 소홀히 할 때, 작품은 뻔해진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그냥 말해 버리는 것이다. 창작자는 아마 직관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이라고 변론하겠지만, 실은 그냥 게으른 경우가 많다. 로맨틱 코미디, 호러, 스릴러... 영화의 카테고리만 봐도 관객들은 이미 영화의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관객이 바라는 건 언제나 참신한 메타포다. 비평가들이 할 수 있는 혹평에 '클리셰적이다'는 표현이 포함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영화 <대립군>의 배경은 임진왜란이다. 조총을 앞세운 왜군 앞에서 조선군은 태풍 앞의 짚단 더미처럼 무너졌다. 선조는 명나라로 도주하기 전 반쪽짜리 조정을 세자 광해군(여진구 분)에게 맡긴다. 광해군에게 내려진 어명은 전략 요충지인 강계에서 의병을 규합해 적과 싸우라는 것이다. 대립군(代立軍), 남의 군역을 대신 살고 있는 최하층 백성 몇몇만이 강계로 향하는 광해군의 옆을 지킨다.


 <대립군>의 주된 서사는 성장이다. 어린 세자의 몸으로 팔자에도 없던 국운을 짊어진 광해군. 그리고 개인의 삶과 희생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대립군 토우(이정재 분)의 성장기다. 보다 감동적인 성장을 위해서 감독은 왕족인 광해군과 천민인 대립군들간의 동일시를 끼워 넣었다. 뻔하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봐줄 만하다. 문제는 영화가 이들의 성장기를 담아내는 '형식'이다.

출처=영화 <대립군> 스틸컷

"백성들의 밥을 얻어먹었으니 춤으로라도 답례해야 하지 않겠나"
"임금이 나라꼴을 이리 만들었으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닌가!"


며칠째 왜군의 위협에 시달리며 산길을 헤매던 세자가 밥값을 하겠다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토우는 살기 위해 도망치려는 동료들을 잡으며 거창한 책임 의식을 말한다. 노골적이고 설익은 대사들은 등장인물의 말이라기 보단 감독의 창작 의도 중 한 줄로 들린다. 감독이 자신의 메시지를 영화 서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욱여넣을 때 흔히 발생하는 오류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서로에게 공명하며 성장하는 식의 서사는 이미 숱한 예술 분야에서 차용되어 온 바 있다. 서사의 기본 구조가 참신하지 않을 때, 정윤철 감독은 서사의 표현방식을 고민했어야 했다. 감동적인 국악 BGM만 삽입한다고 감동스러운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관객들의 미적 수준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노골적인 주제 표출은 되려 보는 이의 반감을 사기 쉽다. 메타포가 빠진 예술은 공허하기 때문이다.


 모 야당 국회의원 한 명이 <대립군> 시사회에서 영화에 대한 평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대립군>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라고 감상을 남겼다. 추측컨대 <대립군> 제작진이 노린 지점도 이 부분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대통령은 우스꽝스러운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고, 분노한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대통령을 갈아치웠다. 시국이 하 수상하니, '높은 인간들부터 정신 차려라'는 메시지만 던져도 충분히 먹힐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나라도 그리 믿었을 게다.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 사람은 쉽게 휩쓸리니까.


그러나 영화가 값싼 취미가 아니라는 점을 <대립군>은 기억했어야 했다. 관객들은 '정치인이 잘해야 나라가 산다' 같은 도덕 교과서의 명제를 듣기 위해 최저 시급보다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게 아니다. 담고 있는 메시지의 도덕성이나 고결성은 작품의 작품성과 비례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 이야기를 담아낼  작품을 어떻게 만들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대립군>의 흥행 참패가 감독에게 값비싼 교훈으로 남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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