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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Jun 26. 2017

영화<허트로커>: 다시 한번, 개와 늑대의 시간

 

인류 철학사에서 선과 악의 문제만큼 길고 첨예했던 논쟁은 내가 알기론 아직 없었다. 학자들은 히틀러와 마더 테레사가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출처 = 토마스 홉스 네이버 이미지 검색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통념을 거부했다. 홉스에 따르면 인간의 유일한 천성은 자기보존 욕구뿐이다. ‘한정된 자원’과 ‘자기보존’이라는 삶의 두 조건은 만인을 투쟁 상태로 내몬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하고, 공권력과 법률이 사라진 자리에서 인간은 기꺼이 다른 인간을 헤칠 것이다. 홉스에게 인간은 고깃덩이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늑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문제는 인간이 홉스의 말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우리는 초면의 취객을 구하기 위해 지하철 선로로 뛰어든 청년과 불난 건물에 마지막까지 남아 다른 사람을 대피시키다가 죽은 취업 준비생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가만히만 있었다면, 함께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구경만 하고 있었다면, 그들은 살 수 있었다. 자기보존을 선택한 그들을 비난할 자격 따위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하철 선로로 뛰어내렸고, 깊은 잠에 빠진 옆방 사람의 방문을 두드렸다.     


프랑스인들은 주위가 어둑해지는 해질녘 때를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해를 역광으로 등지고 걸어오는 짐승이 내가 사랑하는 개인지, 나를 해치려는 늑대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인간은 개인가 늑대인가. 선과 악에 대한 학자들의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같이 선택해야만 한다.     



출처 = 영화 <허트로커> 공식 포스터

영화 <허트로커>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활동하는 미군 폭탄 제거반, 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팀의 귀국 전 38일을 담아낸 작품이다.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간단한 현장 정리는 로봇이 대체하게 되었지만 결국 폭탄의 뇌관을 꺼내 해체하는 작업은 사람의 몫이다. 정교한 사제폭탄의 사정거리 내에선 방호복도 별 의미가 없다. 폭발의 충격파가 방호복에 닿는 순간, 작업자의 신체가 안쪽부터 갈가리 찢겨 나가기 때문이다.  

    

총 3명으로 구성된 EOD팀의 작업 과정은 단순하다. 방호복을 입은 작업자가 폭탄을 해체하는 사이 나머지 두 명은 사방을 경계하며 작업자를 엄호한다. 민간인 사상도 감수하는 폭탄 테러의 특성상 사제폭탄은 도심지 한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원격 기폭장치를 가진 누군가가 군중 속에 섞여 있을 가능성 때문에 경계병들의 신경은 한껏 날카로워진다. 수십 명의 사람들 중 누가 늑대인가. 얼굴 없는 용의자를 겨누는 경계병들의 총구는 갈피를 잡지 못한다.    


출처 = 영화 <허트로커> 네이버 이미지 검색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폭탄 해체 장면마다 꼬박꼬박 이라크인 구경꾼들을 비춘다.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반복해 암시하는 것이다. 누구를 겨눠야 할까. 총구를 이리저리 돌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미군들을 바라보는 구경꾼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굳어있다. 누군가는 개일 것이고, 누군가는 기폭장치를 든 늑대일 것이다. 감수하고 죽일 것인가, 목숨 걸고 믿을 것인가. 결국 병사들은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뭘 쏘고 있는겁니까?”
“나도 몰라”


사막 한가운데에서 한담을 나누던 미군 병사*의 등에서 피가 터진다. 저격수다. 교전 수칙대로 사방으로 퍼져 몸을 숨긴 후 총소리가 난 지점을 살핀다. 불꽃처럼 일렁이는 아지랑이는 적의 식별을 어렵게 만든다. 한 사람이 보인다. 적일 수도, 그저 주변을 지나가던 염소지기일 수도 있다. 병사들이 고민하는 사이 또 한 동료가 총에 맞아 쓰러진다. 희미한 사람의 실루엣을 겨눈 상병이 팀장에게 사격 여부를 묻는다. 팀장은 “네 판단이야(That’s youe call)”이라고 답한다. 상병은 네댓 발을 사격한다. 실루엣이 축 늘어진다. 확인 결과 적이었다. 그러나 내일도 그는 늑대만을 골라 쏠 수 있을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다. EOD팀의 긴 하루가 저물어 간다.    


폭탄 해체를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무력으로 현장 주변을 통제하는 것이다. 사방에 경계병을 배치해 군중들을 몰아낸다. 경계병들이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에게 사격을 가하는 사이 작업자는 사제 폭탄을 해체한다. EOD팀을 제외하고 현장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명령에 불복종한 이라크인 시체들 뿐일 테니 원격 폭파의 위험도 없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EOD팀원들이 굳이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뭘까. 그들은 개를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열 명의 늑대에게 노출될지언정 죄 없는 한 명의 개를 죽여선 안 된다고 애써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일부 극단주의 이슬람 교인에 의한 테러가 전 세계로 향하는 지금, EOD 대원들이 맞닥뜨린 딜레마는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모든 이슬람 교인이 테러리스트는 아니다. 우리도 그걸 안다. 또한 이슬람은 폭력적인 교리를 지닌 사이비라며 이슬람 전체를 용의자 취급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 역시 우리는 알고 있다. 속 편한 사고방식이다. 선한 개들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정말 그렇게 믿어 버려도 되는 걸까.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이라크 등 이른바 ‘무슬림 7개국’ 출신들의 입국을 거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관련국에서 온 수백 명의 입국 희망자들이 공항에 억류되거나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슬람에는 늑대뿐이라고 선포한 셈이다. 미국 지성인들을 포함한 수천 명의 시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트럼프의 행보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몇 마리 늑대 때문에 개들을 도살해선 안 된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총구를 돌리며 갈팡질팡하는 <허트로커> 속 EOD 팀원들과 같은 편에 선 셈이다. 어느 쪽이 맞든, 인류는 다시 한번 개와 늑대의 시간에 접어들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9년 전 개봉한 영화가 묻는다.    


“당신은 개를 믿을 것인가, 늑대를 죽일 것인가”       



*영화에서 이라크 저격수에게 죽은 인물은 정확히는 미군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미군의 복식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과, 도주하는 포로를 보며 “50만 달러(이라크인 포로)가 달아나잖아”라는 대사로 보아 그들은 美 정부와 계약하에 이라크에서 활동했다고 알려진 사설 용병 기업의 일원으로 추정된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EOD팀과 그들이 “같은 팀”이라고 상정하고 있으므로 편의상 미군이라고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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