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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Jul 12. 2017

영화 <더 헌트>: 상식이라는 오만

무심코 때려죽인 개구리




공동체에는 늘 소문이 떠돈다. 개중에는 좋은 것도 있지만 안 좋은 이 더 많기 마련이다. 학생회장이 신입 여학생에게 차였다는 것부터 인사과 박 과장이 법인카드로 소파를 장만했다는 소문까지 다양하다. 이때 흥미로운 점은 소문을 접한 사람들 대부분이 사실 확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일 붙어 다니던 학생회장과 신입생이 따로 다니기 시작했다는 목격담 정도면 소문의 증거로는 충분하다. 따로 밥을 먹는 두 사람을 봤다는 목격자들이 하나 둘 나타나며 소문은 기정사실화 된다.


소문의 삼단 논법은 ‘상식’이라는 전제에 기초해 있다. ‘캠퍼스 커플은 밥을 같이 먹는다’라는 상식적 전제와 ‘두 사람은 따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더하면 ‘두 사람은 더 이상 사귀지 않는다’라는 결과값이 도출된다. 99% 확률로 두 사람은 헤어진 게 분명하고, 설령 아니라고 해도 크게 다치는 사람은 없으니 상관없다. 그러나 상식에 대한 공동체의 맹신은 종종 개인에게 잔인한 폭력으로 작용한다.


△ 좌 :클라라, 우 : 루카스/ 사진 출처 = 영화 <더 헌트>스틸컷
“루카스 선생님의 고추는 앞으로 뻗어 있어요. 막대기처럼요”
“...그..그게 무슨 말이니?”


덴마크 한 시골마을, 유치원생 클라라는 원장 선생님의 당혹스러운 얼굴이 보기 좋았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최고 인기스타인 루카스(매즈 미켈슨 분) 선생님은 클라라의 마음이 담긴 하트 모양 장난감과 키스를 거절했었다. 부적절하다는 둥 이해할 수 없는 말이나 둘러대면서 말이다. 고추가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거짓말을 멈추고 싶지는 않다. 루카스 선생님이 얄밉기 때문이다.


클라라의 발언으로 조용하던 시골마을은 발칵 뒤집어진다. 원장은 경찰을 부르기 전 학부모 모임을 열어 루카스의 혐의를 실명과 함께 거론했고, 학부모들은 치를 떨었다.원장은 악몽이나 야뇨증, 두통 같은 증상은 성적 학대의 증상일 수 있다고 고지하며 모임을 끝낸다. 얼마 후 많은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도 성적 학대 경험을 실토했다며 알려온다. 긴 추궁 끝에 아이들은 추행 장소인 루카스의 집 지하실의 크기와 냄새 따위의 것들을 기억해 냈다. 루카스의 유죄를 입증하는 완벽한 증언이다. 딱 한 가지 허점이 있다면, 루카스의 집에 지하실 따위는 없다는 사실뿐이다.

“클라라, 너는 당시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너의 무의식이 그때의 기억을 지운 것뿐이란다”

뒤늦게 클라라는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 시인하지만 클라라의 부모는 그 증언을 믿을 생각이 없다. 그들은 정신적 충격이 기억상실을 야기할 수 있다는 심리학 지식까지 들먹여가며 루카스의 유죄를 주장하고 마을 전체도 이에 동의한다. 온 마을 어른들의 설득에 아이들은 정말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믿어 버린다. 어떻게 성인 수십 명의 생각이 한 마음처럼 같을 수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아이들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상식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영화 <더 헌트> 스틸컷


경찰에게 무혐의 처분을 받은 루카스지만 그에게 돌아갈 고향은 없다. 주민 전체가 같은 성당에 다니는 작은 마을 안에서 루카스는 영리하게 법망을 빠져나간 성범죄자다. 부엌 창문으로 주먹만 한 돌이 날아들고, 집 앞마당에는 그의 반려견 패니가 목이 졸린 채 숨져있다. 식료품을 사러 마트에 가면 욕설과 함께 점원들에게 구타당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심리학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루카스를 대하는 태도를 두고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그 밖의 정보는 무시하는 심리적 경향성을 말한다. 이것은 말 그대로 심리적 경향성이므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현상이다. 자각을 통해 생각을 고쳐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신념’이 ‘우리의 상식’으로 치환되는 순간, 확증편향은 정당화된 폭력으로 탈바꿈한다. 상식과 어긋난 ‘너’의 잘못이라는 뒤틀린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성추행을 고백한 아이들 중 대다수의 증언은 앞뒤 논리 구조가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루카스는 파렴치한 아동 성추행범이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 1년 후, 마을을 떠났던 루카스가 되돌아온다. 마을 사람들과의 오해는 풀린 듯 보인다. 돌아온 루카스와 그를 대하는 주민들의 표정은 평온하다. 마을 전통대로 루카스와 마을 남자들은 소총을 든 채 사슴 사냥을 나간다.


                                          사진 출처 = 영화 <더 헌트> 직접 캡처


각자 흩어져 발소리를 죽이고 사슴을 쫓던 도중, 탕하는 소리와 함께 루카스의 얼굴 옆 나무둥치에 총알이 박힌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루카스는 급히 일어나 발포자를 찾지만 그는 이미 이곳에 없다.


오발탄으로 비유된 집단의 상식은 루카스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다. 그러나 다음 희생자도 루카스처럼 운이 좋을 수 있을까? 실체 없는 발포자를 찾는 루카스의 공허한 눈빛을 통해 <더 헌트>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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