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왓 위민 원트> : 쉽지 않죠? 여자로 산다는거

by 시언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와 그에 대비되는 넓은 골반. 만화에나 나올 법한 몸매의 모델이 비키니를 입은 채 남태평양의 해변가를 걷고 있다. 그녀 곁을 지나가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잘 빠진 허리 라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카메라의 앵글은 광고의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모델의 전신을 훑어 내린다. 광고는 "보여주세요. 당신의 매력을"이라는 문구와 함께 끝난다. 이 광고는 여성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인 광고일까.


답은 '글쎄'다. 광고의 시각 자체가 남성적이기 때문이다. 전문 모델들조차 이틀은 굶어야만 입을 수 있는 수영복을 사기 위해 거금을 들일 여성이 얼마나 될까. 여성들이 남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비키니를 입는다는 설정도 여성에 대한 착각 중 하나다. '잘빠진' 여자가 '꼬리를 치듯' 과감한 수영복을 입고 해변을 걷는 이미지를 상상하는 건 여자가 아닌 남자들이다.


1990년대 초반, 여성의 경제력이 상승하면서 미국 내 기업의 마케팅 부서에는 비상이 걸렸다. 특히 가장 당황한 건 광고 회사였다. 담배, 면도기, 명품 넥타이.. 남성 위주의 광고를 만들어 온 그들에게 여성 소비자는 블루 오션임과 동시에 자칫하면 죽을지도 모를 급류였다. 그들은 여성들도 소비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고, 그들을 매료시킬 광고를 만들 능력 또한 없었다.


사진 출처 = 영화 <왓 위민 원트> 캡처


잘 나가던 광고 기획자, 닉 마샬(멜 깁슨 분) 역시 광고업계에 불어 닥친 여풍(女風)에 정신이 혼미하다. 매일 잠자리 상대를 바꿔 온 닉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자들의 마음'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친절한 매너와 위트, 깔끔한 작업 멘트 몇 마디면 그의 욕구를 채우는데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이렇겠지'라는 마초적 시각으로 구성된 그의 광고는 여성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한다. 수십명의 여성 마라토너들 사이에서 그가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는 장면은 '여권(女權) 신장'이라는 태풍이 마초 사회에 가한 충격을 잘 담아낸 비유다.


푸쉬업 브라와 팬티 스타킹을 들고 고뇌에 젖은 닉은 우연한 사고로 여자들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말년의 프로이트도 염원했다던 초능력을 토대로 들여다본 여성들의 마음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간단한 디저트를 먹으면서도 칼로리를 걱정하고 심지어 잠자리 중에도 파트너와의 교감을 고려한다. 여자는 남자의 훤칠한 외모와 밤기술만 찾을거라 믿었던 그는 조금씩 여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사진 출처 = <왓 위민 원트> 스틸컷


<왓 위민 원트>가 던지는 흥미로운 질문 중 하나는 '왜 하필 여자의 속마음인가?'이다. <왓 위민 원트> 속 여자들은 하나같이 말과 속이 다르다. 남자 등장인물들이 자신이 느끼는 바를 솔직히 말하는 것과는 대비된다. 매일같이 몸매 칭찬으로 성희롱 하는 직장 상사에게 애써 고맙다고 하고, 호감이 있던 남자와 키스를 하면서도 "나 너무 밝히는 것처럼 보이나"라고 고민한다. 이처럼 겉과 속이 다른 여자들에 대한 가장 흔한 해설은 '여자들은 복잡하니까'였다. 편리한 답변이다. 여자들은 원래 생각이 많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부계 사회에서 '조신함'은 여성의 인간됨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로 자리 잡았다.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편견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성폭행을 당했을 경우 피해 여성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논리로까지 발전했다. 조신해야 '정상'인 여자가 그렇지 않을 때는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거라고 넘겨짚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 EU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럽인들 중 4분의 1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에게도 성폭행의 일부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이 특별히 생각이 많거나 솔직하지 못한 게 아니다. 그들은 다만 솔직해져선 안 되는 사회에 살고 있을 뿐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닉은 여자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잃어 버린다. 이제 그는 다시 평범한 남자로서 속마음과는 다른 말을 하고있는 그녀들의 대해야 한다. 닉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남았다. "여자들은 원래 그래"라고 투덜거리는 보통의 남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뿌연 안개 속을 겉듯 더듬거리면서라도 여성들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오늘도 '하고 싶은 말' 대신 '해야할 말'을 찾기위해 번민하는 여자들에게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닉의 입의 빌어 말한다.


“여자로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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