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신은 뇌> : 달릴수록 강해진다

by 시언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행복해지고 싶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 같았지만, 나는 좋은 사람인 것 같지 않았다. 난생처음 등록한 헬스장 건물 앞에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양쪽 볼은 간밤의 숙취로 달아올랐고, 입에서는 역한 알콜 냄새가 진동했다. 불면증은 점점 심해졌고 마시는 술의 양도 늘어갔다. 건물 유리창 겉면에는 자고 일어난 머리 그대로 거리를 헤매는 한량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거리를 가득 채운 행인들이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한심하겠지. 내가 나를 봐도 이렇게 한심한데. 팔짱을 낀 연인들과 교복을 입은 중학생들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깔깔거리며 옆을 지나갔다. 한 때는 나도 저들처럼 소박한 일상에 울고 웃던 때가 있었는데.. 저들이 속한 세계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밀려왔다. 다 내 탓이지. 누굴 탓하겠어. 문득, 가수 권지용의 솔로곡 한 구절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틈만 나면 유리를 깨부수고 피가 난 손을 보며, "난 왜 이럴까. 왜..."'

- 권지용 솔로곡 <black> 중


깊이, 그리고 오랫동안 절망해 본 사람은 안다. 절망과 자기파괴에는 중독성이 있다는 걸. "내 탓이지 뭐"라는 말은 일종의 만능키다. '왜 내가 이 꼴이 되었을까'처럼 복잡한 질문에 언제나 꼭 들어맞는 만능키. "내 탓이지 뭐"라고 자답하는 순간 의문은 해결된다. 프로이트는 이와 같은 자기파괴적 충동 혹은 본능을 두고 '타나토스(Thanatos)'라고 불렀다. 가슴속 타나토스가 들끓을 때마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마치 심정지가 오기 직전의 환자처럼.


한국식 정신건강론에 익숙했던 나 역시 이 모든 게 내 정신의 나약함 때문이라고 믿었다. 긍정의 힘을 설파하는 자기계발서 저자들은 '마음먹기'의 중요성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했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바꿔 말하면 우울감이나 불안, 패배감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은 내 정신력이 약해 빠져서 그렇다는 뜻이 된다. 참 편리한 설명이었다.


마음을 잘 먹어보려 애도 많이 썼다. 마음을 안정시켜준다는 요가 자세부터 명상까지 안 해 본 게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은 최소한 시간에 따라 악화되지 않는 문제를 지닌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명제였다. 난관에 부딪히면 책을 뒤적이는 습관대로 도서관을 뒤지던 중 이 책을 만났다.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가 쓴 책이었다. 원제는 Spark your brain. '너의 뇌에 불꽃을 당겨라'였다.


"운동을 하면 상황을 스스로 지배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부적절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도 스트레스를 통제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인식하면 실제로 스트레스로부터 빠져나오는 역량이 길러진다."

-『운동화 신은 뇌』, 112p


매일 달렸다. 특별히 잘나거나 독해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어서였다. 평균 5분,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2분 30초가량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숨이 턱까지 찬다는 관용어의 참뜻을 러닝머신 위에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양쪽 허벅지는 불타올랐고, 종아리 근육은 과하게 조여진 기타 줄처럼 팽팽해졌다. 헉헉거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울음소리인 줄 알았다고 같은 헬스장에 다니던 친구가 일러주었다. 울음소리. 크게 틀린 표현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헬스장 다른 회원분들께 죄스러웠지만 별 수 없었다. 나는 절박했다.




달리기에 앞서 내가 정한 원칙은 두 가지뿐이었다. 최소 30분 동안 러닝머신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과 너무 힘들면 걷되 호흡이 안정되는 즉시 다시 달릴 것. 운동 경험이 전혀 없는 나에게 러닝머신에서의 30분은 영원과 동의어였다.


다치기도 많이 다쳤다. 준비 운동 없이 운동하다가 발목을 삐는 건 다반사였고, 다리가 풀려 무릎이 까진 적도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 약 3~4개월 동안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종아리 통증으로 걸을 때도 절룩거리는 날이 많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던데, 꼭 날 위해 만든 말인 것 같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려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면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간신히 보낸 하루들이 모여 2년이 되었다. 현재 내 사진 폴더에는 총 162장의 달리기 기록이 저장되어 있다. 달리기 시작한 지 수개월이 후부터 사진 촬영을 시작한 점과 휴대폰을 가져가지 않은 날 따위를 합지면 나는 수백 일 동안 수백 km를 달린 셈이다. 거칠어진 숨 때문에 하나같이 초점이 흐린 사진들이 모인 폴더 이름을 나는 '노력努力'이라고 지었다.


'"나는 세상에 해를 끼치는 사람이 아니야. 내게는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 내 삶도 고칠 수 없을 만큼 망가지지 않았어."

운동도 (뇌심부 자극 수술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발휘한다. 2003년 독일의 신경과학자들이 한 실험이 그것을 증명했다.'

-『운동화 신은 뇌』, 181p


종아리에 근육이 붙고 폐활량이 진전되면서 달리기는 점차 즐거워졌다. 멈추지 않고 30분을 내리 달릴 수 있게 됐다. 턱 끝에 매달린 땀방울을 훔치다 보면 20분이 훌쩍 지나갔다. 원래대로라면 남은 10분간 서서히 속도를 줄여 호흡을 골라야 하지만 자꾸 욕심이 생겼다. 결국 오늘도 12km/h까지 속도를 올려 어제의 기록에 도전한다. 엊그제 기록은 30분에 5.352km. 나는 같은 시간 동안 3.789km를 뛰던 2년 전의 나보다 1.6km를 더 견딜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나다. 2년 후의 나는 때때로 우울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인간이다. 내 가족과 몇몇 친구들은 미안하다는 말 좀 그만하라고 나를 다그친다. 넌 늘 좋은 사람이었으니, 먼저 사과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게 약이 될 말을 고민하는 사람을 곁에 둔 건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복이다. 이들의 격려와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좋은 사람인 걸까.


그러나 최소한 나는 좋은 사람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년간의 노력은 나 자신에게 이 사실을 설득하는 시간이었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을 믿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달릴수록 강해진다. 싸움은 현재 진행중이다.



재작년에 산 운동화 가죽이 늘어났는지 발이 헐겁다. 내일은 운동화 끈을 좀 더 꽉 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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