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언 Aug 01. 2017

영화 <청년 경찰>:청년이 묻다, 경찰이란 무엇입니까?


군 시절 때의 일이다훈련 준비 중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후임 중 한 명이 훈련 때 챙겨야 할 물품 하나를 누락한 정도의 문제로 기억한다지금껏 단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장비였으므로 나는 가벼운 경고와 함께 일을 덮었다이 일을 계기로 나는 간부에게 불려 가 문책을 당했다상관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책 사유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해당 장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간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있으나마나 한 장비를 챙기지 않았다는 보고를 누락한 것이 문책까지 당할 만큼 큰일이라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그만 가보라는 말과 함께 간부는 내게 말했다


“규정은 책임을 누가 지느냐 때문에 만들어 진거야. 니가 어떤 문제에 대해 보고를 하는 순간 책임은 상관한테 넘어가는 거고. 니가 다 책임질 거 아니면 보고 규정 똑바로 지켜”


옳은 말이었다규정을 지킨 자는 결과가 어떻든 무고하다규정을 따랐을 뿐이니까반면 규정을 어긴 자는 결과에 대한 무한 책임을 떠안게 된다설령 결과가 좋다고 해도 이번만은 그냥 넘어간다는 경고만 돌아올 뿐이다그 날부터 나는 책임질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만 결정하는 선임이 돼버렸다때로 규정은 외면과 묵인의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다. “규정대로 했을 뿐입니다” 한마디면 책임은 나를 피해갔다.




출처 = <청년경찰> 스틸컷

경찰대 입학식에 선 기준(박서준 분)과 희열(강하늘 분)은 어안이 벙벙하다경찰로서의 책임의무자의식 같은 단어가 귓가에서 겉돈다한 명은 학비를 낼 돈이 없어서다른 한 명은 과학고 동기들과는 차별화된 대학에 오려했을 뿐이다결기에 찬 동기들의 눈빛이 부담스럽다하지만 두 사람은 꾸역꾸역 고된 경찰대 생활에 적응해 간다달리 거창한 꿈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몇 년 후사랑의 단 꿈과 함께 나선 외박에서 두 사람은 인신매매 현장의 목격자가 된다범인들은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여자 행인을 뒤에서 가격한 후 승합차에 태워 사라졌다기준과 희열은 앞뒤 잴 것 없이 차를 따라 내달리지만 결국 범인을 놓치고 만다


출처 = <청년경찰> 스틸컷

일선 경찰서로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기준과 희열은 믿고 있다일선 형사들의 노하우에 자신들의 진술만 더해진다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그러나 넉넉잡아 3주는 기다려야 할 거라는 답신만 돌아온다대기업 회장 손자 실종사건에 전병력을 투입하라는 경찰 서장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성인 여성이 납치될 경우 72시간을 기점으로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지지 않냐는 기준과 희열의 반론에도 경찰들은 심드렁하다그들에게 강력 사건은 업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규정상 신고자의 신원 먼저 확인해야 됩니다”
“규정 같은 소리 하네. 씨발 뭐 경찰이 이래!!”


<청년경찰>은 납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청년의 이야기다피해자는 난자를 적출해 판매하는 납치 조직에게 끌려갔고조직의 고객은 유수의 대형 병원이다고도로 숙련된 조직이므로 극도로 위험할뿐더러 무엇보다두 사람은 아직 경찰도 아니다함부로 나섰다가는 퇴학은 물론 형사 처분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간신히 견뎌온 경찰대 단체생활을 떠올리며 두 사람은 생각에 잠긴다.


“야, 나 수사의 세 가지 원칙 쓰라는 문제에 뭐라고 썼는지 아냐?”
“뭐라고 썼는데?”
“열정, 집념, 진심”
“미친놈..”


위험에 빠진 시민이 있고 두 사람은 경찰-은 아니지만 경찰대 학생-이다경찰은 시민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응답하는 자다기준과 희열은 그리 배웠다규정이 먼저인가시민의 목숨이 먼저인가두 사람은 잠깐의 고민을 마친 후 조직의 심장부로 쳐들어간다이 지점에서 두 사람은 청년경찰로 거듭난다경찰이 시민 구하겠다는데 언제부터 이유와 절차가 필요해진 걸까경찰이 가져야 할 세 가지 원칙은 정말 열정과 집념그리고 진심일지도 모른다



출처 = <청년경찰> 스틸컷

<청년경찰>은 정교하게 짜인 영화는 아니다. 조직에 규정과 절차가 존재하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다. “그 여자만 피해자냐?! 그 사람만 구해??”라는 형사의 일갈에 침묵하는 기준과 희열의 모습은 어째서 청년경찰인지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우리는 의욕과잉의 수사관이 무고한 시민을 범인으로 둔갑시킨 사례를 여럿 알고 있다경찰의 권한 발동에 절차를 정해 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왜 물불 안 가리는 청년경찰이 요구되는지감독은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듯 보인다


그럼에도 <청년경찰>은 부조리를 보고도 관련 규정을 먼저 따지던 나의 병사 시절을 비췄다어느새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진 걸까. 교수님이고 군간부고 납득할 수 없으면 끝까지 싸우던 나는 정말 나였을까새삼스럽고 생소했다. “내가 겁낼까 봐 겁이나점점 희미해지는 초심이라던 가수 싸이의 가사가 스쳐 지나갔다. 


 청춘 영화를 보고 사설이 길어진다는 것 자체가 청년으로부터 멀리 걸어왔음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영원히 청년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지킬 것이 늘어난다면 전부 지켜내야 한다언제까지고 뒷일 따윈 제쳐놓는 청춘일 수는 없다책임지지 않는 자유는 방종이라 했다그러므로 책임질 것이 많아질 나의 마음에서 청춘의 자유가 설 자리는 좁아지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오래된 음각 글자처럼 희미해진 세 단어를 새삼스레 되뇌어 봐야 하리라내가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정집념진심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택시 운전사>: 우리가 5.18을 기억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