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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Aug 03. 2017

영화<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인생이라는 나비효과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 아마존의 정글에서 날개를 파닥거리는 나비는 몇 주일 또는 몇 달 후 미국 텍사스 주에 폭풍우를 일게 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즉, 작은 변화가 결과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출처 : 박문각, 시사상식사전    

출처 =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 

만삭인 딸의 시중을 들며 일상을 영위하던 토니 웹스터 앞으로 편지 한통이 발송된다. 발송지는 변호사 사무실, 옛 연인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라의 유언 집행 담당이다. 죽기 전 사라는 토니 앞으로 한 권의 노트를 남겼다고 한다. 40년전 한번 마주쳤던 사라는 왜 이름 모를 노트를 자신에게 남긴걸까. 토니는 아직 알지 못했다. 평온했던 그의 일상이, 성급히 찢은 편지 겉봉처럼 너덜너덜해 지고 있음을.

   

토니는 베로니카와 헤어진 후 친구 에이드리언에게 편지를 받았던 40년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몇 달의 고민 끝에 이 말을 전한다”로 시작하는 편지는 베로니카와 자신이 연인이 되었음을 밝히고 있었다. 토니는 괘념치 말라는 뜻의 카드를 보냈고, 얼마 후 에이드리언은 욕조에 누워 목숨을 끊었다. 똑똑한 녀석은 자살하는 것조차 평범하지 않다고 친구들은 수근 거렸다. 토니는 그의 자살이 “유모차를 끄는 삶이 끔찍”해서 였을 거라고 단언했다. 그렇게 4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토니는 많은 것을 잊었다. 자신이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답장이 저급하고 모멸적인 저주로 가득했다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나는 그 워블리 다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다리가 흔들리는 것도 좋았다. 우리가 딛고 있는 지반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가끔이나마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156P


나에겐 나쁜 버릇이 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몇 시간째 침대를 뒤척이고 있으면 문득 내가 상처를 준 – 혹은 줬을지도 모르는 – 이들의 얼굴이 유령선처럼 치고 나온다. 엊그제 일부터 길게는 십수년전까지 다양하다. 그 말과 행동이 상처가 됐으면 어쩌지? 오래된 고서처럼 바스락거리는 기억을 뒤져보지만 이미 글자는 희미하다. 갑자기 평온했던 일상이 아쉽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마치 그걸 잃은 사람처럼.     


보통은 본인 기준에서 모욕적이거나 상처가 됐던 타인의 말을 상기한다던데 나는 정반대다. 실제로 몇 사람에게는 먼저 사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기억조차 못하는 경우가 다였다. 누군가는 너무 착해서 그렇다고 했고, 누군가는 소심해서 그렇다고도 했다. 작년 이맘때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을 때 위 문장에 밑줄 친 것도 그래서였다. 내게 삶은 구름다리처럼 위태로운 무언가였다.  

   

출처 =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

토니의 기억은 틀렸다. 그는 입에 담기 힘든 저주의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고, 몇 달 후 친구는 욕조에서 손목을 그었다. 그 날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토니를 법정에 세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40년 동안 제멋대로 각색한 기억을 지니고 평온하게 살아왔지만, 그건 그의 아둔함일 뿐이다. 모든 진실을 알아차린 토니는 “나는 책임의 사슬을 보았다”고 하지만 이미 나비의 날개짓은 폭풍이 된 지 오래다. 치기어린 젊은이의 객기는 40년 후의 자신을 가장 친한 친구의 자살 원인 제공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걸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토니가 나비의 날개짓이든 폭풍이든 “감도 못잡는” 바보라면, 나는 나비의 날개짓을 찾아 폭풍을 막으려는 겁보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수많은 나비의 날개짓 사이를 걸으며 산다는 점이다. 나비 효과는 카오스(chaos) 이론을 근거로 한다. 어떤 나비가 폭풍이 될 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예측할 수 있다면 카오스가 아니다. 우리 인생도 그러하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한다. 기억과 삶 앞에서 겸손하라. 개인의 기억이 얼마나 주관적인지, 그것을 확신하거나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게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고발한다. 그러나 어떤 기억도 확신하지 않은 채 폭풍을 피하기만 급급하다면 인간은 생을 영위할 수 없다. 수억마리 나비 중 한 마리가 폭풍이 될거라고 맹신하는 이의 일생은 파멸을 향해 선 창구 대기줄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출처 =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틸컷


평범하고 선한 삶을 이어가되, 때때로 뒤돌아볼 것.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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