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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Aug 14. 2017

영화 <제로 다크 서티>: 정의가 괴물이 될 때



어릴 땐 세상이 참 명확했다. 세계는 선과 정의를 뼈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세계를 망치려는 악의 무리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믿었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자라면 응당 창궐한 악과 맞서 싸워야 했다. 저녁마다 뉴스를 보는 아버지 옆에 앉아 저건 형량이 너무 낮다느니 하는 감당할 수 없는 말들을 지껄였다. 


2001년 9월 11일을 기억한다. 당시 나는 '방앗간'이라고 불렸던 마을 막걸릿집 안방에 앉아 아버지의 안주를 야금야금 먹고 있었다. 시골 노인들 집이 대개 그러하듯 방앗간 안방에도 누구도 보지 않는 뉴스가 하릴없이 틀어져 있었다. 자식 떠난 집안의 정적에 이골이 난 노인들 나름의 저항이었을 것이다. 옥수수죽을 반쯤 떠먹었을까. 헛하는 소리와 함께 어른들의 시선이 TV로 쏠렸다. 노트북 화면만 한 TV에선 여객기가 고층 빌딩에 충돌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외마디 탄성을 끝으로 한동안 침묵했다.


역시 세상에는 악한 놈들이 너무 많아. 저런 것들은 싹 솎아 내버려야 맞는 건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춣처 = 영화 <제로 다크 서티> 캡처

사막 어딘가의 블랙 사이트(Black Site, 장소 불명의 첩보 용어). 중동인 남자가 밀실에 묶여있다. 남자의 이름은 암마르. 빈 라덴의 조카이자 알카에다 수뇌부의 자금책 활동을 하다가 CIA에 납치되었다. 


"내가 말했지? 나한테 거짓말하면 다친다고"


구타와 물고문, 기숙사 옷장만한 나무 상자에 가두기.. 요원들은 암마르가 죽지 않을 정도의 고문을 지속한다. 타인의 생명을 해쳐선 안된다는 인권을 준수해서가 아니다. 듣지 못한 정보가 아직 많다는 사실이 요원들이 암마르의 목숨을 염려하는 유일한 이유다. 심문 현장에 처음 투입된 요원 마야(제시카 차스테인 분)는 선배들의 심문 기술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심문을 마치고 돌아온 사무실 TV에선 "고문 따위는 없다"고 단언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인터뷰 영상이 재생 중이다.


정의(Justice)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정의는 악의 대칭점에 서 있는 존재나 사상이라는 것이다. 정의는 악과 맞서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빈 라덴과 알카에다는 무고한 미국 시민 3천 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들의 명분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상관없다. 9.11과 알카에다가 악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으니까. 미국 정부는 알카에다라는 거악(巨惡)에 맞서기 위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첩보 작전에 돌입했다. 


출처 = 영화 <제로 다크 서티> 캡처


테러범들은 입이 무거웠다. 혈연과 교리로 묶인 그들의 결속은 단단했다. 첩보원들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납치 수준의 체포와 무기한 감금, 각종 고문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는 즉각 수용되었다. 필요하다면 수감자를 며칠씩 굶길 수도 있고, 개처럼 목줄을 채워 끌고 다닐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은 '빈 라덴'이란 거대악을 사살하고 다음 테러를 막기 위한 것이다. 최악을 막기 위해 기꺼이 차악이 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두고 정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10년간의 추적 끝에 마야는 코드네임 제로니모, 즉 빈 라덴의 거처로 '추정'되는 집을 찾아낸다. 해당 거처는 파키스탄 영토 내에 있었으므로 공식적인 군사 작전은 불가능했다. 만에 하나 기습한 집의 거주자가 빈 라덴이 아닐 경우 미국은 외교 전쟁을 치를 각오까지 해야 했다. 정부 고위 인사들이 난색을 표할 때 오직 마야만이 홀로 작전 감행을 고수한다. 2011년 5월 1일 제로 다크 서티(가장 어두운 시간대를 칭하는 군대 용어). 미군 특수부대 DEVGRU는 침실에 잠들어 있던 빈 라덴을 사살한다. 사살 직후 본부로 들려온 무전은 "신과 조국을 위해 제로니모를 사살했다"였다.



출처 = 영화 <제로 다크 서티> 캡처

"어디로 모실까요?"
"....."


수송기에 홀로 올라선 마야의 눈빛은 정의를 구현한 디케(정의의 여신)의 그것이 아니다. 빈 라덴은 비무장 상태였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사살당했다. 고문 금지, 미란다 원칙, 무죄추정의 원칙.. 이른바 선진국에서 '정의'를 위해 정한 법 절차 중 어떤 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일반 형사 사건이었다면 대통령이 탄핵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빈 라덴으로 상징되는 거대악에 맞서는 과정이었으므로, 이 모든 불의의 과정은 정의가 되었다. 나는 정말 정의를 실현한 걸까. 텅 빈 수송기 안에서 마야는 숨죽여 흐느낀다.




불현듯, 세상에 순도 100% 선이나 악은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 있었다. "우린 모두가 복잡하게 나쁜 사람일 뿐"이라던 평론가 신형철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다시는 "세상엔 나쁜 놈들이 너무 많다"라고 믿던 소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나는 직감했다. 


간혹 사회부 기사에 달린 페이스북 댓글들을 읽어보곤 했다. 비판의 입장을 견지하는 글도 있었지만 절반 이상이 인격모독 수준의 욕설이었다. 나는 선하다는 확신이 없으면 쓸 수 없는 심판자의 논지였다. 자신이 선하기만 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그처럼 많았다. 그 확신이 두려워서, 나는 페이스북 어플을 휴대폰에서 지웠다. 나 역시 누군가에겐 "복잡하게 나쁜" 사람일 수 있다는 의구심을 잊지 않기로 했다.


영화 <제로 다크 서티>는 정의를 자처하는 개인과 국가의 자기 기만성을 폭로한다. 그렇다고 빈 라덴을 사살하지 말았어야 했다 말하지는 않는다. 무려 3천 명이다. 죄 없이 산화한 3천여 명의 목숨값을 누군가는 치러야 한다는 걸 감독 역시 알고 있다. 영화는 다만 '가끔은 거울을 보라'고 주문할 따름이다. 그 거울 안에 정의의 사도가 있는지, 정의를 자처한 또 다른 괴물이 있는지 가끔은 자문해 보라고 말한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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