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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언 Aug 28. 2017

영화 <더 테이블>: 테이블의 기억

    

"상제님이 우리를 돌봐주고 계시거든요. 그러려면 조상님들께 제사로 치성을 드려야 하는데..."


벌써 수년 전 일이다. 여자는 10분째 혼자 떠들고 있었다. 어째 얼굴이 묘하게 다르다 싶던 차였다. 여자는 기왕 정체가 들킨 마당에 준비해 온 말이라도 다 쏟아내자 작정한 듯 보였다. 나는 애꿎은 찻잔만 휘저었다. 독서토론 소모임에서 딱 한번 본 여자였다. 말을 나누거나 한 기억도 없었다. 며칠 후 여자는 오래 알았던 사이인 양 친근하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밥이나 한번 먹자고. 내게 죄가 있다면 작년에 안면을 텄던 모임 누나와 여자의 프로필 사진을 혼동한 죄뿐이다. 나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는 사이 여자는 사물에 깃든 기(氣) 체계에 관한 강의로 넘어가고 있었다. 안면인식도 질병이라더니 정말 자가진단이라도 받아 봐야 하나...    


"이 카페라는 공간에도 기가 있어서 우리가 하는 대화가 축적되고 기억 되든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도 방영..."


더는 참기 힘들어 약속을 핑계로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여자는 월말 결산이 코앞인 방문 판매원처럼 따라붙어 생각이 바뀌면 연락 달라고 하소연했다. 만약 명함이 있었다면 내 주머니에 직접 욱여넣을 기세였다. 그러마 하고 서둘러 지하철을 잡아탔다. 후에 알고 보니 여자는 나 말고도 모임 회원 여럿에게 연락을 취한 바 있었다. 이상한 얘기를 꺼내기 시작할 때부터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야 했는데. 그땐 쓸데없이 착해 빠졌었다. 그날 이후 나는 원래 안 좋아하던 카페를 조금 더 싫어하게 됐다.    




 

영화 <더 테이블>은 인적 드문 거리의 카페의 하루를 담았다. 촬영 기간은 총 7일이 걸렸다고 한다. 아담한 창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은 말을 주고받는다. 묘한 기대감에 잠겨 카페에 온 여배우와 그런 그녀와의 인연을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전 남자 친구, 하룻밤의 사랑을 끝으로 해외여행을 떠난 남자와 그런 남자가 못내 서운한 여자, 남자 친구와의 결혼을 앞두고 진짜 애인을 찾아온 여자와 여자를 정리하려는 남자... 사연만큼이나 기상천외한 사람들이 아담한 창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하루 종일 카페에 앉아있으면 별의별 이야기들을 다 들을 수 있다는 경험칙상 어느 정도의 핍진성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더 테이블> 각본을 쓰기 위해 여러 카페를 방황했다던 감독의 개인 경험도 반영된 듯 보인다)  

 

김종관 감독은 보면 볼수록 독립 영화에 특화된 예술가라는 생각이 든다. 김종관 감독의 강점은 – 영화 <최악의 하루>에서도 증명했듯 – 아름다운 영상미와 일상성이다. 현대 미술 전시관에 누군가 안경을 떨어뜨렸더니 관객들이 그 안경이 작품인 줄 알고 사진을 찍었다는 일화를 떠올려 보면 쉽다. 감독은 일상의 어떤 장면들을 예쁘개 담아 스크린에 영사하면 작품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안경이 전시관에 드러 서면 작품이 되듯, 사소한 일상의 장면도 영사되는 순간 작품이 된다. 감독의 과녁이 독립영화 특유의 감성을 즐기는 사람들에 있다면 <더 테이블>은 확실히 성공한 작품이다. 찰나와, 찰나의 감정에 대한 미학이랄까.  

 

문제는 '독립 감성'이 아닌 '이야기'를 보러 영화관을 찾은 나 같은 관객이다. 특정한 이야기 속 내러티브와 캐릭터들의 표정과 대사에 주목하는 것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더 테이블>은 다소 당황스럽다. "그래서 뭘 어쩌란 건가요"라는 의구심이  세차게 고개를 쳐든다. 물론, 예술이 곧 프로파간다는 아니므로 명료한 메시지의 유무가 좋은 예술의 척도가 될 순 없다. '상업적으로 성공한'도 아니고 '좋은' 예술이냐 아니냐를 니가 뭔데 논평하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내게 좋은 예술을 가르는 기준은 언제나 '내 마음에 어떤 족적을 남겼느냐'뿐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더 테이블>은 내게 다소 심심했다.




상영관을 나오면서 나는 수년 전 카페에서 "대화의 공간 축적"을 강의했던 여자를 떠올렸다. 그 여자분 말대로 사물에도 기억이 있어 자신이 보고 들은 내용을 켜켜이 축적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기억을 영상으로 영사해낸다면, 꼭 <더 테이블> 같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요즘은 읍, 군 단위 지방 도시를 가도 카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공급은 수요에 비례한다고 했다. 그만큼 카페를 찾는 인구가 많다는 뜻이다. 하루에도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카페에서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나눌까 가늠해보면 그저 아득할 뿐이다. 커피 내음 향긋한 카페의 테이블들은 사람들의 오가는 마음들을 오늘도 조용히 경청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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