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마음
나는 하늘을 자주 바라본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높은 건물이 없고,
사방이 논과 밭으로 이루어진 시골마을에서 자란 탓에
고개만 들면 보이는 것이 하늘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무언가를 그리면서 마음 한 구석을 조용히 채워나가고 싶었던 욕구에서 인지도 모르겠다.
무심히 걷다가도 문득 하늘을 보게 되고,
깊은 생각에 잠길 때도 문득 하늘을 보게 된다.
무언가의 흔적을 찾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위로받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순간순간 변하는 하늘의 모습이
마치 다양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위로해 주는 것 같이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하늘을 자주 바라본다.
오늘도
하늘 속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본다.
어릴 적 나는 구름을 보며 혼자만의 놀이를 즐겼다.
집 앞마당에 나가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믿었던 날들이 있었다.
막연한 기다림 속에서도,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바뀌어있는 구름의 형상에서
내가 아는 주변의 것들의 모습들을 찾아가며 시간을 보내주던 구름은,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느껴졌고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해 주는 구름에게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것 같았더랬다.
그러다 어둑해지는 하늘에게
내일도 또 나와 시간을 보내줄 수 있는지 묻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그렇게 또다시 찾아온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도
구름은 늘 한결같이 나의 시간을 함께 보내주었다.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구름은
내게 공평한 친구였다.
지금도 하늘을 올려볼 때면,
가끔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아직도 나는,
구름만 보면 어떤 것과 닮은 형태가 있는지 찾으려 한다.
하지만 이제는 어린 시절의 촉촉한 눈망울이 아닌
즐겁고 신이 난 반짝이는 눈빛으로 구름과 놀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겨우 조금 알 것 같다.
구름의 형태가 변하는 것처럼
세월이 흘러가면서 마음도 조금씩 희미해진다는 것을.
희미해진다는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저기 저 먼 곳에 있는 하얀 무언가도
바닥에 새까만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져 가는 것 같다.
오늘 멈춘 시선: 나에겐 한 마리의 새가, 누군가는 어떤 것이 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