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수업

바른 마음을 사용하는 방법

by 임은


혼자서 해결하지 못한 감정을 지나가는 다른 이에게, 혹은 옆에 있던 모르는 어떤 이에게 감정이 무서운 도구가 되어 큰 아픔을 주는 경우를 텔레비전에서 종종 보게 된다. 아픈 감정에 여러 가지 병명들이 생기고, 세상이 주는 다양한 감정에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덫이라도 된 듯 헤어 나오기 힘들어한다. 그 개인이 갖는 비 이상적 감정에 주변 사람들의 고통은 커지고, 크게는 내 삶 속에 언젠가는 닥칠 수도 있는 일이 되기도 하였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가 어렸을 적 상상하지도 못하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의 삶을 염려한 교육자들이 만든 수업일 것이다. 아이들이 커서 도시를 방황하며 자신의 감정에 아픈 사회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라고 느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숙제로 ‘갑질 방지 예방 교육’이라는 영상을 본 후 아이와 ‘갑질의 의미’를 알아보았다. 영상 속 내용은 이렇다. [엄마가 아이에게 놀이를 제안한다. 그러자 아이는 백화점 놀이의 손님이 되고 엄마는 백화점 직원이 된다. 손님이 된 아이는 직원의 엄마에게 최상의 갑이 되어 지시를 하고 직원을 나무라기까지 한다. 그 모습에 엄마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손님의 역할을 표현하던 아이는 자신의 엄마에게 그런 모습을 보아왔던 것 같다. 아이가 바라본 손님은 그런 위치에, 그런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영상을 본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교육까지 받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구나. 사람들이 한없이 속물 같고 자기중심적이고 다른 이를 생각할 수 없는 자기 통제가 불가능한 감정의 벼랑 끝에 내몰린 것 같았다.


아이가 어리고 우리가 식당에 자주 다녔을 적에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음식을 주문하면 허리를 굽혀 우리의 주문을 받고, 우리에게 낮은 자세로 대해주시던 분들을 우리보다 미천해서, 우리보다 낮은 위치에 있어서 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지저분하게 먹은 그릇을 아무렇지 않게 치워주시는 분들이 우리의 지저분한 그릇을 치워 줬다고 해서 아이가 우리의 위치를 더 높다고 자칫 잘못 판단하면 어떡하냐는 이야기였다. 버릇없고 오만한 아이로 클까 두렵고 무섭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의 말과 행동에 몰두해 있을 그 시기에 더욱더 식당 종업원과 사장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접시를 치워 주실 때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이분들이 있기에 우리가 편히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종종 했었다.


영상을 본 후 아이에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물어보았다. 엄마는 너무 충격적이라는 이야기도 보탰다. 아이도 충격적이고 눈물이 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갑질의 의미를 부모에게 물어보라는 숙제에 ‘갑’과 ‘을’은 동등하다는 이야기를 할 요량으로 ‘갑’과 ‘을’ 중에 누가 더 대단한 사람 같냐는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을’이라고 답했다. ‘을’은 ‘갑’을 도와주기에 도와주는 사람이 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더 훌륭한 사람일 것 같다고 했다.


이런 교육은 어른이 받아야 마땅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아이 숙제라는 타이틀로 부모에게 교육을 시키려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우리는 돈을 지불하고 사는 곳에선 ‘갑’이 되지만, 그 외엔 ‘을’의 입장에서 살아간다. ‘을’의 입장이 될 수 없고, 늘 ‘갑’의 입장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의 감정이 밑바닥이라 너의 감정 따위는 공감해줄 수 없고, 내가 억눌렀던 본능적 감정이 폭발해서 남에게 함부로 대했던 적이 없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만 알고 오만하고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부모가 된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커피가게 아르바이트생에게도, 함부로 대한적이 없다. 먼 훗날 내 아이가 아르바이트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 아이가 그곳에 서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아르바이트생도 누군가의 귀한 가족일 텐데 싶어서.


올바름의 당연함을 알고 있어도 힘든 세상에 바름의 생각들이 무뎌지고 쓸려나가지 않도록, 매사에 감사함을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 인간의 본성이 무너질 때 사악한 것들이 틈을 타고 찾아오는 듯싶다. 나부터가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 아이에게 보여주는 바름보다 내면의 바른 나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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