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는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방금 전까지는 밥을 먹는 식탁으로 사용하였고 그전에는 숙제를 하였으므로 책상이었고 지금은 아이와 긴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아이와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때는 아이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와 내가 대등한 관계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식탁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다. 커피와 코코아를 사이에 두고 앉을 때도 있지만. 오늘은 그렇게 여유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너는 동생이 네 말을 믿지 못하게 하는 행동을 했어.”
“.........”
“너의 신뢰가 바닥이 나면, 너의 말에 대해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거 같아.”
“........”
“그래서 말인데, 그 장난기 가득한 농담을 그만 해줬으면 좋겠어. 가끔 너의 선을 넘는 장난에 지치기도 하거든.”
“엄마.... 장난은 치고 싶어요.”
“(풉) 그래도 장난은 끊지 못할 거 같다는 거야?”
“(풉) 네. 저 장난은 계속하고 싶어요. 그건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그래 그것마저 없으면 네가 힘들다는 거지?”
“네”
“알겠어. 그럼 누구도 피해 보지 않을 장난이나 농담은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음... 제가 조절을 잘해야겠죠? 기분 나쁘지 않게?”
“맞아. 하는 너도 상대도 기분이 나쁘지 않아야겠지. 그리고 또?”
“잘 모르겠어요.”
“오늘처럼 상대가 기분이 나빠지면?”
“제가 안 나쁘게 하겠지만, 제가 잘 풀게 해야죠.”
“음. 네 행동에 대한 책임도 중요할 것 같아. 그럼 주의 사항을 이렇게 정하자. 선을 넘지 말 것. 상대가 기분이 나쁠 때는 언제든 그만 할 것. 장난에 대한 책임은 네가 질 것.”
“네. 제가 잘할게요.”
“알겠어. 그렇다면 뭐. 나도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일게.”
“네, 감사해요.”
아이의 입에서 잘못했다는 대답을 바랐지만 침묵을 깬 아이의 첫마디는 ‘장난을 건드리지 마세요’였다. 자신도 웃기는지. 세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면서. 사실 요즘 아이와 자주 부딪히는 부분은 심한 장난 때문이었다. 그 부분을 자주 혼냈지만. 이해해 달라는 아이의 부탁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느 선만 지키면 너와 자주 부딪히는 부분이 해결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협상을 하였다.
그 후로는
“엄마, 나는 선생님께서 캐스터네츠를 가져오라고 하신다면 전기밥통을 가져가겠어요. 이게 열고 닫으면서 소리가 촥촥 잘나거든요.”
“아이고, 선생님 아주 좋아시겠네.”
저녁으로 짜장면을 사 온 봉지를 자신의 방으로 들고 들어가면서
“엄마, 제가 배가 고파서 그런데, 혼자 다 먹을게요.”
“그래. 젓가락도 없는데 손으로 잘 먹어봐라.”
이러곤 맞장구 쳐주는 엄마를 향해 큭큭대며 저녁 봉지를 들고 식탁으로 들고 나왔다.
우리의 [식탁 위의 협상] 이후, 아이의 농담이 더 이상 기분 나쁜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 아이 또한 상대의 기분이 나쁘지 않게 분위기를 살피는 노력과 상대의 기분을 헤아려 가며 적당한 농담도 즐기려고 했다. 그러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 엄마와의 협상을 잊지 않고 지켜내려는 책임감 있는 모습 말이다. 가족들이 맞장구를 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자신이 약속을 잘 지켜야 즐거운 웃음이 될 거라고 잘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가 10살이 되면 부모는 토론을 준비하라>>는 책에선 아이의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는 것이 지는 협상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모든 조건을 허락하는 것이 부모가 이기는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아이와의 관계 개선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부모에 대한 신뢰가 쌓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요즘은 아이의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루에 수십 번씩 들어야 하지만, 자주 들으니 아이식 유머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인상을 쓰고 지내는 시간보다 확실히 웃기지 않을 농담이라도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아이와 자주 부딪히는 부분을 개선해 보려는 대화 보단, 하지 못하게 하려는 말과 끊어내려는 행동이 그동안 아이를 지치게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렇게 농담을 즐기고 싶어 하는 아이인데. 자신도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을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시가 있다. 내 아이를 예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자세히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작은 솜털 하나하나도 사랑스럽다. 자세히 보았기 때문에 그 존재가 사랑스러운 것은 아닐까. 아이의 생활도 이제 자세히 보아야 한다.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그러한 생각을 했는지. 아이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의 이야기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그것에 불편하지 않은 조건과 적절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은 부모의 입장에도 결코 나쁜 협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