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해심 보단, 어른의 이해심.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들
모두가 잠든 시간, 아이는 잠에 들 수가 없다.
엄마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고 생각했기에. 화가 난 엄마를 두고 혼자 자러 들어갈 수가 없었나 보다.
괜히 소파 쿠션의 자리를 찾아준다. 바닥에 나뒹굴던 책들도 제자리를 찾아주고. 리모컨의 자리까지 찾아 주었더니 더는 할 일이 없는지 내 앞에 앉아 있다.
아이 엄마, 미안해요..
나 내가 무슨 일로 화가 난 것처럼 보이니?
아이 내가 동생한테 너그럽지 못해서요?
나 아니, 그런 것 같았어 나도.... 그런데 그게 아닌 걸 깨달았어. ‘동생한테 양보하지 못하고 억지를 쓴다고’ 방금 혼이 나고, 너는 나에게 ‘죄송하다’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했어. 그리고 나선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어. 내가 화를 내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문득 깨달았어.
아이의 행동에 숨길수 없는 화를 쏟아부은 뒤, 동생의 행동에 너그러워 달라는 내 부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너의 행동에 너그럽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도리어 너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라니..
나 네가 여태껏 네 나이의 아이들을 만난 게 최대 몇 명 정도 될 거 같니?
아이 한... 50명? 100명?
나 네가 만나서 말을 한 번이라도 걸어본 친구를 최대로 생각했을 때. 100명이라고 가정하면. 그중에 이해심이 많고, 너그러운 친구는 몇 명이었어?
아이 한 두 명?
나 진짜? 그것밖에 안돼?
아이 네...그럴것 같아요..
나 그럼 100명 중에 한두 명, 우리나라 전체 네 나이 또래 중에, 1퍼센트. 그러니까 우리나라 네 나이 또래 중에 단 1퍼센트만 이해심이 많고, 너그럽다는 거네. 그럼 너는 평균이야. 네가 이해심이 없다고 느끼는 건 평균이라고. 일반적이라는 이야기야. 네가 동생한테 양보를 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는 이야기야. 엄마가 이러한 똑같은 상황의 이유로 여러 번 혼냈지? 그때마다 왜 넌 고치지 못했어?
아이 동생한테 잘못하고 엄마에게 야단을 맞을 때, 그제야 예전에 똑같은 이유로 잘못을 했다는 것이 떠올랐어요.
나 그럼, 지난번부터 신었던 양말은 방에 두지 말고 세탁기에 넣어 두라고 했는데, 그건 고쳤어?
아이 네. 방금도 세탁기에 넣었고요. 어제도 세탁기에 넣었어요. 엄마의 말이 떠올라서..
나 그럼 내 말을 일부러 듣지 않는다는 건 아니네. 떠오르지 않은 거지...
엄마의 말을 흘려듣고 같은 반복 하여, 고칠 생각을 안 한다고 생각하는 건 내 착각인 듯했다.
나 3살의 지능을 가진 아이에게, 더하기를 가르쳐주면 어떨 거 같아?
아이 어렵고 못하겠죠?
나 지능이 3살인데, 7~8살 수준의 더하기를 가르쳐 주면 못하겠지. 그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은 다하는데 왜 못하냐고 한다면?
아이 속상하겠죠. 나만 못한다고 생각하고.
나 그렇지. 원래 못하는 게 당연한데 아이는 나만 못한다고 생각하니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고 속상하겠지. 네가 이해심이라는 영역의 뇌가 많이 자라지 않은 건 아닐까? 이해심이 덜 자란 거야. 그러니 여러 번 이야기해도 까먹고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한번 혼이 났던 양말은 제자리에 두면서 말이야.
아이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 그러니까. 너도 나만 왜 못할까. 왜 동생에게 양보를 하는 걸 까먹었을까. 하는 마음에 한없이 작아지지 마. 그게 엄마가 제일 속상한 부분이야.
아이 네. 못난 사람처럼 생각하지 않을게요.
나 대신, 양심은 가지고 있어야 해. 잘못을 계속 반복했을 때 당장 고치지는 못해도, 미안한 마음은 가지고 있어야 해. 그래야 나중에라도 고칠 수 있어. 미안한 마음이 무뎌지면 안 돼.
남을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덜 자랐을 거라 생각하고 나니, 아이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되었고, 아이도 자신의 못난 부분이 조금은 해소가 된 듯하였다.
나 지난번 학교에서 네 뒷자리에 앉아서 너한테 지우개 가루 뿌리던 아이는 어떻게 됐어?
아이 선생님이 화해를 시켜주셨는데. 나쁜 아이는 아니었어요. 불안해서 손으로 뭘 자꾸 만져야 되는 아이였대요.
나 불안해서 그런 거니 잘못을 당연히 해도 되는 건 없어. 그 친구는 처음에 너한테 지우개 가루를 뿌렸을 때,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지 몰라. 그리곤 여러 번 하니 너의 반응에 재밌게 느껴져 미안한 마음이 사라진 거야. 잘못을 여러 번 하면 양심이 사라져. 그렇게 되면 잘못된 마음을 깨우치지 못해. 고칠 수가 없어. 그럴 땐 어른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게 맞는 거고.
아이 양심을 잘 느낄고, 가지고 있을게요.
나 어렸을 때 네가 볼 수 있는 시야가 오른쪽 왼쪽이 아닌 네 바로 앞부분만 볼 수 있었다면, 이제 조금씩 넓혀 가고 있는 중일 거야. 나는 왜 당장 어른의 시야를 가지지 못했냐고, 왜 어른처럼 생각하지 못했냐고 따져 물었어. 아직 그런 마음이 자라나지 못해서 네가 할 수 없는 영역인데 말이야. 네가 아닌 어른들이 너를 이해하지 않았어. 너는 여느 아이들처럼 평범한데, 키가 좀 컸다고 이제 몸집이 커진다고 어른처럼 왜 이해심을 가지지 못했냐고 따져 물어도 이젠 기죽지 마. 넌 아주 평범한 삶을 살고 있고, 이해를 못하는 건 어른일 테니까. 네 방에 들어가서 한숨 푹푹 내쉬면서 ‘난 왜 이렇게 못났을까’ 생각하지 마. 네 자존감 무너뜨리지 마. 이해 못하냐는 소리 듣고 ‘어른들은 모르시겠지만, 전 평범해요, 아직 뇌가 자라고 있는 걸 모르고 계시네요.’라고 생각해. 그리고 양심을 버리지는 마. 내가 널 잘 이해하고 여러 번 가르쳐서 시야를 넓혀줄게. 때론 상처 속에 너의 시야가 넓어질 수 있어. 그걸 두려워하지 마. 우리 좋은 건, 상위 1퍼센트 하자.
자신만의 공간으로 들어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잠을 자거나 멍하니 앉아 있는다. 저녁도 먹기 싫다고 하고, 좋아하던 일도 다 싫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나도 속이 너무 상할 땐 그런 행동을 하기도 하니까. 자신만의 시간으로 힘든 마음을 토닥이는 중이라고 여겼다. 그런 시간도 아이가 성장하는 단계일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렇게 큰 상처의 말도 아닌데도 본인이 너무 큰 짐을 짊어지고 살 땐, 내 마음이 자꾸만 아프다.
아이는 어제와 다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작년에 큰 치수로 사두었던 옷이 아동복처럼 느껴지고, 몇 달 전에 샀던 그 신발이 작아지는 것을 느낄 때, 눈으로 보는 아이의 성장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나의 시간과는 다르게 흘러감을 느낀다. 커진 덩치에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워 버리는 그 모습에, 아이의 생각의 그릇 또한 커졌을 거라는 착각을 하고 산다. 아니, 내 아이의 이해심은 다른 아이의 이해심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전문가의 육아 책을 보며,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과 부모로서의 다짐을 이어간다. 하지만 아이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그 다짐이 쉽게 무너질 때가 있다. 부모로서 부족한 사람이 아닌가 싶은 마음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아이의 탓으로 돌리기엔 내가 낳은 아이가 왠지 부족해 보이는 것 같아 속상하다.
나는 그럴 때, 내 마음을 솔직하게 아이에게 털어놓았다. 아이가 견디기 어려운, 내 탓이라고 느껴지는 하소연이 아니라. 같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 같은 경우이다. 결과가 아닌 본질을 이야기해야 한다. 다음부터 어떻게 할까 보단, 내가 왜 그렇게 느꼈지를 이야기하다 보면. 상대를 이해하는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유아교육을 전공한 전문가들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내 아이에게 최적화된 ‘내 아이만의 전문가’이다. 육아 전문가들처럼 명쾌한 해답을 찾는 것보단, 아이와 부딪혀 가며 삶의 해답을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거라 생각이 든다.
부모의 모습으로 왠지 강한 내면을 지니고 이해심도 넓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도 연약한 사람일 뿐이다. 상처 받고, 누구보다 그 상처에 아파한다. 아이와 본질을 이해하려는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았는다면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상황에 지쳐갈 수 있다. 아이와의 대화 속에 부모는 아이가 들여다볼 수 없는 깊은 본질까지 따져야 하고, 내가 너를 이해하고자 하려는 마음을 충분히 드러내야 아이도 집중력을 발휘해서 엄마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준다. 전문가가 떠먹여 준 명쾌한 해답보다 어쩌면 아이와 부딪혀서 아이의 마음과 내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대화는 나의 행동과 마음에 더 큰 성장을 도울 것이라 생각한다.
내 아이는 감정과 생각이 부족한 아이가 아니다.
사춘기라는 틀로 잘못된 모든 행동을 성장의 단계라 착각하면 안 된다.
아이의 마음과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하소연이 아닌, 본질의 의미를 되새기는 대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