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의
온화한 그의 두 눈에서 ‘복수’라는 단어는 끝내 어울리지 않았다. 이설은 그가 가진 부드러움을 마주할 때마다, 그 안에 감춰진 슬픔과 결심의 온도를 함께 느꼈다.
정의로운 복수란 애초에 존재 하지 않는다. 정의와 복수는 닮은 듯, 결국 다른 이름을 가졌으니까. 법의 경계가 뚜렷한 일이라면 오히려 더 망설여졌다. 그 선을 한 번 넘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무렵, 집 근처엔 낯선 사내들이 자주 어른거렸다. 이전의 재개발 인부들과는 달랐다. 그들의 눈은 사람을 고르는 상인처럼 차가웠고, 가끔은 창문 너머를 훑으며 이 빌라를 통째로 관찰하고 있었다.
힘겹게 삶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빌라 사람들의 밤은, 이른 시간부터 늘 고요했기에 그들이 서성 거리는 작은 움직임조차 우리의 눈엔 가시 같았다. 모두가 재개발을 기다리며 그 안에 있을 희망을 이야기했지만, 그 희망조차 이들에겐 불안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설은 딸의 간호로 몇 주째 집에 들르지 못하는 이모를 위해 옷가지를 가방에 넣었다. 현관문을 열자, 옆집 아저씨를 마주쳤다.
"현아가 많이 아픈가 보네. 이모가 집에 들를 새도 없이."
"네,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호전되고 있대요."
"아휴. 다행이네. 곧 나아질 거야. 그 고생을 했는데. 나아져야지."
홀로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저씨였다. 아내가 아파 세상을 떠났다지만, 가끔 걸려오는 전화는 그 말을 부정했다. 그가딸을 애지중지 챙기는 모습은 이설에게 낯설었다. 그는 배달 일과 공사장 일을 오가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빌라는 세상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조용히 숨 쉬는 곳이었다.
1층의 할머니 그 옆집 아주머니.
2층에 사는 자영업자 부부와 몸이 불편한 아들을 챙기는 아주머니
3층의 우리와 홀로 아이를 키우는 아저씨.
4층의 새로 이사 온 아저씨. 그리곤 방문이 드문 4층 여자까지.
이 작은 건물 안엔 각자의 사정이 층처럼 쌓여 있었다. 어쩌면 우린, 재개발이 안된 이 빌라에서 오래도록 머물 수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얼마 전 빌라에 새로 합류한 알코올중독 아저씨. 그는 늘 피곤한 얼굴로 계단을 오르내렸다.
"아저씨 이거 메추리알 장조림이에요. 술안주 하세요."
4층으로 올라가려던 이설 앞에 백연이 지나갔다.
"술 먹지 말라며."
"그렇다고 안 먹을 거 아니잖아요."
"나 술 끊었어. 이젠 절대 안 먹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다시 마시는 거 많이 봤지만… 결심하셨다니 다행이네요."
돌아서려는 백연 앞에 이설이 물었다.
"그 경찰 맞죠? 얼마 전 뉴스에서 나왔던. 비리 어쩌고 했던 경찰."
"그거 사실 아니야."
"그럴 거 같아요. 억울해서 술 드셨던 거잖아요. 남자 이름 부르면서. 애인이름 일이 없고… 뭔가 사정이 있다 싶었어요."
백연은 말이 없었다. 이설이 돌아서려 할 때, 백연이 낮게 불렀다.
"저기, 아가씨."
"아가씨는 좀 그렇고, 이설이에요."
"이설씨. 최근에 이근처 드나들던 남자들…"
"네 재개발로 온건 아닌 게 확실해요. 일반 건달도 아닌 거 같고. 누굴 감시하는 눈이었어요. 잡으러 온 사람 같달까.”
백연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설은 그 눈 속에서 무언가 감췄다는 걸 직감했다. 그가 이 빌라에 온 뒤, 모든 게 달라졌다. 밤의 공기는 조용했지만, 그 고요 속엔 언제 폭발할지 모를 긴장이 숨어 있었다.
그때, 이설의 휴대폰이 진동 했다. 화면엔 ‘김지혁 변호사’라는 이름이 떴다.
-지난번 부탁한 일. 조금 더 빨리 처리해야 할 것 같아요.
짧고 절제된 문장이었다. 늘 그랬다. 그의 말엔 감정의 여백이 거의 없었다. 이설은 잠시 메시지를 바라보다 천천히 닫았다. 그가 다급해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곧 그 이유가 세상을 뒤흔들 것이란 예감은 확실했다.
그 시각, 지혁은 사무실 한편에서 오래된 의뢰서를 꺼내 들고 있었다. 겉면엔 붉은 잉크로 표시된 문구가 선명했다.
-R9프로젝트 관련 민원 취하건.
업체: 레가토 바이오.
지혁은 서류를 훑다 손끝이 멈췄다. 하단의 이름이 그를 멈추게 했다.
-대표이사 김현우 – 법정대리인 김지혁.
지혁의 전화가 울렸다. 낯익은 번호.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결국 전화를 받았다. 그의 아버지였다.
-오늘은 잠깐 들러야지.
-… 가는 게 의미가 있나요.
-그래도, 네가 왔으면 좋겠구나.
아버지의 목소리는 늘 같았다. 온화하고 무겁고 집착 있는 목소리.
49층. 도심 한복판의 하늘 가까운 층. 그곳은 차가운 공기와 고요한 음악으로 가득했다. 김지혁이 일 년에 한 번, 아버지의 부름에 따라 올라오는 공간이었다. 아버지는 늘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엄마가 생전에 손수 고른, 하얀 소파 위에서.
“저 왔어요”
“그래. 와줘서 고맙다.”
“할 말도 있고요.”
“무슨…”
“어머니… 아직도 그리우세요?”
아버지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낮은 한숨이 흘렀다.
“그립지. 그리고, 안타깝고.”
“이제 놓아주시는 건 안되세요?”
지혁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지만 단호했다. 아버지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어떻게 놓아줄 수 있겠니.”
20년 전. 지혁의 어머니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 치료법도, 진단도 없었다. 생명공학 연구원이었던 아버지에게 그것은 신의 장난이자 심판이었다.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하던 사람이 자신의 아내 하나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직장도, 동료도, 윤리도. 그리고 레가토 바이오를 세웠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단 하나였다. 아내를 되살리는 일.
“엄마 보러 갈래?”
아버지의 질문은 평온했지만, 지혁은 가슴이 저몄다.
“저는 죽었다고 생각해요. 20년 전에 이미.”
아버지의 얼굴에 잠시 일그러졌다. 그는 아내를 냉동인간으로 보관했다. 죽음 직전의 몸을 얼려, 언젠가 치료할 수 있으리란 희망 하나로. 그 희망이 그를 살게 했지만, 동시에 그를 인간이 아니게 만들었다.
“이젠… 그만하셨으면 좋겠어요.”
지혁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지난 세월의 피로와 분노가 쌓여 있었다. 아버지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엔 온기가 없었다.
“넌 모르지.”
“뭘요.”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게 어떤 건지.”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정제된 슬픔이었다. 지혁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눈을 들어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건 아시나요. 아버지의 그리움을 채우기 위해 다른 이의 그리움을 이용하고 있다는 거.”
아버지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노을이 창가에 비추더니 이내 어두운 밤이 되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
“인체 실험 중지하세요.”
그 말은 단호했다. 더 이상 법의 언어가 아닌, 한 아들로서의 부탁이었다. 아버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밖의 불빛이 그의 얼굴을 반쯤 덮었다.
“모두 허락한 일이야.”
“아버지 욕심이 그 허락을 만든 거겠죠.”
지혁의 말이 떨어지자, 공간이 잠시 얼어붙었다. 덮여있던 잔을 열어 물을 벌컥 마신 아버지는 지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혁아.”
“….”
“넌 아직 모른다. 누군가를 살리고 싶은 사람의 절박함을.”
지혁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냉철한 변호사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더 이상 냉정해지기 어려웠다.
“살리고 싶은 게 아니라, 놓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건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에요.”
아버지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졌다. 그 안에서 오래된 그리움이 조금씩 광기로 변해갔다.
“그 두려움조차… 너는 언젠가 이해하게 될 거야.”
지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면 20년 동안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지혁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층수가 줄어들수록 공기가 점점 무거워졌다. 1층으로 내려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숨을 고르지 못했다.
문이 열리자, 도시의 밤이 그를 삼켰다. 인도 위로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오갔다. 그 모든 발소리가 지혁에겐 죄책감처럼, 한 사람의 심장을 두드리는 망치처럼 들렸다. 한동안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손안에 쥔 핸드폰이 미세하게 떨렸다. 화면 위에는 짧은 메시지가 떠 있었다.
[이설]
-요청하신 건, 이미 시작됐어요.
잠시, 그 문장 하나가 온몸을 얼어붙게 했다. 멈출 수 없는 기차 위에 올라탄 듯, 지혁은 마치 그 속도를 온몸으로 막으려는 사람 같았다. 불길했고, 두려웠다. 스무 해 동안 겹겹이 쌓아진 욕망과 집착을 이제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법으로, 정의로도 안 된다면, 이제는 오직 우리만의 방식으로 막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