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억이 과연 얼마 큼의 돈인 줄 알고나 하는 소리일까. 슈퍼에서 과자 봉지를 좀 많이 사야 하는 돈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마치 지금, 지갑에서 일억을 꺼내 들고 가겠다는 밝고 경쾌한 목소리였다. 과학잡지가 집에 도착한 날은 아이들이 신기한 일을 앞다투어 이야기한다. 돈이 있어도 갈 수 없던 시절보단 돈을 지불하고 여행처럼 다녀올 수 있게 된 것에 일억이라는 가치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내어 줄 수도 있겠다.
“나는 형을 보내줄 수가 없어, 우주라는 위험한 곳에 형을 보내줄 수 없어.”
“그러게, 우주는 좀 위험한 여행이지 않니?”
당장이라도 가방을 싸고 떠날 것 같던 아이는 좀 더 진지한 자세로 ‘여행을 갈까, 말까’의 여부를 결정하였다. 당장 갈 수도 없는 일이지만, 우린 늘 이렇게 진지하다.
“이제 키가 돼서 타게 된 놀이기구도 좀 무섭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 것쯤은 자유자재로 타야 그런 곳에도 가는 건 아닐까?”
“우주에 보내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나는 형을 그런 위험한 곳에 보낼 수 없어”
미래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던 꿈같던 ‘우주여행’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 내가 생존해 있다니, 감격스럽다. 과학의 발전에 박수를 보낼 뿐이지 내가 가고 싶지는 않다. 환갑 기념 선물로 ‘우주여행권’을 받고 싶지는 않다. 죽기 전에 해야 할 버킷리스트에 위험한 일에 대한 도전 따윈 없다. ‘번지 점프’나 ‘패러 글라이딩’ 이런 건 생각조차 안 한다. 나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건 별로 원치 않는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다. 놀이동산에서 100센티 미만의 아이들이 타는 놀이기구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그것을 탈 때도 안전띠의 여부를 여러 번 확인하지만 겁쟁이가 아니라 안전을 좋아하는 것이다. 나의 몸에서 어찌 이렇게 용감한 아이가 태어났을까. 매번 보아도 신기하고 놀랍다.
아이가 커서 우주여행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죽어라 노력해 일억 원을 모았다면, 그 의지와 노력에 다녀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본인의 의지가 넘쳐난다면 네가 하려고 하는 의지를 꺾는 부모는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문득했다. 자신의 목표를 세워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건 그것이 명문대의 학위가 아니어도 아이를 세상의 막다른 골목에서 홀로 설 수 있는 강한 의지가 되어 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알아줄 반듯한 학위 보다도 본인의 의지로 살아나갈 힘을 키우는 아이로 키워야겠다. 그렇다고 공부를 무시한 채 살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자신의 주어진 책임을 소홀히 하는 아이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아이가 가져야 할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책임을 다하며 본인의 목표를 내세웠을 때의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나사의 국가기관이 아닌 우주여행을 상품화하는 민간기업들이 생겨나 각각의 기업들이 내세우는 가격과 조건들이 다양하지만. 가장 저렴한 것은 약 2억 7천만 원의 돈으로 약 10분 동안 우주를 머물며 여행을 하는 것이고, 9박 10일간의 여행으로 약 654억을 지불해야 하는 여행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