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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k Jul 29. 2018

한층 높아진 보급기의 기준

아스텔앤컨 A&norma SR15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A&futura SE100과 같은 시기에 발표되었지만 아직 시판되기 전인 A&norma SR15가 이달 말 공식적인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로써 아스텔앤컨의 새로운 라인업인 세 가지 ‘A&’ 시리즈가 모두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이전 두 기기를 모두 다뤄본 필자로서는 비록 막내 라인일지라도 SR15에 거는 기대치가 상당히 높아진 상태로 리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리뷰어 입장에서 바라본 AK 제품들은 이전부터 상당히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필자가 AK 기기들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지는 A&ultima SP1000부터로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이후 SE100 역시 본인만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낸 채 출시되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정말 과거의 아스텔앤컨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표준(SR은 ‘StandaRd’의 약자이다)이라 명명된 SR15는 과연 어떠한 모습을 가진 채 등장할지, 브랜드가 추구하는 기본적인 소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SR15는 아스텔앤컨에게 중요한 존재이다. 기분 좋게 새롭게 출발한 아스텔앤컨은 한 시즌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 조심스래 SR15를 다루어보았다. 



스펙의 상향평준화를 꾀하다 


  시장 경제에서 가격은 곧 성능의 차이를 수반하는 것이 당연하다. 더 비싼 값을 지불하면서 성능이 떨어지는 제품을 구입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성비 이야기는 논외로 하자. 어느 분야이든 가격대가 올라갈수록 그에 따르는 성능차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앞서 SP1000이나 SE100과 같은 성능 좋은 기기들이 출시되었지만 SR15의 직접적인 비교 대상은 이들이 아닌 AK70MK2와 이들과 유사한 가격대의 타 브랜드 제품들이다. 아마 SR15에 관심을 가지는 유저들 대부분은 AK70MK2에서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해할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 역시 SR15가 기존 AK70MK2와 비교했을 때 얼마만큼 다른 소리를 들려줄지가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AK70MK2가 이미 해당 가격대에서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 상태이기 때문에 SR15를 리뷰하는 입장에서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스펙을 살펴보니 이 녀석 심상치 않다. 


  외관부터 살펴보자. 갸우뚱 기울어진 SR15의 액정 배치가 눈에 확 띈다. 제품을 직접 손에 잡아보기 전에는 아스텔앤컨의 비대칭적 디자인이 조금 선을 넘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외모에 치중한 나머지 실용적인 면을 배제한 것이 아닌가 싶었던 걱정은 제품을 실제로 손에 드는 순간 필자의 우려에 불과했던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로 57.2mm 세로 99.7mm로 AK70MK2 대비 가로 폭이 줄어든 대신 세로 길이가 늘어난 사이즈는 기대 이상의 그립감 향상 결과를 가져왔다. 각각 1센티가 채 안 되는 차이지만 그 차이로 인해 SR15는 쥐었을 때 손에 착 감기는 느낌, 반면 SR15를 들었다가 AK70MK2로 바꾸어 들면 AK70MK2의 그립감이 나쁜 편이 아님에도 제대로 쥐어지지 않고 겉돌게 느껴질 정도이다. 이와 함께 기울어진 액정 배치로 인해 만들어진 좌우 비대칭 사선형 베젤 역시 완벽한 그립감에 한몫을 단단히 했다. 



  내부에서 먼저 소개할 부분은 역시 소리에 영향을 끼치는 핵심 부품인 DAC이다. 아스텔앤컨은 이미 AK70MK2부터 보급형 라인업에도 과거 고급형 DAP의 상징이었던 듀얼 DAC 구성을 채택한 상태이다. 높아진 소비자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이제 듀얼 DAC 구성은 기본이라 보아도 무방한 상황에서(SE100은 싱글 DAC을 사용했지만 이는 ES9038 DAC을 포터블 용도로 사용하는 데에 따른 결정이니), SR15는 AK70MK2의 CS4398보다 한층 업그래이드된 시러스 로직의 마스터 하이파이(MasterHIFI) 레벨 CS43198 DAC을 사용하여 듀얼 DAC 구성을 갖추었다. 



  참고로 시러스 로직에서는 자사의 제품 중 일정 기준 이상의 오디오적 성능을 갖춘 제품에 마스터하이파이와 스마트하이파이 명칭을 부여하는데, 그중에서도 마스터하이파이는 가장 뛰어난 등급의 제품에 부여된다. 비록 SP1000에 비해 낮은 가격대의 제품들이지만 SE100과 SR15 모두 DAC에서만큼은 브랜드만 다를 뿐 성능에서만큼은 각 제조사들이 가장 자신있게 선보이고 있는 제품을 채용하여 등급차를 두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오디오 성능 수치도 중요하지만 유저들이 보다 체감할 수 있는 개선 사항은 네이티브 DSD 재생 지원이 아닐까 한다. SR15는 아스텔앤컨 보급기로는 최초로 DSD64(2.8MHz) 음원의 네이티브 DSD 재생을 지원한다. DSD 포맷 음원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나 네이티브 DSD 재생과 PCM 변환 재생 사이 체감되는 음질 차이에 대한 논란 등 과연 실제로 네이티브 DSD 재생 기능이 얼마만큼의 효용성을 가지는지는 유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겠지만,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한 가지씩 과거 고급기에서만 지원했던 기능을 보급기에도 적용시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실제로 네이티브 DSD 재생 방식과 PCM 변환 방식이 소리 차이를 가져오는지는 다음 장에서 다룰 예정이다. 


  SR15의 UI는 여타 A& 시리즈부터 도입된 새로운 UI를 작은 액정 크기에 맞게 수정시켰다. 필자가 작년 SP1000 출시 이후 감탄한 부분 중 하나가 완벽하게 새롭게 바뀐 기기 UI이다. 다른 브랜드 제품들을 사용한 유저들이라면 국내 제조사들의 제품 UI가 얼마나 뛰어난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기본적인 완성도뿐 아니라 이후의 펌웨어 업데이트 역시 국내 브랜드만큼 즉각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드물다. 기존 AK의 UI가 오랜 기간 동안 다듬어져 수준급의 완성도를 자랑하던 가운데 모든 부분을 완전히 바꾼 새로운 UI를 개발, 채택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편의성과 디자인 면에서 한층 향상된 새로운 UI를 선보인 점, 그리고 SR15의 환경에 맞게 다시 최적화 작업을 거친 점은 아스텔앤컨의 저력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A& 시리즈 기기들의 특징 중 하나가 스마트폰에 버금가는 기기적 스펙이다. 최적화된 UI와 고성능 스펙이 결합하여 유저들에게 기기를 사용하는 최적의 여건을 제공한다. SR15는 보급형 라인인 만큼 SP1000과 SE100보다는 떨어지지만, 쿼드 코어 CPU를 사용함으로써 여전히 쾌적한 기기적 성능을 제공한다. 실제 사용시 가장 체감되는 부분은 빠른 메모리카드 스캔 속도와 곡 선택시 부드러운 스크롤 조작이다. 특히 스크롤 조작 부분은 AK70MK2와 비교하면 바로 차이가 느껴질 만큼 부드럽게 조작된다. 


  SR15의 스펙을 살펴보던 중 한 가지 의아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오디오 성능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클럭 지터 수치가 전작에 비해 높아졌다. 다른 부분들은 크든 작든 AK70MK2보다 우위의 성능을 보이는데 유독 클럭 지터 수치만 70ps으로 45ps였던 AK70MK2보다 높은데, 어떠한 이유 때문인지 제조사측에 문의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다만 기기를 새롭게 설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결과로 기기의 최적화를 위해 청감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절된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다. 어찌 되었든 중요한 것은 기기가 들려주는 소리임은 당연하지만 찜찜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마 다음 A&norma 제품을 개발한다면 우선적으로 개선시켜야 할 부분은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품격 스탠다드란 이런 것 



  브랜드마다 그 브랜드의 성향을 대표하는 제품이 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을 집약하여 만든 최고급 제품을 대표 제품으로 꼽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갖춘 보급형 기기가 브랜드의 상징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아스텔앤컨은 이 중 후자에 가깝다. 


  어쩌다보니 최근 몇 년 동안 아스텔앤컨에서 출시한 모든 DAP를 리뷰로 다루었다. 혹시나 그 리뷰들을 읽은 독자가 있다면 최근의 리뷰로 올수록 아스텔앤컨에 대한 필자의 평가가 조금씩 바뀌어 온 것을 알아챌 수 있을 듯싶다. 이번에 SR15를 다루면서 이제는 아스텔앤컨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AK70MK2부터이다. 더 이상 보급기라 해서 무시할 수 없을 만한 소리적 완성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비단 완성도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아스텔앤컨이 쌓아온 소리에 대한 정체성을 가장 잘 간직했다는 면이 더 인상깊었다. 직전에 출시한 SP1000에서 큰 변화를 감행한 상태에서 AK70MK2는 흔들릴 수 있는 고유의 정체성을 다시 굳건히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SR15는 어느 면으로 보나 AK70MK2의 위치를 대체할 만한 기기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스텔앤컨이 이 기기에 스탠다드라는 지위를 부여한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많은 이들이 접할 만한 대중적인 가격 때문이 아니다. 가장 아스텔앤컨적인 소리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그에 대한 대답은 SP1000이나 SE100이 아니라 SR15가 적절하다. 


  사실 리뷰를 진행하는 입장에서 SR15같은 기기를 표현할 때가 가장 난감하다. 개성이 강한 기기일수록 글로 설명하기 수월한데 SR15는 일반적으로 오디오를 다루는 리뷰에서 초점을 두는 모든 면에서 기본 이상의 성능을 충족시킬 뿐 주머니 속 바늘처럼 특출나게 뛰어나거나 혹은 아쉬운 부분이 드러나지 않는다. 가령 공간감을 묘사할 때 ‘넓다’와 ‘좁다’의 이분법적 구분으로 어느 한 쪽에 포함시키기 어렵다. 가장 적절한 표현을 찾자면 SR15는 공간감이 넓지도 좁지도 않다가 될 텐데, 이밖에 다른 소리적 요소들도 대체로 이러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으니 당최 어떤 식으로 글을 써내려가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오해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 먼저 밝히자면 SR15는 잘 만들어진 기기이다. 어느 하나 모난 곳 없이 어떠한 장르의 음악을 듣더라도 기본 이상의 소리를 보장해주었다. 앞서 언급한 이유로 SR15만을 두고 소리를 논하기에는 필자의 능력 부족으로 다분히 추상적일 듯해서, 이번에는 처음부터 AK70MK2와의 직접 비교 결과로 SR15의 소리를 살펴보려 한다. 청음에 사용된 이어폰은 비전이어스 VE6, 케이블은 DHC 심비오트 4심으로 두 기기의 언밸런스 연결을 사용하여 비교 작업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두 기기의 소리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차이가 금새 드러나는 음색 면에서 두 기기 모두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동일한 안정적인 토널 밸런스의 소리를 들려준다. 하지만 일정 시간 여유를 가지고 다양한 곡들을 청음하고 나니 서서히 작은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소리의 밀도이다. SR15쪽이 보다 속이 꽉 찼다. 번갈아 들어보니 AK70MK2의 표현력이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진다. 앞서 AK70MK2의 리뷰에서 저역의 타격감이 아쉽다는 평을 했었는데 SR15는 밀도가 높아지면서 이러한 단점을 어느 정도 보완했다. 밀도 높아진 단단한 저역은 마치 오디오에서 댐핑 팩터가 향상된 것처럼 보다 정확하게 제어되었다. 이는 저역의 타격감뿐 아니라 악기의 질감 표현에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두 번째로 공간 표현력이다. 무대 좌우 폭은 AK70MK2와 SR15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무대의 깊이 부분이 달라졌다. SR15 쪽이 보다 무대 깊숙한 곳까지 악기를 배치해 두는데, 이로 인한 입체감 향상이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차이는 현장감이 잘 살아나는 라이브 음원이나 녹음 공간이 넓은 대편성 음원처럼 몇몇 특정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 큰 차이를 보이는 정도는 아니다. 


  필자가 찾은 두 기기의 소리 차이는 위의 두 가지 정도이다. 이 정도라면 SR15는 AK70MK2의 마이너 업데이트 버전이라 표현하는 것이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사소한 두 가지 차이 덕분에 SR15는 전반적으로 보다 안정감 있게 곡을 재생시켰다. AK70MK2에서 밸런스단을 활용함으로써 언밸런스단에서의 아쉬움이 해소됐다면, SR15는 언밸런스단 그 자체로도 기존 AK70MK2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이 보완된 셈이다. 여건상 SR15의 밸런스단을 활용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지만 그 동안 아스텔앤컨의 행보로 보았을 때 밸런스단의 성능이 언밸런스보다 뛰어날 것으로 짐작된다.  



  끝으로 SR15의 네이티브 DSD 재생 방식의 성능을 검증해보자. 큰 맥락 안에서 AK70MK2와 SR15의 소리는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많은 만큼 AK70MK2의 PCM 전환 DSD 재생과 SR15의 네이티브 DSD 재생 사이에 어느 정도 음질차를 보이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우선 배경의 정숙도에서부터 그 차이가 느껴진다. SR15가 보다 정숙한 배경 속에서 곡이 재생된다. 사진에 비유하면 SR15는 심도가 깊고 색감이 진득한 쪽이다. 다이나믹스 표현이 AK70MK2보다 단연 뛰어나고 소리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가령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를 들으면 1악장 시작을 알리는 웅장함에서부터 바로 두 기기의 승패가 갈렸다. 이후 현악기의 섬세함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SR15쪽이 더 듣는 맛이 있으니, 이 정도라면 DSD 재생에서는 SR15의 완승이라 할 만하다. 




이제는 자신과의 싸움일 뿐 


  누군가 필자에게 현재 사용 중인 AK70MK2를 처분하고 SR15로 넘어갈 만한 가치가 있냐고 묻는다면, 만약 DSD 음원을 주로 듣는 고음질 마니아라면 충분히 SR15로 교체할 만하지만 캐주얼 유저에게는 두 기기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 답해줄 생각이다. 


  현재 아스텔앤컨의 상황은 마치 스마트폰 업계를 보는 듯하다. 후속 기기를 출시할수록 점점 특출나게 발전시킬 만한 부분을 찾기가 어렵다. 캐주얼 유저에게는 이미 기존 기기로도 오버 스펙에 가깝다. 출시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AK70MK2는 여전히 보급기 중 최상위 기종에 속한다. 이러한 가운데 SR15는 음질적인 마이너 업데이트와 함께 네이티브 DSD 재생이라는 마니아적 메이저 업데이트로 나름의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이제 막 본격적인 포터블 음감 생활을 고려 중인 유저라면 SR15는 너무나 매력적인 기기이다. 과거 최소 백 단위 가격대의 제품에서나 얻을 수 있었던 성능, 무엇보다 소리를 이제는 보급기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말 그대로 비싸지만 싼 제품, SR15이다. 점점 침체되어 가는 DAP 시장에서 SR15가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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